Lucky Charms Rainbow

육식어

2023-06-25

먹빛 뱃머리 위에서 작살을 든 한영휘가 당신과 시선을 마찰합니다. 아, 그리도 가혹하고 무자비한 눈빛이 있었을까요. 바닷결을 가른 날카로운 창 끝이 당신의 어깨를 관통합니다.

눈을 떠 보니... ... 아, 쿱쿱한 인공 바닷내로 가득한 수조입니다.

감독: 한영휘

출연: 정희원

정희원:30
...
한영휘: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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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높게 뜬 저녁, 당신은 암초에 기대어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뜹니다. 해수면이 잘은 파도를 일으켜 살갗을 적시고 있어요.
고개를 들어보니 검푸른 밤 하늘에 별무리가 가득입니다. 잠깐 잠이 들었었나보죠.
낮에는 바다 바깥으로 나오는 것 마저 힘들어졌습니다.
해를 본 지 꽤 오래 됐었던 것 같죠. 해적들이 바다에 그물을 펴기 시작한 직후로 말이에요.
본디 인어와 인간과의 관계는 썩 나쁘지 않았습니다.
사실, 공존을 택했던 거죠. 같은 언어를 발음하고 소통 되는 개체를 굴복시킨다는 것 자체에 경각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전부터 가끔 관상용으로 수집하려는 기이한 취향을 가진 이들도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인어를 겨냥하고 그물을 던진 적은 없었습니다.
이 남획의 사유는 그들만이 알고 있겠죠.
육식어인 당신을 인어들이 의지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습니다.
조개나 푸른 줄기들을 씹는 어여쁜 인어들과는 달리, 바다의 포식자가 되었죠.
갸냘픈 육신이나 반짝이는 장식, 바다를 노닐며 흩날리는 머리카락... ... 그런 것들은 당신에게 필요치 않았습니다.
낮에는 다른 인어들이 어선에 눈에 띄이지 않도록 신호를 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밤이 되고 나서야 선선한 공기를 폐부에 넣을 수 있었어요.
바닷내 스민 밤공기가 전신에 깃듭니다.
저 멀리서 작은 기포가 부글대는 게 보입니다.
정희원: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3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부글대는 기포 사이로 머리카락으로 보이는 것이 보입니다. 익숙한 기색입니다.
곧 해수면에 일렁이던 거품은 점점 정희원, 당신에게로 다가옵니다.
정희원:(가만히..)
팜:왁!
놀랐어..?
당신 옆에 오래 붙어있던 인어입니다.
긴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쓸어 넘긴 인어가 웃으며 당신의 옆에 앉습니다.
정희원:으음, 응, 다 티가 나긴 했지만, 조금... (하나도 안 놀란 얼굴로 웃는다.)
팜:전혀 하나도 안 놀란 것 같은데-
요새 들어서 어획 선들이 많이 잦아졌어. 너도 조심해.
정희원:괜찮아. 성질 한번 부려 보면 어련히 피해가시겠지.
너야말로 어선 구경한다고 위로 올라가는 건 적절히 하도록 해. 몸 조심해야지?
팜:지금은 밤이니까 괜찮아. 그리고...
네 옆이니까. 네 말마따나 성질 한 번 부리면 피해가잖아.
(어색하게 웃는다.)
정희원:왜 그렇게 웃어?
팜:그냥. 나도 네 도움이 되고 싶은데..
육식어인 너한테는 의지만 하는 것 같아서.
정희원:흐음... 너도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게 어때?
떠내려온 쇠붙이를 깎아서 들고 다니는 것 만으로 도움이 될 텐데.
팜:쇠붙이..! 좋은 방법이야. 바닷 속까지 들고 갈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을까?
(성마른 팔을 휘적대며)
정희원:(성마른 팔 봄.) 도구를 만들기 이전에 심해로 가서 운동을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어...
(바위에서 내려온다.) 그래, 가자.
팜:응. ..사실 인간들이 이렇게 우리를 적대시할 줄 모르고, 안일했던 것도 사실이니까..
언젠가 비극이 멈췄으면 좋겠다.
갸냘픈 성음으로 아스라지는 미소를 남긴 인어는 달빛에 반짝이는 꼬리를 너울거립니다.
암청색 바다의 윤슬에 비쳐진 꼬리가 눈부시게 빛납니다.
인간과 유사한 마른 팔, 심해의 압력을 견디기 어려운 몸, 대지를 걸을 수 없는 꼬리.
그들을 쉽사리 막을 수 없을 겁니다.
저 피하는 것만이 수단이 되어버린 지금.
무수한 별무리가 떨어질 듯 애닳은 밤이네요. 인어의 노랫소리 조차 없는 고요.
달이 그림자에 삼켜집니다.
밤의 끝이 오고 있었습니다.
해안가에서 멀리 떨어진 창해의 가운데 정희원, 당신은 헤엄치고 있습니다.
수심은 햇빛이 보이지 않을 치 만큼입니다. 그야, 지금 시각이면 해적들이 그물을 뻗고 있을 시간이니까요.
옆에 헤엄치고 있는 당신의 친구가 보입니다. 남빛 결을 흩뜨리며 춤추듯 수면을 가르는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정희원: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하지만, 이리도 아름답고 찬란한 빛은 멀리서도 그들의 먹잇감으로 보이기에 쉬워 보인다는 거겠죠.
팜:함께 나오니 좋지?
정희원:응, 여긴 비교적 맑아서 산책하기도 좋고... (지느러미에 시선을 둔다.)
검푸른 바다를 거닐다 보면, 다른 인어들이 당신들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볕을 보지 못한 이들의 수척한 기색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정희원:(가볍게 인사한다.) 컨디션이 영 안 좋아보이네.
인어: 아. 희원씨.. 오랜만이야.
그야. 볕을 오래 못 봤으니까.. 오늘은 배가 없어?
팜:..(안타까운듯 둘러보다가)
(보이기 어려운 뭍을 올려본다.)
정희원:고기라도 먹고 살면 그나마 괜찮으련만...
여기서 기다려, 한번 살펴보고 올테니.
팜:응. 배웅만 해줄게.
(꼬리짓)
정희원:착하네. (작게 끄덕이고 위로 헤엄친다.)
팜:(갈 수 있는 곳까지 헤엄친다.)
조금씩 뭍과 가까워지자, 일자로 드리운 빛줄기가 보입니다.
정희원:고마워, 다시 내려가렴. (웃으며 말하고는 마저 상승한다.)
그리고 저 멀리서 물살을 가르고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형체가 보입니다.
정희원: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60
판정결과: 보통 성공
나무에 거멓게 먹을 칠한 커다란 배, 이 해역을 가르는 어선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래요, 인어 사냥꾼의 배. 그들이 오고 있습니다.
난폭한 항해는 곧, 인어들의 거처로 향합니다.
불온한 바람이 폭풍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평화로 잠긴 이 바다에 고막이 찢어질 정도로 큰 목소리가 울려퍼집니다.
한영휘:닻을 올려라!!
그물을 던져!
검은빛 뱃머리 끝에서 작살을 든 채 울부짖는 사람이 보입니다.
당신은 그를 지독하게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나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네요.
수없이 자신의 동족을 죽이고 포획을 일삼았던 젊은 인어사냥꾼입니다.
정희원: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95
판정결과: 실패
칠흑으로 옭아매진 그의 의복, 귓전을 찢을 듯한 목소리,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카락, 번뜩이는 은빛 작살.
당신의 동족들을 수없이 끌어 올리고 잔혹하게 지느러미를 잘라내며 값을 메김하던 해적, 그가 맞습니다.
물살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두 인어의 머리 위를 지나친 배는 방금 전까지 자신들을 지나친 인어가 있는 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모두에게 알려야 합니다. 이대로 가다간 모두가 그물에 걸리고 말 거예요. 함께 헤엄치고 있던 당신의 친구도 그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정희원:(저 배에 흠집 하나만이라도 낼 수 있다면... 이라 생각하며 배와 사람을 번갈아보다, 인어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하강한다.)
회빛 암초 사이를 나아가면, 이미 그 검은 배는 그물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채 빠져 나가지 못한 인어 둘이 촘촘하게 짜여진 그물망 사이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습니다.
인어 사냥꾼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그들을 끌어 올리고 있습니다.
정희원:너희들...! 왜 속절없이 걸려들고 마는 거니? (그물을 향해 헤엄친다.)
정희원:
근력
기준치: 55/27/11
굴림: 67
판정결과: 실패
너무 성급하게 뜯어내려고 해서 그런 걸까요, 촘촘한 그것들은 쉬이 뜯겨지지만 꼬리 부분에 엉켜 있던 것이 풀리지 않아 그들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옆에서 당신의 친우가 도우려고 애썼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팜:너무 넓어, 어디까지 그물을 친거야..?!
(안달복달하면서 그물에 설킨 인어들을 바라본다.)
뱃머리 위에서 인어를 붙든 사냥꾼들의 카랑카랑한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곧 한영휘는 끌어 올린 인어의 머리채를 붙잡고 마치, 등급을 가늠하는 듯 안면을 확인합니다.
그리곤,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귓가의 지느러미를 작살로 절단해냅니다.
검붉은 핏물이 솟구치며 인어의 비명이 드높아집니다. 그리고, 선혈로 헝클어진 낯으로 당신과 눈을 마주칩니다.
잔혹함을 과시하듯 당신의 앞에 내보인 살상의 현장.
바다라는 이름의 무저갱에서 작살을 든 이.
곧, 당신은 눈치챕니다.
그가 당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옆에 있는 당신의 친우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요.
한영휘:던져!
정희원:팜. (밀쳐낸다.) 헤엄쳐, 빨리!
팜이 밀쳐진 채로 도망갔지만, 넓은 배에서 방향의 전환을 눈치챈 사냥꾼이 그물을 칩니다. 그물망은 목표물을 감싸자 바로 당겨져 빠져나갈 수 없게 아물립니다.
정희원:팜! (그물로 가서는 잡아뜯는다.)
이 그물은 당신이 여태껏 찢어내던 것과는 다름을 느낍니다.
찢으면 찢을 수록, 더 헝클어져 당신의 친구를 더 속박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당황하고 있던 찰나, 배의 외곽에서 밧줄을 붙들고 작살을 들고 있는 인어사냥꾼과 눈을 마주칩니다.
한손으로 은빛 작살을 든 채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흉흉한 눈동자가 창공의 아래 기이하게 번뜩입니다.
한영휘:그 귀, 목...
