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에는 금붕어가 헤엄치고 있었다.
2024-01-03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자, 끔찍한 악몽을 꾼 것 같이 온 몸이 식은땀으로 푹 절어있습니다. 잠이 덜 깬 탓인지 정신이 몽롱하고 멍한 기분이 듭니다.
고개를 들면 빛이 일렁이는 창문 너머로 거대한 금붕어가 헤엄치는 풍경이 보입니다.
고개를 들면 빛이 일렁이는 창문 너머로 거대한 금붕어가 헤엄치는 풍경이 보입니다.
감독: 정희원
출연: 한영휘


당신은 기나긴 꿈에서 눈을 뜹니다.
어떤 꿈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온 몸이 식은땀에 절어있는 것을 보아하니 끔찍한 악몽인 것 같습니다.
잠이 아직 덜 깬걸까요? 정신이 몽롱하고 멍한 기분입니다.

문득 고개를 들면 빛이 일렁이는 창문 너머로 거대한 금붕어가 헤엄치는 풍경이 보입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화롭고, 익숙한 풍경이네요.

????
(창문에 바짝 달라붙어)
뭐야?

이름도 붙여주지 않았던가요?
그러니까... 이런 이름을 붙여줬던 것 같은데...

..,?
케빈?

한참 그렇게 창 밖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을까요.
문에서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립니다.



(누나도 나오네..)
누나야?


누나도 쟤 알아?
(창 밖 가리킨다.)

응. 금붕어잖아.

(눈가 닦으면서 심호흡한다.)


아직 정신이 안 드네..

아침 밥 차려놨어. 어서 먹고 정신 차려.

밥은 언제 차렸대?(고개 끄덕이며 부엌 쪽으로 향한다.)
희원 평소 음식 실력이 어땠죠?
어쨌거나 둘이서 동거한 이래로는 매일 희원의 음식을 먹었으니까 어느정도 익숙해진 상태입니다.

('둘?')
창문 너머로 아침 햇살이 은은하게 비춰지는 거실 한 켠에 식탁이 있습니다.
희원은 식탁에 있는 의자를 빼내서 당신을 앉혀줍니다.
식기가 놓여진 식탁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희원이 주방에서 접시 두 개를 식탁 위에 내려놓습니다.
접시에 담긴 것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선홍빛의 날고기입니다.

동거한 뒤부터 매일같이 먹어왔던 음식이죠.
오늘따라 유난히 더 맛있어보이네요!

뭔...뭐야?


(대체 이게 왜 맛있어 보이는 거야?)
(뭐..뭐지?)
(매일 먹었던 이 느낌은 뭐야?)







끼니 거르면 안 좋아.
아침을 먹어야 하루동안 뇌가 활발히 활성될 수 있어.

(날고기랑 희원 번갈아본다.)


..
(머뭇거리다가, 한 입 먹어본다.)
지독한 피비린내와 선홍빛 고깃덩어리가 입 안으로 들어갑니다.
한참 그렇게 요리를 먹었을까요.
으득, 소리와 함께 무언가 씹힙니다. 뱉어보면 피로 물든 날카로운 뼈가 나옵니다.

기준치: | 65/32/13 |
굴림: | 78 |
판정결과: | 실패 |
1
.., (뼈를 보고 희원을 본다.)
누나.이거 맛이 좀 이상한데..
아니 애초에 날고기를 왜 먹어?!


맛이 이상해? 상하지는 않았을 텐데.
왜 그래? 잘 먹었잖아. 이제 와서 편식하는 거니?

이게 나왔는데, 안 이상하다고??

(뼈 집어들고 보더니) ...
손질하다 실수했나 봐. 미안.
내 거 먹어. 내 건 작게 잘라놔서 뼛조각은 없을 거야. (조각 내려놓고 제 그릇 내민다.)

(반 쯤 뜬 눈으로 보다가 제 볼 세게 꼬집어본다.)


(아픈가?)



희원의 그릇에 담긴 요리는 당신의 요리와 같은 선홍빛의 날고기이지만 이쪽은 적어도 뼈가 없는 듯 하네요.

아.아냐.. 이미 많이 먹었어.
누나 더 먹지..?

나도 많이 먹었어. (두 입 정도 먹고 만 듯)


알았어.




나 그렇게 안 늙었거든...?

꼭 나이가 문제라기 보다는..





(그리고 한 입에 넣지는 못하고 베어문다.)

(맛은.. 맛있나?)


(냠냠)
완전 레어네.