근간에 인어가 안 잡히고, 그물이 찢기게 만들었던 게 누군가 했더니.
육식어. 너냐?
닻을 내리고 바람결에 선박한 그가 당신을 바라보며 소리칩니다.
당신의 친구는 여전히 그물 속에서 힘겹게 헤엄치고 있습니다.
정희원:(더 찢으려 하면 위험해진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물을 붙잡은 손을 놓는다. 저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부정하지 않는 듯 입꼬리를 옅게 올렸다.)
팜, 무조건 저항해. (그 말을 끝으로 후퇴한다.)
후퇴하는 당신을 보고 작살을 고쳐 쥔 인어사냥꾼이 웃습니다.
후퇴하며 등을 돌린 당신의 뒤로, 바닷결을 가른 날카로운 창 끝이 당신의 어깨를 관통합니다.
쉬이 뽑을 수 없게 구부러진 그 작살은 당겨지는 대로 육신이 딸려 옵니다.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마비 독. 아, 그렇게 자각하는 순간 시야가 희뿌옇게 변합니다.
.
.
가물이는 눈을 뜹니다. 온몸이 뻣뻣하고, 아픔이 느껴집니다.
맡아본 적 없는 기이한 향취, 어두운 내부... ... 마치 심해에서 잠들 때나 느껴봤던 감각입니다.
눈을 뜨이자 본 적 없는 광경입니다. 적어도 이곳이 바다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습니다. 물이 조금 이상한 것 같기도 해요.
맡아본 적 없는 소독내가 두통을 일게 만듭니다. 인간들의 배가 지나갔을 때 꼭 이런 향취가 나기도 했죠.
어두운 내부에 서 있는 사람이 보입니다. 어째서 사람이 두 발로 직립하고 있는 걸까요.
똑똑..
유리를 두들기는 손길... ... .. 유리?
당신은 깨닫습니다.
사방이 두터운 유리로 되어 있는 수조라는 것을.
정희원:
SAN Roll
기준치: 59/29/11
굴림: 71
판정결과: 실패
이성 3 감소
오른쪽 어깨에 흰 붕대를 감은 채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영휘는 조금 지친 기색입니다. 여기저기 붉게 얼룩진 것을 보아하니 크게 다친 것 같습니다.
한영휘:깼나보네. (어깨를 쥔 채 수조를 바라본다.)
정희원:(손을 뻗어 유리를 만져본다. 4면 모두.) 대단한데...
온전한 유리는 처음 봐, 바다는 항상 깨진 유리조각들이 굴러오기나 하는데 말이야...
인어들은 그런 날렵한 쓰레기들 따위에 쓸려서 지느러미가 찢기거나 하지.
(한 바퀴 돌아 다시 널 본다.) 그래서, 이번엔 어떤 피해를 주려고 하는 걸까?
한영휘:...지금 그게, 갇힌 처지에서 할 말인가..
아니. 내 말을 알아듣긴 해? 듣자 하니 같은 인어가 아닌 것처럼 말하는 게 웃기네.
정희원:그야 난 좀 더 주의하는 편이니까...
유감스러워라, 이렇게 갇혀버려서 이제 어쩌지.
한영휘:...제법 자신감 만만하던 모양인데. (멀쩡한 한쪽 팔을 수조에 짚는다.) 피해 말야.
난 인어를 수조에 넣고 관조하는 취미나, 생으로 썰어먹는 취향 따위 없어.
감히 우리를 계속 방해한 인어를 쉽게 죽이기 아까웠을 뿐이니까.
이 좁아터진 방에서 숨이나 연명하다 죽이려고. 혹시 육식어 괴식에 취미가 있는 친구가 있다면 소개나 해줄까 해. ( 웃었다.)
정희원:(웃는 얼굴을 보면 부러 말문이 막히는 듯한 얼굴을 한다.) 아, 그 말은...
다른 인어들은 수조에 넣어서 관조하거나 썰어먹는다는 이야기니? (눈썹을 늘어트리고, 꼭 겁먹은 표정으로 바라본다.)
한영휘:(검지로 투미한 벽을 두들기다가, 겁먹은 표정의 눈을 마주하다가) 그 밖에 다른 이유가 있겠어?
모르는 척 하는 이유가 뭐야?
정희원:... 그걸 어떻게 믿으라고... (등을 수조 벽에 기댄 채 가라앉아 몸을 웅크린다.)
내 가족이나 다름 없던 친구들이야. 그렇게 만든다는 건 너무하잖아... (겁먹은 흉내를 내며 제 양 팔을 감싼다. 작살에 궤뚫렸던 어깨가 아픈 듯 통증을 호소하고)
너도 가족이 있을 것 아니야, 가족이 그렇게 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지도 않니...?
한영휘:(코웃음 치고는 인상을 구긴다.) 인어답네. 미물 주제에 사람을 그 혀로 속이려 드는 점이. 정말로..
아. 네 친구의 가족애는 끝내주긴 하더라.
아주 육식어인줄 알았지 뭐야. (어깨를 부여잡고는 노려본다.)
정희원:미물이라니! 우리 또한 상반신은 인간과 다름 없는 동물이거늘...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양 목소리를 떨며 대답하고는 흐르지도 않는 눈물을 훔치는 흉내를 낸다.)
(이어지는 말에는 어깨를 흘깃 올려다본다. 그러고는) 인간들도 가족애가 있잖아.
우리처럼 생각도 하고, 생활도 꾸리고, 사랑도 하고.
아, 다 똑같은데...
그거 하나는 못하더라.
인간들이 물에 빠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정희원:처음엔 괜찮은데, 점점 코랑 입으로 뱉어내는 공기방울이 많아지더니,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기 시작하지. 마치 수영하는 법을 모르는 아이처럼...
네 가족들도 인간이라면 똑같을 걸.
한영휘:다물어, (네 말을 끊는 소리가 이어지고, 강하게 네 수조 위를 내려친다.)
정희원:(부동한다. 겁먹는 것을 잊은 것처럼.)
한영휘:인간을 그딴 식으로 여기는 네가, 인어가 인간이랑 같을 리가 없잖아. (이내 크게 움직인 반동으로 통증을 호소하는 안면이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넌 그냥 말하는 물고기야, 내 아량으로 살아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정희원:아니, 넌 내가 말하는 것 말고도 많은 것을 했다는 걸 알텐데.
(유리 앞으로 다가간다.) 육식어도 아닌 인어한테 이렇게 호되게 당한 인간은 처음 보네.
차이점을 하나 더 발견했어. 인어는 도구가 없어도 어느정도 생활에 지장이 없는 편인데, 넌 그 독 묻힌 작살 아니면 아무것도 못 하나 보네.
인간은 맨 몸으로 못 살던가... 그래, 그랬던 것 같기도 해.
한영휘:(입꼬리를 끌어올리면서 숨을 몰아쉰다.) ...그래. 인어랑은 다르지. .. 아무렴.
다시는 그 입으로 내 가족을 들먹이지마. 네가 말하는 가족애는 인간의 것과 아득하게 다르다고!
진짜, 너희란 족속은 지긋지긋 해..
정희원:그래? 그렇게 말하니 궁금해지네.
네가 날 관상용으로 팔아도 용서해줄게. 난 거기서 인간들의 가족애가 뭔지 탐구하면 되니까.
한영휘:넌 육식어라 관상용으로 안 팔려. 바보야.
정희원:괴식을 하는 악취미의 인간이 있다면 괴물을 보고 싶어하는 인간도 있을 텐데.
한영휘:글쎄. 이 나라의 호사가분들께서는 겁이 많아서.
너같은 걸 보고 싶어했던 건 나밖에 없을 걸. 의도는 다르지만..
정희원:안타깝네. 육식어라고 해서 내가 인간을 잡아먹을 거란 얘긴 한번도 안 했는데.
고작 그물 좀 뜯었다고 날 보고 싶어했던 건 아니겠지?
한영휘:인간도 잡아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위협이지. 영리한 거야.
육식어는 어떻게 생겨먹었나 궁금해서.
정희원:영리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기적이라는 건 알겠어.
그래? 그럼 감상을 좀 들려줄래?
한영휘:자기를 지키는 게 뭐가 이기적이야. ..
육식어라서 인어랑 뭔가 다를까, 궁금했는데.. (검은 눈을 바라보고) 역으로 너무 인어같네.
정희원:흐음. 그 말을 들어보니 편견이 있었던 모양이야. (마주한다.)
나도 인간이랑 친구 정도는 할 수 있는데 말이야...
한영휘:(오래 시선이 맞닿자, 흠칫하고는 뒤로 물러난다.)
인어랑 그럴 생각 없어. 기분 나쁘다고..
마지막 말을 남긴 이는 곧 비틀대던 몸을 일으켜 바깥으로 향합니다.
문이 닫히자, 당신에게 보이는 유일한 빛은 창문가에 들이친 달빛 뿐입니다.
벌써 저녁이 되었나 봅니다.
당신은 심해의 바다를 거닐던 시야로 내부의 방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한영휘의 방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지만, 굉장히 좁다고 느껴집니다. 아마, 수조를 들여서 내부에 여유가 없어졌을 겁니다.
살펴볼 수 있는 건 [아무렇게나 늘어진 붕대, 바닥에 놓여진 작은 종이, 테이블에 올려진 액자, 수조 내부] 정도 입니다.
정희원:(아무렇게나 늘어진 붕대를 본다. 저건 인간들이 다쳤을 때 사용하는 거지.)
>아무렇게나 늘어진 붕대
가구에 대충 얽혀져 있는 붕대 입니다. 천으로 덧대어져 지혈을 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던 흔적이 보입니다.
혹은 당신의 친구가 물어 뜯었던 어깨를 묶어 두려고 했었던 것 같습니다. 피 냄새가 수조에 있는 당신에게 마저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홀로서 하기 힘들었겠죠.
정희원:(인어 사냥을 혼자 하는 건 아니던데...)
(작은 종이를 본다.)
>바닥에 놓여진 작은 종이
정희원: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차용증이라고 쓰여져 있는 종이가 보입니다. 이름이 적혀 있는 것 같긴 한데... ... 하단의 내용은 너무 작게 쓰여져 있어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정희원:흐음. (더 집중해도 안 보일까... 빤히 본다.)
너무 작은 글씨라,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정희원:(테이블에 올려진 액자를 본다.)
희미한 낡은 사진이 하나 보입니다.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인 것 같군요. 한 명은 바다에, 한 명은 육지에서 손을 내뻗고 있습니다.
정희원:(ㅇ_'ㅇ) (뭐지..)
(수조 내부를 둘러본다.)
바닷가에 있는 사람은 인어사냥꾼을 정말 닮았네요.
>수조
드넓은 대양을 누비고 헤엄치며 심해를 거닐던 당신을 가둔 곳 입니다. 겨우 몇번 공전할 수 있을 정도로 비좁습니다.
유리는 굉장히 두텁고 단단합니다. 물론, 당신의 힘이라면 이 수조를 깨뜨릴 수 있겠지만... ... 물이 쏟아지고 나면 더이상 숨 쉬기가 힘들 겁니다.
정희원: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7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바닥에 알약 같은 것이 보입니다. 가까이 가서 그것을 집어 보니... ... 아, 상처를 아물게 하는 약입니다.
자신의 몸을 더듬어보니,그가 작살을 내던졌던 것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상처는 정말이지 깔끔하게 처치되어 있습니다. 자주 다치는 자의 익숙한 손길처럼요.
정희원:(몰랐다.)
(여기서 창 밖의 풍경은 보일까?)
창 밖에는 드넓은 창공만이 보입니다.
정희원:(물가가 안 보이면 아무래도 깨고 나가기는 힘들겠지... 어항 정도의 물그릇은 없을지 둘러본다.)
물그릇은 전무합니다.
참, 좁고 초라한 공간입니다.
낡아빠진 라디오가 주파수를 잡고 노래를 흘리기 시작합니다.
정희원:(당장은 허튼 짓 안 할 모양이니 당분간은 가만히 있을까.)
(소리가 들리면 라디오 방향을 본다.)
창문가를 두들기는 빗줄기가 밤손님처럼 찾아옵니다. 치지직, 지직. 들어본 적 없는 그 음율은 청각기관을 타고 요요히 흘러듭니다.
어쩐지 낯선 리듬이 지친 육신을 어르는 것 같습니다. 잠이 쏟아져 옵니다. 무수한 장면들이 뇌리를 핥고 듭니다.
천체에 노니는 별들은 바다의 거울이 되었었죠. 하늘을 보지 않아도, 잔잔한 파돗결에 알알히 박혀 있던 수많은 행성들이 당신의 손에서 얼마나 바스라졌었습니까.
햇빛이 일자로 굽이치는 얕은 수면에서 부유하던 순간들이 스칩니다.
빗소리는 무심하기도 합니다. 알 수 없는 운율을 띈 노랫소리가 수장됩니다.
눈이 감기는 것 같습니다. 육신에 들어찬 피로도, 고행도, 창가에 들이치는 빗소리와 함께 안락함을 건넵니다.
이곳은 그저 좁은 수조일 뿐인데도요.
정희원:(수조 바닥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잠을 청한다.)
.
.
.
산소를 공급하는 기포 소리만이 만연한 수조 안에서 당신은 눈꺼풀을 들어올립니다.
창가에 들이친 달빛 덕에 내부가 선명합니다.
자리를 비웠었던 그는 침대에 누워있습니다.
이따금씩 통증을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비틀고 있습니다.
정희원:(제 몸을 일으키고, 인간이 자는 모습을 훑어본다.)
한영휘:(어깨를 짚은 채 거친 날숨을 헐떡이다 시선을 돌리면, 마주치는 시선에 잠시 놀란다.)
..왜 안자?
정희원:(ㅇ_ㅇ) 너야말로?
한영휘:하..(아파서 못 잔다고 인어한테 말하기는 쪽팔려서 이마나 짚는다.)
육식어는 낮에 자나. (붕대 갈러 일어서)
정희원:(ㅋ)
대답을 피하네...
한영휘:잠이 안 와서 그런 거야.
(붕대 꺼내서 자르는 중..)
정희원:(구경한다.) 나는 낮일 때도 있고 밤일 때도 있어서.
한영휘:생활이 불규칙하네.
그러니까 힘을 못 쓰지.
정희원:태양과 달의 시계에 맞추며 살기엔 할 일이 많아서 말이야...
한영휘:그물 뜯기?
정희원:(무시) 특히나 해적들이 들이닥치는 낮에는 쉬이 위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언제가 낮인지 언제가 밤인지 가물가물해질 때가 많더라.
한영휘:아. 인간 탓일 줄은 모르고 한 소리니까 무시해.
정희원:네 탓이지. 자주 오시던데?
한영휘:넌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재주가 있는 인어야. ( 붕대를 입으로 뜯고는 붉게 물든 붕대를 벗는다.)
정희원:영 피가 안 멎나. (피 냄새..)
한영휘:물어뜯긴 상처니까. (땀 흘리면서 붕대를 마저 칭칭 감았다.)
정희원:후훗... (그 말을 들으면 즐거운 듯 웃는다.)
한영휘:...뭐가 웃겨?
정희원:그러게 누가 인어나 잡고 다니래.
당장 도와줄 사람 하나 없으면서, 인어들이 연약하다는 생각 때문에 큰 코 다칠 줄도 몰랐나 보지.
그렇게 아픈 티를 숨기지도 못하고...
한영휘:..뭐. 네 입장에서는 꼴 좋겠지.
착각하는 게 있는데. 난 인어를 만만하게 본 적 한 번도 없어.
목숨을 뺏는 일에 그 정도 각오는 해야지.
정희원:흐음, 목숨을 뺏는다는 자각은 있구나?
한영휘:인간이라고는 생각 안하지만.
정희원:인어들이 인격을 가졌다는 자각이 있다면 죄책감도 가지고 있겠지?
정당한 해를 입었네. 항상 나와 친구들을 걱정하던 그 여린 팜이 누군가를 물어뜯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한영휘:넌 포식할 때 일일히 죄책감을 느끼나?
종족이 다른 이상 같다고는 볼 수 없는 거야. 지능이 비슷한 생명체라고..
정희원:아니, 동물들의 지능에 따라 먹이가 될지 공존할 수 있을지 결정되는 거지. 종족이 다르더라도.
고래는 만나본 적 있어? 아... 뭐, 지금 같은 사고방식으론 만나도 대왕 고기니 뭐니 하겠구나.
한영휘:대왕 고기 아니야?
고래고기는 먹어본 적 있어. 너도 육식어면 먹어봤냐?
정희원:왜 네 몸집보다 몇 배가 큰 동물이 널 잡아먹고 있지 않는 거라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네.
아니, 고래는 내 친구야.
한영휘:...
(약간 당황한 눈으로 바라봐)
진짜 제법 인어같네...
정희원:무슨 말을 하는 거니?
한영휘:..아무튼, 그런 거 일일히 생각하면서 누가 사냐는 소리지. 내 말은.
.. 넌 좀 고차원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본데. 난 내 가족, 선원들 지키기에도 바빠.
정희원:흐음... (가만히 바라본다.)
(가만히 위아래로 관찰하다가 수조 바닥에 앉는다.) 바쁘다는 사람이 잘도 이러고 있네.
한영휘:(관찰하는 시선에 날카롭게 응대하다 침대에 눕는다.) 넌 한마디를 안 지고.
지금은 밤이니까 자. 고래 친구.
정희원:날 신경써주는 거야?
한영휘:네 시선이 신경쓰여서 잠이 안 와
그니까 좀 자라고.
정희원:(ㅇ_ㅇ)
한영휘:하..
정희원:(ㅇvㅇ)
한영휘:(일어나서 네 쪽으로 발 돌리고 누움)
정희원:(누운 모습 계속 지켜본다.)
한영휘:아 자라고!!!
정희원: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목소리를 부러 떤다.)
한영휘:하아아아아아
너 그거 일부러..그거.
그만둬.
(일어나서 삿대질)
정희원:(불쌍한 얼굴 해줌)
한영휘: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구나?
정희원:조용히 하고 있는데 왜 자꾸 날 신경쓰는 거니? (돌아온다.)
그래, 안 보지 뭐. (등진다.)
한영휘:아. 또 왜 그래.
..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정희원:...뭘?
시선이 신경쓰인다며?
한영휘:그래.
(얼른 베개에 얼굴 파묻는다.)
정희원:(다시 느리게 돌아서 누운 모습 지켜본다.)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듯, 불규칙한 호흡을 번복하던 그는 지친 기색으로 눈꺼풀을 감아내립니다.
.
.
식도에 타고 드는 홧홧한 향취에 눈을 뜹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체감되지 않는 상태에서 거세게 아가미를 헐떡이자,그가 몽롱한 기색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정희원: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1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그가 수조 위로 무언가를 쏟아내고 있음을 깨우칩니다. 병에는 글렌피딕 솔레라Glenfiddich Solera 라고 적혀 있습니다.
목울대를 타고 드는 그것이 당신은 알코올임을 자각합니다.
생전 느껴본 적 없는 기이한 감각이 뇌를 용해시키는 것만 같습니다.
마주보고 있는 인어사냥꾼은 진득하게 취해있습니다.
(체력 -1)
한영휘:고통을 잊는데 알코올만한 것도 없지.
어때. 마실만 해?
정희원:....................
한영휘:인어라 그런지 상처도 빨리 아무네.
정희원:그 술을 마시고, 내 물에도 섞은 거야?
최악인데.
(아찔해진 머리를 부여잡고) 뭐 이런 게 다 있어? 빨리 물 갈아줘.
한영휘:인어는 술을 싫어하나?
정희원:그야 마셔본 적 없으니까.
한영휘:(비틀거리며 의자를 끌어와서는 앉았다. 웃는 얼굴로 입에 남은 술 털어내고)
그럼 좀 마셔봐. 적응하면 기분 좋아.
정희원:숨을 쉴 때마다 내 입부터 내장의 벽들이 허물어지는 기분이야.
이게 뭐가 기분이 좋다는 거야? 넌 마조히스트니?
한영휘:나참.. 좀 기다려보라니까?
핏물 배인 어깨는 여전합니다. 붉게 달뜬 얼굴로 유리에 손을 대는 그 손길은, 투박하고 흉 투성이입니다.
정희원:어지러워. 일시적으로 정신 반쯤 빠진 놈아.
한영휘:이야.
가증스럽게 불쌍한 척 하는 것보다 보기 좋다.
정희원:어지럽다고. (알콜물 맞은 눈이 충혈되어선 부릅뜨고 바라본다.)
한영휘:(충혈된 눈을 바라보고는 입을 가리고 웃는다.)