어떻게든 식사를 마치고 나면 희원이 식탁을 정리하고 접시를 설거지 하러 부엌으로 갑니다.
다음 식사 때까지는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면 될 것 같네요.


(다시 한 번 볼을 꼬집어본다.)
(꽉)


(케빈은 아직 창 밖인가?)


(일단 부엌을 둘러본다.)
부엌에서 희원이 아까 먹은 접시들을 싱크대에서 설거지 중입니다.
하얀 거품에 접시에 묻은 피가 섞여서 선홍빛으로 물들어 갑니다.
부엌 한켠에 냉장고와 찬장이 보입니다.


냉장고를 열면 정확한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토막난 고깃덩어리가 보입니다.

기준치: | 50/25/10 |
굴림: | 5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평소와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하던 중, 문득 어떤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냉장고 안을 가득 채운 이 고기는 대체 어디서 가져온 걸까요? 무슨 동물의 고기죠?

그러고 보니 누나. 이건 무슨 고기야?

글쎄. 소였나. 돼지였나...
닭인가?
잘 모르지. 내가 사둔 게 아니니까.



(기억을 되짚어본다.)


리온이 누나나 은제 형인가?
둘은 언제 온다고 들은 거 있어?

둘은 안 와.

왜?

딱히 놀러온다는 연락도 없고.

어, 언제부터..?

이따가 다시 얘기하자. 아직 설거지 남았어. (핑크빛 거품이 묻은 접시를 들어올린다.)



(슬쩍 찬장 연다. 물이나 마실 요량.)



시원한 찬물이 나옵니다.



(중얼중얼거리면서 거실로 나온다.)
거실 중앙에는 쇼파가 자리하고, 맞은편 벽을 TV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구석에는 배가 부풀어있는 까마귀가 누워있는 새장이 걸려있습니다.
혼자 서있기에는 다소 한가롭게 느껴질 정도로 넓은 공간입니다.


(새장부터 본다.)
새장에는 배가 거대하게 부풀어있는 까마귀가 뼈가 뒤틀린 모습으로 기어다니고 있습니다.
날개와 다리는 이상한 각도로 꺾여있고 달팽이라도 되는 것 마냥 등으로 움직이는 광경이 어쩐지 우스꽝스럽기까지 합니다.

기준치: | 64/32/12 |
굴림: | 8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으아악







새는 오늘도 귀여운 모습입니다.

(착잡한 눈으로 '까나리' 바라본다.)
고개를 젖히고 먹고 있습니다.

(어쩐지 속이 안 좋아진다..)
난 그럼 화장실 좀..(욕실로 향한다.)

응. 다녀와.

(후다닥)
거실과 방 사이를 잇는 복도에 위치한 욕실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독한 고무 냄새가 코 끝을 스치며 변기와 세면대, 검은 물이 찰랑이는 욕조가 보입니다.
깨져있는 거울에서 나온 파편이 욕실 바닥에서 반짝이고 있습니다.
다치지 않고 들어가려면 슬리퍼를 신고 들어가는 게 좋겠네요.


너무 깨졌다. 다치겠네.

누군가 주먹으로 내리치기라도 한 것처럼 거울의 중심부터 산산조각나있습니다.
깨진 탓인지 거울에 일그러진 상이 맺힙니다.
거울에 비친 수많은 당신의 모습이 마치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착각마저 듭니다.


욕실에서 풍기는 지독한 냄새의 근원지는 이 물이 원인으로 보입니다.
검은물을 만진다면 단순한 액체라기에는 진득거리고 불쾌한 감촉이 느껴집니다.
정희원의 검은 물질을 만져본 적이 있다면: 그것과는 다른 감촉입니다.

이게 뭐지?(냄새를 맡아본다.)



세면대 수챗구멍에 검은색 기다란 머리카락이 엉킨 채 밖으로 나와있습니다.

(머리카락 치울 생각으로 주욱 잡아당긴다.)

끊기지도 않고, 계속...


기준치: | 64/32/12 |
굴림: | 81 |
판정결과: | 실패 |
1
(꿈이다. 꿈이야..되뇌고 변기를 살핀다.)


(안심하고 희원의 방 쪽으로 향한다.)



가지 말고 이리 와봐. 까나리가 새 재주를 익혔거든.

(무어라 말하려다, 궁금해서 가까이 다가온다.)

잘 봐...
까나리, 관절 조립.

배가 부푼 까마귀가 두 다리로 서고 날개를 몸에 붙인 채 고개를 정면으로 둡니다.