인어라면 질색이었는데.. 이렇게 넣어놓고 보니까 뭐. 무섭지도 않고.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정희원:(유리벽에 가까이 붙는다.) 술은 중추신경계를 마비시킨다고 들었어. 만취하더니 겁대가리까지도 상실했나 봐?
착각하지 마. 못 나가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야. (날렵한 손끝으로 유리벽을 까드득 까드득 긁는다.)
뱃머리 위에서 보던 인어사냥꾼은 어쩐지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좁은 방, 단촐한 내부, 알 수 없는 물건들로 가득하지만 그것이 값지고 귀해 보이진 않습니다.
한영휘:진정해봐.
흠...
네가 꼬리로 치고 나오면 무섭긴 하겠다.( 웃는다.)
어쩐지 가벼운 기색입니다. 사냥꾼은 본 적 없는 얄팍한 포엣셔츠를 걸친 채 취기로 닳아 당신을 바라보고 있어요. 아마, 무언가 당신에게 의문이 있다면 대답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정희원:너...... 으, (술기운에 두통을 호소하듯 머리를 붙잡으며 떨어져 나온다.)
역시 그건 됐으니까 물부터 갈아줘.
한영휘:힘든데...(중얼거리면서 양동이 가져와 물 퍼낸다.)
알코올은 날라가니까 상관없지 않아?
정희원:그래... 그럼 됐고, 신선한 바닷물을 더 줘.
한영휘:(양동이로 바닷물 퍼와서 넣는 중..)
정희원:(한나절 걸리겠네)
...바닷물은 이제 됐어.
한영휘:예예.
물 온도는 마음에 드..
드냐?
정희원:왜 말투를 애써 고친 것 같지?
음... 1 (적당 / 별로)
뭐, 적당하네.
아무렴, 날 붙잡아두고 어디 팔아넘기거나 할 거라면 최상의 상태로 데려가야지.
다른 애들도 다 누군가에게 팔아넘겼니?
한영휘:그래, 무급 노동은 사절이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정희원:인신매매 할 정도의 수완인데도 방을 보면 꽤나 조촐하게 살고 있는 모양이네.
검소한 삶을 추구하니?
한영휘:..
검소..라기보단.
그냥 돈이 없는 건데?
정희원:왜?
한영휘:해적질하는 놈이 모아둔 돈이 어딨어.
그날 그날 쓰지.
정희원:그 미치도록 내장을 태우는 알콜도 벌자 마자 산 거니?
비싸?
한영휘:얼마 안 해.
병원보다야 싸지.
마음에 들어?
정희원:척 봐도 마음에 안 들어했던 거 봤으면서, 바보인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르겠네.
그럼 넌 매번 병원을 가서 돈을 날리는 거야?
한영휘:그랬었나?(멍하니 바라보고는 웃는다.)
병원 잘 안 가. 뭐...
그냥 다 같이 맛있는 거 먹으면 사라지는 게 돈 아닌, 가..
정희원:으음, 내가 인간들의 금전 상황에 대해 제대로 알 방도는 없었어서 말이야. 그런 건가?
한영휘:뭐. 아닌 사람도 있다는데 난 잘 몰라.
밥 안 굶으면 된 거 아냐? 인어도 그렇게 살잖아.
정희원:그렇지.
아, 인간들은 돈으로 먹이를 거래했지, 참. 그럼 그랬을 만도 하네.
자주 보던 얼굴인데 초라하게 사는게 신기해서 궁금했어.
한영휘:초라하게는 뭐야? 사람 방을 평가나 하고.
술도 못 마시고..
정희원:인간들은 반짝반짝한 거 좋아하잖아?
여긴 그런게 하나도 없길래.
한영휘:...
난 반짝이는 거 싫어해..
..인어비늘도..
정희원:왜?
한영휘:인어가 싫으니까.
정희원:왜 싫은데?
수조의 맞은편에 앉아 당신의 말에 대답하던 이는 알코올로 젖어 무거워진 눈꺼풀을 내려듭니다.
불편한 기색이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잠에 빠져듭니다.
정희원:(쾅)
대답해.
(쾅)
대답해.
(쾅)
고통을 앓는 듯한 신음성을 간간히 내뱉기도 합니다.
정희원:대답해.
바다에 군림했던 사냥꾼은 볼품없이 초라한 몸뚱이로, 제 몸 하나 가누치 못한 채 가만 꿈 속으로 달아납니다.
정희원:(쾅)
대답하라고
한영휘:(zzz)
정희원:하...
며칠이나 지났을까요.
좁은 수조 생활은 바다와 견주어 볼 것도 없이 최악이었지만, 생각보다 그는 인어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지 음식이나 환경 조성을 하는 손길은 그럴싸 했습니다.
마치, 이전에 실제로 인어를 키워본 적 있는 것 같은 사람처럼요.
사냥꾼인 그가 관상용 인어를 키웠던 과거라도 있는 걸까요.
그는 가끔 말을 걸기도 하고, 혼자 취하기도 하며, 라디오를 듣거나, 신문을 보곤 했습니다.
아마 어깨가 망가진 덕택에 인어 사냥을 나갈 수 없는 사유인 것 같았죠.
능숙한 솜씨로 수조의 물을 갈은 그는 물맞댐을 위해 당신을 낮은 수조로 옮길 생각인지 가만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어깨를 다쳐 불편한지 한 손 만을 든 채 말이에요.
한영휘:...
협조할 거야?
선선한 물음과 함께 낮은 수조로 고개를 까닥입니다.
정희원:(ㅇvㅇ)
해주면 뭐 해줄 건데?
한영휘:음.
뭘 바라?
정희원:다른 방 구경시켜줘.
한영휘:..
어떻게?
수조를 들고?
(어이없는 눈)
정희원:흠. (어깨를 보곤) 밀어서?
한영휘:무리야.
네 무게에 수조까지 합쳐지면.
정희원:약골이네...
한영휘:한 팔로는 무리야.
협조 안 할 거야. 그래서?
위스키 물에서 영원히 살래?
정희원:...
알았어. 갈게.
(주섬주섬..)
한영휘:잘 생각했어.
일전에 어깨를 뜯겼던 기억 때문인지 잠시 손을 뻗는 걸 주저하던 그는 물 속에 잠겨 있는 당신을 들어 올려 몸만 겨우 잠길 만한 낮은 수조에 당신을 앉힙니다.
소독내가 조금 나긴 하지만, 소금기 머금은 물은 거북하지 않습니다.
머리 끝까지 차올라 넘실대던 수조가 배수구로 물이 빠져나갑니다.
한영휘:(호스로 원래 수조 물 채우다가 힐끔 봄)
정희원:(낮은 수조 물 속에서 숨을 쉬다가 물 바깥으로 고개를 뺀다.)
(눈 마주침) 왜?
한영휘:(호스로 머리 위에 물 흩뿌린다.)
정희원:(눈만 깜빡.) 무슨 짓이야?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차가운 물이 끼얹어진 당신
원래도 머리카락은 젖어 있었지만, 살결에 축 늘러 붙어 물방울이 뚝 뚝 떨어집니다.
한영휘:아하하
정희원:...?
한영휘:웃겨서..
정희원:웃네. 인어 싫어한다더니. (다시 물에 고개 넣는다.)
한영휘:..
내가 그랬었나..
정희원:두 번인가 세 번 말했을 걸.
한영휘:인어가 싫은 건 사실이야.
(내부에 다 빠져나가지 않은 물을 호스로 끌어 작은 수조에 채우기 시작한다.)
정희원:(다시 고개 들고 지켜본다.) 으음.
그런 것 치곤... 능숙하네.
한영휘:...
전에 인어를 키워본 적이 있거든.
뒤돌아.
(턱 짓하면서 눈 마주침)
정희원:키워? (코웃음친다.)
(까딱하면 순순히 뒤 돈다.)
한영휘:키운다는 말이 거슬리나?
정희원:좀 우습지.
한영휘:(뒤로 돌면 약을 가져와 일전 작살로 꿰뚫었던 상처에 바르기 시작한다.)
뭐가 우스운데.
정희원:인간보다 덜 된 존재로 보고 있다는 거?
(고개 돌려 상처부위 흘깃 본다.)
상처부위는 꽤 잘 아물어가고 있습니다.
한영휘:먹이고, 입히고, 재우면..
그게 키우는 거지.
곧 꼼꼼하게 약을 바른 그는 수건으로 물기를 조금 닦아내어 줍니다.
정희원:인어가 아이였어?
한영휘:아니.
너만한 인어였어.
정희원:흐음.
(가만히 물기 닦이는 거 보다가 문득 고개를 기울인다.) 걔가 인어 혐오의 원인이니?
한영휘:(손을 거두면서 수건을 털어낸다.)
흠..
뭐.. (잠시간 침묵하다) 그렇지.
정희원:복잡한 사정이 있었나 보네. 궁금한데...
한영휘:....
(힐긋 보다가 슬 가는 눈을 한다.)
같은 인어한테 구구절절 털어놓겠냐?
그리고 넌 공감도 못할걸?
정희원:공감하고 싶어서 듣는 거 아닌데...?
왜, 난 그냥 인어 아니고 육식어인데.
한영휘:너 재밌으라고 말하겠냐?
육식어도 인어야.
그리고 넌 진짜 인어같아.
정희원:나 아니면 속내 터놓을 사람 있어? (꼬리 끝 탁탁댄다.)
한영휘:나 친구 되게 많아.
어깨만 나으면 가서 공감해줄 친구 되게 많거든?
정희원:아...
아쉽게 됐네. (미끄러지듯이 수조 바닥에 등 기댄다.)
수조에 물이 반쯤 찬 것을 확인하자 몸을 일으킵니다. 염도를 확인하는 듯 큰 수조에 손을 휘젓는 모습이 보입니다.
한영휘:심심하게 해서 미안하게 됐네.
그나저나 오늘 손님이 올 거야. 올 때가 됐는데..
정희원:친구?
한영휘:음..
영업상대. (어색하게 웃는다.)
수조에 물 아직 안 찼으니까 잠시만 있어.
정희원:흐음, (물결 너머로 빤히 본다.)
그래. (이내 시선 천장에 향한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노크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전에 도착한 손님 때문인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문을 엽니다.
맞은 편에 서 있는 손님이라는 사람은... ... 모자와 이상한 마스크, 안경으로 안면을 전부 가린 채 입니다. 수상하기 짝이 없네요.
두 사람은 앉아서 무어라 대화를 시작합니다. 인어인 당신을 의식하진 않지만, 손님이라 부른 자의 목소리는 기괴하기 짝이 없습니다.
정희원: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 돈은, 곧, 줄 테니까, 조금만, 더, 잡아, 와.
한영휘:그렇게 말한 지 한 달이 지나고 있는데. 대금 먼저 지불 해. 같은 항구 출신이라고 봐 주는 것도 한계야. 어깨도 못 쓰는 상태인데. 차용증만 몇 개를 썼는데.
??: 이전, 까지, 잘, 내어 줬, 잖아.
한영휘:지금은 지불 안 하고 있는 게 문제 아니야? 난 네 말만 듣고 배를 인어 잡이 배로 개조했다고.
나라에서도 슬슬 우리의 남획을 주시하고 있는데. 차라리 해적질 할 때가 더 나았어.
??: ... ... 알겠, 다, 시일, 내로, 저녁, 에, 밀린, 대금을, 먼저, 지불, 하러, 오지.
사냥꾼은 손님의 마지막 말이 끝나자 깊은 한숨을 내쉽니다.
알겠다며 약속을 꼭 지키라는 말을 강조한 채 인상을 일그러뜨립니다.
이상한 손님은 아주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나가려다가 정희원, 당신과 눈을 마주칩니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당신에게로 다가옵니다. 어찌나 그 행동이 느긋한지 기괴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뒤에서 한영휘는 그 모습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예, 쁜 걸, 가지고, 있, 네...
정희원:(탐탁치 않아 딴청 피운다.)
기괴한 손님이 빛무리를 등지고 서 당신에게 그림자가 늘어집니다. 고개를 천천히, 천천히 숙여 옵니다.
정희원: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87
판정결과: 실패
맛있, 겠, 다. ----.
라는 입모양을 해 보입니다. 뒷 말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곧 그 흉측한 입모양에 당황하기도 전, 손님의 뒷덜미가 사냥꾼에게 붙들려 질질 끌려 갑니다.
빨리 안 꺼져? 하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도 들립니다.
쾅! 하는 소리와 완연한 침묵만이 남겨집니다.
한영휘:(피로로 그을음진 낯이 이마를 감싸쥐고 한숨을 내쉰다.)
정희원:뭔가 했더니...
(그러고는 얼굴을 살핀다. 피곤해 보이니 오늘은 좀 봐줄까.)
이제 저기 들어가도 돼?
한영휘:..(피곤한 안색으로 수조를 바라본다.) 아직 물 덜 찼어.
숨 쉬기 힘들걸.
...넌 뭐 먹고 사냐?
정희원:(지루하단 낯이 되어 다시 바닥에 늘어진다.)
인간.
한영휘:인간 안 먹는다며
거짓말쟁이야.
정희원:당연히 농담이지.
한영휘:..
정희원:아,
나 네발동물의 맛이 궁금해.
한영휘:돼지..소 이런거?
정희원:응.
한영휘:알았어. 사올게.
오늘은 ..
술 마시고 싶네. (일어선다.)
정희원:자주 마시네?
한영휘:사람을 못 만나니 술이라도 마셔야지.
정희원:흐응. 친구는 치료 때문에 안 만나고 있던 거니?
한영휘:....내 친구들이라고 해봤자. 다 배 위 사람들이니까.
다들 바빠. 얼른 나도 합류해야지.
내가 다 나으면, 너도..
정희원:응. (뒷말을 기다린다.)
한영휘:..
팔릴 곳을 찾아봐야지.
정희원:(유감 없는 목소리로) 아까 그 '영업상대'가 날 마음에 들어하던데.
한영휘:그 자식은..,
그 자식은 제대로 돈도 안 주는 놈인데.
내가 무급노동을 왜 하겠어?
정희원:아하, 내가 팔려도 바로 돈이 생길 거란 신뢰가 없는 상대구나.
한영휘:그래. 네가 그 녀석이 좋으면 고려 정도는 해볼게.
그런 취향?
정희원:으음, 별로야. 차라리 너처럼 바보같고 팔팔한 애들이 낫지.
육질도 그렇고... (중얼거린다.)
한영휘:......
인간 안 먹는다는 거 솔직히 거짓말이지.
뭐라 할 사이도 아닌데 솔직하게 말해봐.
정희원:글쎄, 어떨까?
(ㅋㅋ)(웃는다...)
한영휘:ㅋㅋ
너 짜증난다..
(웃으면서 짐 챙겨든다.)
정희원:너 몇살이야?
한영휘:알 게 뭐야?
스물하나.
정희원:새파랗게 어린 놈이...
한영휘:넌 몇 살인데?
정희원:너보단 많지.
한영휘:몇 살 차이 가지고 쪼잔하게 굴지마.
정희원:몇 살 차이 정도로 봐주는 거니? 신기하네.
내가 쪼잔한 게 아니라 네가 무례한 거야.
자, 어서 누나라고 부르렴.
한영휘:나이나 알려주고 그런 말을 하던가.
내가 인어 생김새로 나이 유추를 어떻게 해?
다녀온다.
(저벅저벅 도망쳐)
정희원:그래. (꼬리 흔들어준다.)
낮은 수조에 있는 당신, 손을 내뻗어 닿는 만큼 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한영휘의 방
손을 뻗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기이한 손님이 두고간 종이, 일전에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액자, 신문 정도겠습니다.
정희원:(종이부터 살펴본다. 차용증?)
기이한 손님이 두고간 종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여진 종이입니다.
그와 손님은 이것을 가지고 무언가 떠들었던 것 같죠. 맨 상단에는 차용증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전에 보았던 것과 다른 것 같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손님이라는 사람이 그에게 많은 돈을 빌리고 갚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희원:뭔진 모르겠지만,
인간이 멍청하네.
(액자 살핀다.)
수조 안에 있느라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액자입니다.
정희원: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2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손을 뻗어서 가까이 살펴보니, 바다에서 손을 내뻗고 있는 이는... ... 인어입니다.
정희원:흐음.
옆에 서 있는 사람은 그인가요? 아니, 아닙니다.그와 닮았지만, 사냥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정희원:(인어는 내가 아는 인어인가?)
그저 알 수 있는 것은 바다에 있는 자는 인어고, 옆에 서 있는 자는 그와 닮은 자라는 것입니다.
모르는 인어입니다.
정희원:(ㅇ_ㅇ)
자기도 아닌 사진을 왜 뒀지.
(신문 집어서 살핀다.)
곱게 접혀진 신문입니다. 새것 같습니다.
정희원: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4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인어 남획 규제 발의. 같은 지성체에 대한 권리 논란, 그들과의 공존에 대한 법제가 없어 발생한 문제에 대해 논의가 오가는 중.
무자비한 인어 사냥꾼들을 현상수배에 올릴 예정... ...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정희원:(ㅋㅋ)
(신문 펼쳐서 후 불어 문 앞 바닥에 날린다.)
수조의 물이 거의 다 차오를 때 쯤 한영휘가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양손은 술과 음식 거리로 가득입니다.
한영휘:나 왔..
(신문 보고 밟음)
정희원:(넘어지나?)
한영휘:(일부러 밟은 거다)
(저벅저벅)
정희원:안 읽네. (아쉽...)]
한영휘:아는 내용인데. 뭣하러 읽어.
정희원:도망 안 쳐?
(음식 냄새 맡는다.)
한영휘:(테이블에 음식 올려놓고는, 깨끗해진 수조를 본다.)
인어 장사 접어도 해적질은 해야하니까.
(네게로 다가가서 어깨 밑 들어올림)
정희원:인간 손은 뜨겁네. (들려짐)
그럼 더 도망가야 되는 거 아니야?
한영휘:이제까지 위법은 아니었으니까.
(풍덩 소리와 함께 깨끗한 수조에 널 넣는다.)
설마 바로 사람을 처넣겠어?
정희원:그 말...
...
아니야. 잘 해봐.
한영휘:너한텐 잘 된 소식 아냐?
(수조 앞에 테이블 옮기고는, 먹을 만한 것들을 젓가락으로 집어준다.)
정희원:글쎄. 왜 나한테 잘 된 소식인지 잘 모르겠는데.
(물 안에서 깨끗한 물을 한껏 들이키고, 수조 바깥으로 고개 내밀어서 음식 냄새를 맡는다.)
한영휘:인어들이 이제 사냥 안 당하니까. 가족애가 있다며.
(돼지 고기 네 코 근처에서 흔들어)
정희원:그런 걸 바랬으면 현상수배에 걸려서 잡히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죽이는 게 더 빠르겠지.
이상한 냄새... (냄새를 맡은 뒤엔 가만히 고기를 지켜보다 입에 넣는다.)
한영휘:...가족애니 뭐니 하는 것도 거짓말이었어?
정희원:(미묘한 표정으로 씹으며) ... 아니, 가족애는 있어.
궁금한 게 더 클 뿐이지.
한영휘:맛 별로냐?(접시에 음식들 담아서 수조 벽 부분 위에 올려둔다.)
궁금한게 뭔데.
정희원:조금 더 먹어봐야 알 것 같은데...
(조금씩 집어먹는다.)
물론 너지.
한영휘:(앉은 채로 맛있게 음식을 먹다가 병을 딴다.)
또 같은 병 입니다. 글렌피딕 솔레라Glenfiddich Solera. 동물 모양이 덧그려진 그것은 바다에 잠겨진 쓰레기 더미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이전에 당신의 수조에 쏟아 부었던 것이기도 했죠.
술에 얼음을 잔뜩 잠겨낸 이는 말 없이 가만 음식을 입에 넣고 씹습니다.
한영휘:뭐가 궁금한데?
정희원:(마조히스트라고 중얼거리고는)
많지. 왜 저렇게 수상한 사람한테 돈을 빌려줬는지, 왜 저런 사진을 액자에 넣어서 가지고 있는 건지.
더 나아가서, 왜 인어 사냥을 하는지.
한영휘:아무 생각 없는 줄 알았는데. 뭐..
궁금한 게 되게 많았네.
(술 마시면서)
정희원:난 늘 사유해. 여기 있으면 죽을 만큼 심심해서 오히려 더 많이 하는 편인데.
한영휘:음..첫 번째랑 세 번째는 똑같은 질문인데..
인어 사냥을 하면 돈을 준다고 해서 한 거야.
결과적으로 차용증만 수십 개지만. (헛웃음 치면서 고기 집어먹는다.)
정희원:그래...? (네가 멍청한 사람이라는 확언만 얻고 끝났다.)
맛있네, 이거. (소고기 집어먹는다.)
그럼 두번째 질문은?
한영휘:...눈으로 멍청하다고 말 하지마.
(한숨 쉬면서 소고기 몇 점 더 올려준다.)
정희원:어머, 그런 거 구별할 줄은 아는 지능이구나.
한영휘:넌.
나한테 무례를 운운할 게 아니라고.
정희원:음...~
그래서?
(냠)
한영휘:가족사진이야.
...저기 나 닮은 사람은 아버지고.
정희원:아하.
인어는?
한영휘:...
(술을 한 모금 더 입에 대면서 들이킨다.)
몰라. 아버지가 좋아하던 인어.
아버지가 빠져살던 인어..
둘이 나름 좋아보였어.
정희원:(냠)
과거형이네..
한영휘:..
인어는 그렇더라고..
네가 말했던 것처럼.
사람은 못하는 게 있는데. 물에 빠지면 점점 숨을 못 쉬게 되는데..
바다에 가고 싶다고 자주 말했어.
정희원:(뒷이야기가 대강은 짐작이 가는 듯 잠자코 들으며 고기를 집어먹는다.)
한영휘:...
(눈 비비면서 술을 더 목구멍에 들이붓는다.)
아버지를 바다 속에 처박은 인어를 미워하기도 했고..
거절할 이유가 없었지.
..아무리 같이 산다고 해도.. 뭔가를 해준다고 해도.
결국 인어는 바다에 사는 생물이야. 인간과는 본질이 다르다고..
정희원:그 인어가 네 아버지를 많이 사랑했나 봐.
그래서, 그 복수의 화살을 죄 없는 다른 인어들에게 돌렸다.. 이 말이구나.
한영휘:..누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여? (코웃음 치고는)
.....그냥, 인어를 죽이는 데에 애로가 없었을 뿐이지만.
사심이 없었다고는 말 못하겠네. (잔 채운다.)
정희원:사랑하면 같이 살고 싶은 법이지.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하고)
흐음, 그렇지만 돈도 못 받고 있는 상황에 부상까지 입어서 속이 편치 않겠어. (제 나름대로 건네는 공감의 말이다...)
그 술이 그렇게 잘 도와주던?
한영휘:그게 뭐가 같이 사는 길이야. 육지에서라도 같이 살 수 있게 노력한 내 아버지만, 그 인어한테 목을 맨 거겠지.
..
....그냥.. 마시면 기분이 좋아.
한 잔 마셔볼래?
정희원:그 인어가 진짜 노력을 안 해봤대?
한영휘:글쎄.
그 인어의 노력이 어쨌건 간에 결국 수몰이잖아.
정희원:지쳤어도 사랑을 하고는 싶었던 거야. 어느 쪽이든.
(잔 가리키며) 나도 그 작은 어항에 따라줄래?
한영휘:....
(잔에 술을 따라서 위에 올려준다.)
네가 그렇게 남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지 몰랐네.
정희원:그야 나도 잠수정을 만들려고 노력해본 적이 있거든.
인간이랑 인어가 머리를 맞대도 잘 안 되더라.
(알콜 향을 맡고 가만히 보다가 잔을 들어 찔끔 마시고는 다시 내려둔다.)
한영휘:..너도 좋아하는 인간이 있었어?
정희원:응. (짧게 대답하고는 그릇을 비운다.)
그래서 이해가 안 간다는 거야. 인어를 말하는 물고기 정도로 보니 뭐니... 하는 게.
진심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지만.
한영휘:....
인어도 진심으로 그럴 수 있어?
정희원:어떤 진심을 물어보는 거야?
한영휘: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만큼...
인어도 그럴 수 있냐는 소리야.
정희원:나의 경우에는... 적어도 그땐 그랬지.
사랑받는 만큼 사랑하는 데에 어려움이 전혀 없었을 때였거든.
한영휘:..네가 좋아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줘.
정희원:인간 말이야? 그냥 해안에서 자주 말 붙이다 친해진 인간이었어.
인간끼리의 사랑의 자세한 사례는 들 수 없지만, 여타 인어끼리의 사랑과는 크게 다름이 없었지.
다만 내가 뭍에 나오는 시기가 늘고 인간은 해안에 나오는 시기가 늘었으니, 각자 일상에 지장이 갔었어.
그래서 우리는 같이 살 방법을 찾기로 했어.
나는 밤에는 침몰한 난파선에서 함께 사는 데에 있으면 좋을 주문서 같은 것들을 찾아다녔고, 낮에는 인간과 함께 잠수정을 만들었어.
잠수정은 역시 두 사람의 머리론 한계가 있었지. 학자들의 도움을 받았다고는 했는데...
정희원:도저히 뭘 해도 물이 차는 거야.
음, 가물가물하네.
너무 지친 나머지 일단 데려간 다음에 주문을 써 보자고 홧김에 그를 끌고 들어갔던 것 같아.
한영휘:....
그 다음에는?
정희원:결말은 잘 알 것 같은데.
한영휘:.......
,... (착잡한 얼굴로 이마를 짚는다.)
(아예 테이블에 이마를 박고는 멍한 얼굴해)
정희원:얘, 술은 역시 맛이 없다.
가져가.
(가만히 바라본다.)
한영휘:이따가 가져갈래.
정희원:힘드니?
이런 걸 마시니까 그렇게 되는 거야.
한영휘:(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로 질질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그런 거 아니야.
정희원:눈물이다.
한영휘:닥쳐.,
정희원:싸가지가 없네.
눈물은 바닷물이랑 농도가 비슷해. 바닷물을 흘리는 거나 다름 없는 거지. 너... 바다랑은 완전 악연인가 봐, 그렇지?
(수조 벽에 빈 그릇과 비워지지 않은 잔을 둔 채 완전히 수조 안으로 잠수한다.)
한영휘:....
(네 말에 긍정하듯 눈을 한참 내리감았다가, 겨우 일어나 수조로 걸어간다.)
(그릇과 잔을 치우면서 작게 말했다.)
사과할게.
마음을 모르니 뭐니 했던 거..
정희원:깨달았으니 다행이네. (어깨 으쓱이며 미소짓는다.)
한영휘:...
정희원:됐어, 지금 와선 별 생각 안 들어.
가족애란 것도 헤어지면 끝나고.
한영휘:그래서 내가 네 친구를 죽인 것도.
별 생각 없는 거야?
정희원:대신 죽기 전에 네 어깨를 힘껏 물어뜯었으니 됐겠지.
안 그랬으면 별 생각 있었을지도.
한영휘:(옅게 웃고는)
있잖아, 야..
이름이 뭐야?
정희원:정희원.
한영휘:인간이랑 비슷하네.
희원아
정희원:나 서른 넘었어.
대답을 듣고 나면 네 이름도 알려줘야지?
한영휘:거짓말 아냐?
한영휘야.
나도 사실 서른 다섯살임.
정희원:새파랗게 어린 거 다 들켰는데 뭘...
한영휘:이제와서 누나라고 부르려니 좀..
(어색한 듯 식기 치우며)
정희원:(한숨)
그래, 마음대로 해.
한영휘:(식기 치우고는 테이블에 앉는다. 여러모로 심란한 듯 바라보다가)
정희원:뭘 보니.
한영휘:너도 나 봤잖아.
잘 때
정희원:아닌데, 등 돌렸는데?
한영휘:자면서도 네 시뻘건 눈의 시선이 느껴졌다고.
가위도 몇 번 눌렸어.
정희원:감은 좋아...
(ㅋ)
한영휘:(ㅋㅋ)
뭐..
이런 인어가 다 있지.
정희원:육식어니까.
한영휘:..
무슨 고기 제일 좋아하냐?..
정희원:참치.
한영휘:비싼 거 좋아하네.
정희원:비싸?
한영휘:응..
정희원:난 매일 공짜로 먹는데.
한영휘:사냥해서 먹으면 뭔들 공짜겠지..
정희원:그래, 네가 나를 사냥한 탓에 이젠 못 먹지만.
한영휘:(고민하듯 입을 꿈뻑이다가)
안 팔리면 버릴거야.
정희원:이젠 그걸 기대해봐도 좋겠네.
아직 궁금한 게 남긴 했어.
한영휘:..뭐가 궁금한데?
정희원:너 말고, 너한테 인어 사냥을 시킨 사람들.
갑자기 어느 시기부터 인어잡이 배가 부쩍 늘어나게 된 건 그 인간들이 원인이지 않을까 싶어서.
한영휘:뭐. 그 녀석들이 문제긴 할 거야. ..
그런데 뭐, 괴식 취향인 호사가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뭐가 궁금한 건데? 마지막으로 대금 받으러 갈 때 물어볼까.
정희원:궁금한 건 딱히 없고, 죽이고 싶은데... (네 눈 빤히 본다.)
대금 받고 죽이면 안 돼?
한영휘:..죽이고 싶다면 내 쪽이어야지. 어쨌건 인어들을 잡아 죽인 건 나야.
정희원:호오.
(흥미롭다는 듯 본다.)
한영휘:쉽게 죽어주겠다는 말은 아니고.
정희원:아니, 원인이 죽어야지. 넌 수단이잖아.
한영휘:그 말도 일리가 있네.
넌..
똑똑하다.
정희원:처음 알았다는 듯이 구네..?
한영휘:그냥 의미 모를 말만 하는 줄 알았지.
다 생각이 있었구나.
정희원:그건...
영휘야.
한영휘:응.
정희원:그건 네가 바보인 거야.
한영휘:(ㅋㅋ)
넌 그러니까.
나한테 무례를 운운할게 아니라고.
정희원:내가 얼마나 무례해지든 네가 바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단다.
한영휘:정희원 멍청아.
정희원:(딴청)
한영휘:불리해지면 피하고
정희원:뭐라고? 바보 말이라서 잘 안 들리는데.
한영휘:유치해. 서른 안 넘었지?
정희원:맞아. 사실 열 여섯 살이야.
한영휘:오빠라고 불러.
정희원:밥...?
한영휘:뭐야. 그 설정은..
정희원:뭐라고?
바보 말이라서 (이하생략)
한영휘:하.
(부들부들)
정희원:추워?
인간은 추우면 떨던데.
한영휘:아니 분해도 떨어.
정희원:신기하네.
한영휘:하하.
하하하!
(어색하게 웃으면서 정리하러간다.)
정희원:(허밍하면서 쉰다.)
(ㅋㅋ)
적요로 가라앉은 방에 기포가 부글대는 소리만이 잔잔합니다.
한영휘는 정리를 마친 뒤 지친 기색으로 침대에 몸을 늘어뜨립니다.
눈꺼풀에 품긴 홍채는 그렇게 기울여진 채 당신을 동공에 가두었다가, 곧 천천히 감겨듭니다.
한영휘:..잘자.
정희원:oO(인사를 하네...) 응.
(지켜본다.)
한영휘:..
인사했는데 왜 안 자. (눈 감고)
정희원:나 눈 뜨고도 자는데.
한영휘:와..소름이다.
정희원:배워두도록 해.
한영휘:(불편하게 잠 듬)
다시 또 당신들만의 좁은 심해가 저물어갑니다.
다를 것 없는 일상의 반복이었습니다. 간단한 식사, 신문, 취기 어린 야깃거리들, 세상에 대한 허울 없는 이야기.
물을 갈고 당신을 들어 올리는 이는 어느샌가 능숙해졌습니다.
당신의 어깨에 흉은 이미 다 아물었지만, 한영휘는 여전히 붕대를 감은 채 입니다. 인간의 육신이란 무릇 그랬죠.
그래도 이전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수조에 선 한영휘가 유리를 조심스럽게 두들깁니다.
한영휘:정희원.
아마, 시일 내로 대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정희원:잘 됐네.
한영휘:바다로 돌아가고 싶지?
정희원:그 녀석을 죽이는 게 우선이야.
한영휘:..
나참. 어떻게 죽이겠다는 건지..
정희원:네가 죽여줘. 너 그런 거 잘하잖아.
한영휘:사람은 죽여본 적 없어.
그럴.. 일도 없을 거고.
정희원:평생 네가 죽인 인어들한테 가위 눌리고 살아야 후회할 거니?
네가 인어를 죽인 만큼은 아니더라도 죗값은 치러야 하지 않겠어?
약한 소리 하지 말고...
한영휘:(시선 피하면서)..내가 그렇게 도덕적인 인간이었으면, 인어 사냥 같은 걸 했겠어?
정희원:도덕적이지 않으니까 살인을 하라는 거야.
인어들의 단말마는 괜찮고, 인간의 단말마는 무서워하는 거니?
어차피 성대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을텐데. 이상하네.
한영휘:그건, 인간이라고 생각 안 했으니까..
가능했던 거야.
정희원:그럼 그 녀석도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마.
한영휘:내가.. 네 부탁을 들을 이유가 없잖아.
정희원:네 기준의 인간이 그리 대단하니? 인간성이라는 게 뭔데?
원인 제공자를 죽인다면 네가 현상수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잖니.
한영휘: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 살인자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너는 몰라.
여기 머물 수도 없고, 또..
(몇 가지 변명거리를 주억이다가, 입을 달싹인다.)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아..
정희원:(그러면 아무 대답 없이 가만히 바라본다.)
(이내 수조의 윗부분으로 올라 유리 면 한 쪽을 부숴질 정도로 친다.)
한영휘:(식은 땀을 흘리면서 물이 새어나오는 유리 쪽으로 달려간다.)
뭐, 뭐해?
정희원:내가 죽이게.
(이내 유리 한 쪽이 깨지면 큰 파편 하나를 손에 쥔다.)
한영휘:물 밖에서 숨도 못 쉬는 몸으로 뭘 하겠다는 거야.
(당황해서는 유리를 막는다.) 파편이 물 속으로 흘러들어갈 거야. 여기서 나와.
정희원:상관 없어. (웃는다.)
한영휘:..,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정희원:대금을 주러 오면 날 소개시켜. 가까이 올 때 찌를 거니까.
한영휘:...,..
(크게 한숨 쉬면서 이마를 짚는다.) 하아....
내가 할게.
이러지마.
정희원:(눈 동그랗게 뜨고 본다.) 그러기 싫다며?
한영휘:싫어, 싫은데..
네 말이 틀린 게 없어서 널 말릴 수가 없어.
정희원:(입꼬리 올려 웃는다.) 진작에 말하지.
한영휘:..방조보다는 차라리 책임을 지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거야.
넌..
정말 무서운 인어야.
정희원:그래, 그렇게 보인다니 다행이네. (쥐고 있던 유리파편은 수조 바닥에 던진다.)
그럼 잘 부탁해.
나도 바다에 살면서 햇빛을 보고 싶으니까.
한영휘:....
(쓰게 웃고는 고개 끄덕인다.)
형태 없는 창살의 틈으로 손가락 조차 맞물릴 수 없는 종족의 기로. 아가미로 호흡하는 이와, 폐부로 호흡하는 이.
하지만, 당신들은 모두 어깨에 큰 상흔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유일한 공통점이 것 처럼. 어쩐지, 하얗게 돋아난 흉터에서 기이한 통증이 자글대는 것 같습니다.
아, 오염되었나보죠.
그는 더 말을 잇지 않고 방을 빠져나갑니다.
또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인공 수조 안에서 눈꺼풀을 감겨든 정희원,
당신은 소란스러움에 눈을 뜹니다.
현관문을 신경질적으로 여는 이는 한영휘입니다.
그리고, 그 뒤로 기이한 손님이 함께 들어섭니다.
슬랭어를 섞은 욕설을 드높힌 이가 테이블에 놓여 있는 종이를 손님에게 집어 던집니다.
허공을 너울이는 그것들은 당신이 일전에 보았던 것들입니다. 차용증이라고 써 있던 것들이요.
정희원: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31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한영휘는 손님의 멱살을 붙들고 윽박을 지르고 있습니다.
한영휘:도대체, 도대체 언제쯤 줄 건데? 더이상 이곳에서 항해를 할 수 없어! 나는 여기서 떠나야 해. 지금 바깥에선 우리 인어 사냥꾼들에게 현상금이 붙었다고!
우르릉, 쾅!
분노로 젖은 엄포에 번개가 들이칩니다.
그는 비로 젖었는지 온몸에서 물이 뚝, 뚝 떨어지고 있습니다.
맞은 편에 서 있는 기이한 손님은 어떤 말도 않은 채 그저 한영휘의 악력에 흔들리고 있을 뿐 입니다.
당신은 그 남자에게서 이상함을 느낍니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도 같아요.
하지만, 그것이 공포나 추위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바닥에 흩어진 종이에 물방울이 맺힙니다.
검은 잉크가 번져가요. 알 수 없는 내용들은 아무 의미도 없는 종이짝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 ...
소리를 지르던 한영휘의 손이 떨리고 있습니다. 허리춤 뒤로 칼을 감추고,
정희원:(저 손님은 분한 건가?)
(계속 지켜본다.)
손님에게 소리치는 목소리에는 떨림이 더해집니다.
아. 느껴지나요?
일생을 약육강식의 바닷속에서 생존한 당신의 본능이 말합니다.
이를 따닥, 따닥 부딪기며 마스크가 젖어가는 저 손님은 허기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그래, 당신이라면 알 수 있죠. 그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 쯤은.
한영휘가 칼을 들었을 때였습니다.
손님의 손이 그 칼을 틀어막고,
그 우그러진 손길.
거무죽죽한 손길은 수지의 단면이라고 지칭하기에 살 표피가 지독하게 썩어 있습니다.
가로막힌 벽 너머로의 시간이 잔상처럼 영사됩니다.
쿵!
찰나의 짧은 탄성과 함께 한영휘가 고꾸라집니다.
마스크를 찢고 얼굴이 늘어진 이는 우글거리는 안면으로 입을 쩍 벌리고 있습니다.
흉측하게 드러난 이빨에서 찐득한 타액이 뚝, 뚝 떨어지고 있어요.
어깨를 다시 다친 한영휘는 바닥에서 그 근육덩이를 발로 밀고 있습니다.
비대한 그것은 금방이라도 그를 씹어 삼킬 것만 같습니다.
정희원:
SAN Roll
기준치: 56/28/11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1 감소
작은 탁상 테이블로 후려치며 그것을 막아보려 애쓰지만, 소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작살 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는 그는 저 괴물을 막을 수 없을 겁니다.
정희원:(유리가 부숴져있던 구석을 손으로 치며 마저 깨부순다.)
정희원:
근력
기준치: 55/27/11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쩌저적. 두터운 유리는 당신의 손길에 금이 나갑니다.
좁은 곳에서 오래 있었던 탓일까요, 힘이 잘 들어가지 않습니다.
금 간 유리를 두들기는 당신의 모습을 한영휘가 보고 있습니다.
공포와 당혹감 서려진 표정은 곧 통증으로 눅어든 비명으로 일그러집니다.
우드득, 살점이 씹히는 소리가 들리고... .. 그제야 유리가 깨어집니다.
한영휘 위에 얹어진 그것에 유리를 꽂으려 하자 벽에 부딪힙니다.
꽤 세게 부딪힌 것 같죠. 그어억, 억, 그어억. 하는 소리를 내며 입에서 거품을 뿜어댑니다.
더는 그것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형태입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기이한 신음성을 내던 것은 천천히 우글대는 위족을 들어 보입니다.
그는 어깨에서 솟구치는 피를 틀어 막습니다.
한영휘:희원아,
희원아, 잠시만.
정희원:(돌아본다.) 왜?
한영휘:저건 못 이겨,
죽어.
(몸을 일으켜서 네 팔을 끌어당긴다.) 도망가자,
정희원:...
'그것'은 점차 일어나려는 기색을 보이며 우글거리는 다리들을 쭉 폅니다.
정희원:(이길 방법이 정말 없을까?)
한영휘:(네가 꾸물거리고 있자 안아든다.)
빨리 와!!
정희원:아, 그래도... (여전히 유리조각을 쥐고 있다.)
...주문을 좀 더 찾아보는 수 밖에 없나. (안긴 채 괴물을 내려다본다.)
한영휘:..저건 괴물이야. 내가 멍청했어.
(거친 발길질과 함께 문을 차고 빗길 사이로 뛰어나간다.)
비린내 스민 소낙비가 당신들을 온통 젖게 합니다.
비린내 스민 소낙비가 당신들을 온통 젖게 합니다.
차박, 차박, 차박. 빗물을 즈려밟는 발소리가 다급합니다.
안겨진 채 뛰어가는 길 뒤로 선혈의 궤적이 길게 늘어지는 게 보입니다.
그것은 곧 비에 금방 흩어지지만, 당신들이 왔던 길을 알리기라도 하듯 발자국 처럼 새겨집니다.
정희원:
민첩
기준치: 55/27/11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한영휘: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74
판정결과: 실패
콰당!
형편없게 넘어진 몸이 빠르게 일어납니다.
한영휘:...,
(잘 매달려있는지 확인함)
정희원:(대롱대롱)
한영휘:(이 상황에서도 어이없어서 웃음
정희원:뭘 웃어? 빨리 달려.
한영휘:안 아파?
(다시 달려
정희원:볼을 좀 많이 씹은 것 같은데 문제 없어.
한영휘:그 정도면 됐지.
정희원:(질겅질겅)
그나저나, 길에 계속 핏자국이 남으면 아무리 달려도 쫓겨서 잡히겠는걸.
지독한 폭우 때문이었을까요. 비늘과 지느러미는 마르지 않습니다.
한영휘:괜찮아.
바다로 가면 되니까.
항구를 가로질러 달려가는 호흡이 점점 불규칙해집니다.
검푸른 빛이 작열하는 거리는 그 누구도 없습니다. 입김이 스산해집니다.
저 멀리 기이한 것이 절뚝이며 오는 것이 시야에 보입니다. 하지만, 지독히도 느리기 그지 없죠.
곧 그는 모래사장을 밟습니다.
과출혈의 전조로 푸르게 변한 입술은 덜덜 떨고 있습니다.
거센 파도가 굽이치는 그곳에 도착하자, 참 거짓말처럼 빗줄기가 잦아듭니다.
발목을 적셔내는 바닷가에 선 그가, 천천히 당신을 내려듭니다.
아, 그리웠던.
당신의 바다입니다.
꼬리 끝에 닿은 차가운 바닷물은 소낙비에 서린 기운을 냈지만, 잠겨든 부분은 미지근합니다.
지느러미가 젖어들고, 한영휘 역시 몸을 앉혀듭니다.
얕은 바닷물에 하반신이 젖어듭니다. 하얀 거품 품긴 파도결이 비늘에 맞닿아 부서지길 반복합니다.
발자취 대신 핏기가 스밉니다.
당신들이 왔던 흔적이 물결에 휩쓸립니다.
이변은 없습니다.
한영휘:잘 가.
정희원:순순하네. 결국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으면서.
한영휘:그런가?
나한테는 나름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어.
정희원:그래? 인어에 대한 생각이 바뀐 거?
한영휘:아니, 그냥..
같이 있어서 재밌었다고.
정희원:인어 사냥꾼한테 이런 말을 듣다니... 신기하네.
(괴물이 시야에 들어오는지 확인한다.)
이제 어디로 갈 거야?
느릿하게 괴물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의 파편이 눈에 들어올지도 모르겠군요.
한영휘:..글쎄. 배로 도망칠까..
넌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거야?
정희원:완전히 도망자 신세던데,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
그렇지... 지금도 원래 있던 곳이나 다름 없어.
저 아래 심해부터 이 앞바다까지 전부 내 집이야.
한영휘:아, 나와바리다. (너절하게 웃고는)
정희원:나와바리?
한영휘:그러니까..
네가 관장하는 구역이다.
그런 말이야..
정희원:흐음, 다른 육지의 언어인가.
그래, 그래서 말인데, 끝내 도망칠 곳이 없다면 작살을 던져. 내가 특별히 알아봐줄지도 모르니까.
너에겐 조금 동정심이 생기는 것 같아.
한영휘:..작살을 던지면 어떻게 되는데?
정희원:그걸 보고 내가 올라가겠지.
주문을 봐둔 게 있다고 했었잖아.
도망갈 곳 없다면 바다에서 살게 해줄 수 있어.
인어들 사이에서도 원망받을지 모르겠지만...
한영휘:...
나도 익사하는 거 아냐? (멍청하게 웃는다.)
정희원:그것도 나쁘지 않은 결말인가?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미소짓는다.)
한영휘:넌 정말 무서운 인어야. (웃음 터뜨린다.)
정희원:진심인데?
한영휘:어때?
(붉게 물든 제 팔을 내민다.)
닻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아?
정희원:(킁킁)
(붉게 물든 팔 잡아서 접어본다.)
한영휘:아악! ( 몸 움츠리면서 인상 쓴다.)
아냐 그거,
아야야,,..
정희원:흐으음, 못 쓰겠는데?
한영휘:...
흠..
너한테 신세지는 건 싫지 않은데. 죽고 싶지는 않아.
정희원:그럼? (고개 기울이며 바라본 채 미소짓는다.)
한영휘:어떡하지? (미소짓는 얼굴 보고 묻는다.)
넌 나보다 똑똑하잖아.
뭔가 방법 없어?
정희원:여기서 죽을 순 없잖아. (파래진 입술을 보다 들고 있던 팔을 내려두고) 그럼 나도 배에 태워 줘.
닻은 어떻게 올리는 거야?
한영휘:와.
네가 닻 올려주면 되겠네.
(시허얘진 안색으로 웃으면서)
정희원:곧 죽겠네...
한영휘:그냥 밧줄 돌돌 올리면..
안, 안죽어.
정희원:말 더듬지 마.
한영휘:안 죽어.
정희원:그래.
간단한 거구나. 그럼 배로 가자.
고래 친구를 소개시켜 줄게.
한영휘:...
(숨 몰아쉬면서 너 도로 안아든다.)
그럼 너 고래 고기는 안 먹는 거야?
정희원:당연한 거 아니야...?
이러다 진짜 죽겠네. (출혈이 있는 부위를 눌러준다.)
한영휘:의리있네, 아!
(걸음을 빠르게 옮긴다..)
정희원:oO(배를 대놨으면 내가 수영해서 가도 되는데...) (굳이 안 말함)
한영휘:(그런 방법 따위 모르고 몸이 고생한다.)
정희원:(이러다 죽으면 그것도 운명이겠거니 생각중.)
(배에 도착하면 닻이 있는 곳으로 간다.)
한영휘:(접혀진 돛을 가리키고, 밧줄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
밧줄을 돌돌 당기면 돛을 펼 수 있어.
자. 자. 화이팅! (피를 흘리면서 응원한다.)
정희원:(밧줄을 당겨 돛을 펴본다..)
한영휘:좀 더 힘차게!
정희원:
근력
기준치: 55/27/11
굴림: 64
판정결과: 실패
한영휘:힘을 못 쓰네.
정희원:(끼이잉........)
한영휘:소고기 먹인, 보람이 없어..
정희원:참치 먹으면 살아나.
(열심히 당긴다..)
근력
기준치: 55/27/11
굴림: 63
판정결과: 실패
한영휘:내가..
참치 회 떠줄게,
살면..
정희원:(하)
맛있겠다.
근력
기준치: 55/27/11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난리네)
(끙끙대며 돛을 편다.)
돛이 촥 소리와 함께 펴집니다.
돛이 맟물리면 배가 출항합니다.
외팔 항해사가 나아가면, 얇아진 빗줄기가 검푸른 결 위로 파동을 만들어 내지 않게 됐을 때 둘의 몸이 젖어듭니다.
영원히 납득할 수 없었던 괴리를 이해한 자는 웃고 있습니다.
항해에는 주저함 조차 없습니다. 기피하던 정답을 마주한 이는 무릇, 그랬죠.
그의 표정은 어떻던가요.
진정 후련한 자의 낯이 아닙니까.
너울대는 바다는, 뭍과 달리 정말로 고요합니다.
이별은 없습니다.
한영휘:(헐떡이면서, 나온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본다.)
..바다는 아름다운 것 같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정희원:배에서 보는 바다는 또 다르구나.
아름답다 마다, 내 집인걸.
한영휘:그럼.
..내 집이기도 해.
나는 바닷사람이니까.
정희원:바다의 위쪽이랑 아래쪽으로 나뉘었을 뿐이네.
고래를 만나면 가까운 널 육지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할게.
그때까진 잠시 이렇게 있자.
한영휘:응. (배가 순항하자 천천히 닻 옆에 기댄다.)
..고마워.
정희원:뭐가?
한영휘:..구해줘서.
정희원:아하...
천만에.
한영휘:그것말고도..
정희원:됐다니까, 그냥 불쌍해 보였을 뿐이야.
한영휘:인어도 진심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려줘서..
그것도 고마워.
아버지가 헛된 일을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게 해줘서.
정희원:(잠시 바라보다가, 미소짓는다.)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네.
(그간 크게 미동 없던 낯에 그리움이 조금 서린다.)
한영휘:(조금은 인간적인 낯에 눈을 깜빡인다. 이내 미소 짓고는)
바다에서 다시 만나자.
정희원:(갑판 위에 누워서는) 그래.
한 말은 지켜야 하니까 죽지 말고.
한영휘:그렇게 있으니까 진짜 생..물고기같네.
정희원:...
한영휘:미안.
정희원:진짜 깬다...
한영휘:미안하다니까.
정희원:너는 돼지 같아.
돼지도 다리 있잖아, 인간처럼.
한영휘:너는 아름다워
정희원:(푸핫.) 이젠 그렇게 보이는 거야?
한영휘:인어같다고 했잖아.
인어의 아름다움이 두려웠어. 줄곧..
아버지가 수장된 것도.. 그것 때문인 것 같아서.
정희원:아, 그랬지.
한영휘:(힐끔)
정희원:괜찮아, 그래도 난 널 수장하지 않아.
난 이미 깨달음이 있는 인어니까.
물론.. 그때도 몰랐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름답다는 말은 제법 칭찬처럼 들리는 걸.
고마워. (꼬리 끝 지느러미로 네 무릎을 위로하듯 두들겨준다.)
한영휘:...만나서 다행이야.
지금은 칭찬이야.
네 꼬리 멋있다고 생각해.
넌 날 돼지라고 했지만..
(웅얼거리며 몸을 누인다.)
정희원:뒤끝... (따라 중얼거리며)
네 다리도 멋져.
한영휘:그래?뭐 보이지도 않을텐데.
정희원:육지는 부유하는 곳이 아니라서 중력을 지탱하는 뼈가 (해부학적 발언을 10분동안 하며)
그래서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
한영휘:그렇구나.
(이해 못한 표정으로 하늘 봄)
정희원:후훗... (좋아하는 거 얘기해서 신난 사람처럼 웃는다...)
한영휘:(이런 걸 뭐라고 불렀는데. 분명.. 떨떠름한 표정을 하다가 마냥 신나보이는 얼굴에 입 다문다.)
혼탁한 가약은 불안과 균열 투성이입니다.
수평선 너머 바다로 향합니다.
익숙한 타인의 피냄새와 상처 투성이 육신,
서로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흉을 아로새긴 당신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소낙비가 대지로 부딪기는 잘은 소음이 꺼지고
바다로 내려앉습니다.
[KPC ???, PC생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