다시 원래 알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이렇게 될 수 있는 거였어?
(어쩐지 감동이다.)

카나리아가 이렇게 똑똑한 종인 줄 몰랐어.

이내 모습을 유지하기 힘들었는지 뒤틀린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역시 이 모습이 편해보이네요!

카나리아라서 까나리잖아.



(그랬나?
신기하다. 몰랐어.



왜 지금까지 키우던 새 종도 몰라?

그냥 우리가 키우는 새인게 중요하지.


(소파에 앉아서 TV를 켜본다.)
까마귀도 은근 비슷하게 생겼다니까?





(휴대폰을 찾는다.)

전화, 메세지 따위의 기본 어플리케이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뭐가 있지?)

게임은 심심할 때 켜기 재밌었지!

(뒤짐)

'케빈 알렉스 톰슨... 흠... 케빈?'
본인이 적은 실없는 메모 몇가지가 있네요.


(TV 다시 꺼둔다.)

(소파에 드러누워서)



머리가 좀 아픈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누나 방도 보고 싶다고 한 거야.

우리 생활이야 매일 똑같지 뭘. 잊을 만도 해.

왜 우리 둘이 살고 있는 거야?그것도 모르겠다구..

흠... (빤히 보더니)
아무래도 잠을 더 자는 게 좋겠다. 이리 와. (손목 잡아 끈다.)

그럴까. 잠을 더 자면 멀쩡해질까..

그러고도 문제가 있다면 같이 상의해보자.

희원과 동거하면서 지냈던 방입니다.
침대와 그 옆에는 협탁이 자리하고 있고,
창 밖에는 거대한 금붕어가 헤엄치는 풍경이 보입니다.





계속 창문을 바라보고 있으면 금붕어의 커다란 눈이 당신을 향합니다.
무기질적이고 마치 끝없이 새까만 우주를 보는 것처럼 공허한….
그 눈을 마주하고 있으니 온 몸의 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 듭니다.

기준치: | 62/31/12 |
굴림: | 26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멍하니 금붕어의 눈을 바라본다.)
(누나 닮았다.)
(자연스레 옮겨간 시선이 협탁에 향한다.)



예쁘다..

(일단 한숨 자야겠다. 말 그대로 수면 부족일 수도 있고..)
(눈 감고 수면 시도한다.)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포근한 침대 속에서 다시 잠을 청합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나아질 거예요.
그럼 좋은 꿈 꾸길.

오늘은 평소보다 유난히 햇빛이 화창한 날입니다.
날씨도 좋으니 산책이라도 하자며 두 사람은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멍하니 서있자, 옆에서 걷던 희원이 걱정되는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제 볼 꼬집어본다.)





뭐..뭐야?
(희원과 주위 둘러본다.)

도대체 왜 이래? 또 회귀같은 거 한 건 아니지?
정말 선 채로 잠이라도 들었던걸까요. 눈 앞에 보이는 광경은 평화롭고 일상적인 풍경입니다.
금붕어가 헤엄치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새들은 지저귀며 푸른 하늘을 자유로이 날아갑니다.

아마 꿈이라면 지독한 악몽을 꾼 거겠죠.

괜한 기우일 겁니다.


윤리온은 출근했고, 은제는 당직하고 와서 잔다 하고, 주원이는 학원에 가서 우리끼리만.

이상한 꿈에서 돌아온 것 같아.
다행이다.
선잠 들었었나봐.


몽유병이라도 있는 건지..
놀랬다.

흠...
걱정하게 하지 마.

나도 몸 관리 좀 해야겠다.
요즘 너무 덜 먹었나봐.
휴! 다행이다.


몸이 허한가 하고.

그럼 카페에서 자바칩 프라푸치노에 비스킷 토핑이랑 캬라멜시럽 펌핑해서 먹어.

그건 오히려 몸에 안 좋아. 당밖에 없잖아.
인절미 토스트랑 베이글이랑 팬케이크, 가볍게 잠봉뵈르에다가 건강하게 차 먹어야겠다.



한참 그렇게 서로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찰나….,

퍽.

누군가가 당신과 희원을 밀칩니다.
도무지 인간의 힘이라고 느껴지지 않을만큼 무겁고 단단한 힘입니다.
화를 낼 새도 없이 디디고 있던 바닥이 사라지고, 두 사람은 끝없는 허공으로 추락합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은 아무도 없는 시커먼 우주 속에 둘만이 남은 것 같은 공포감마저 들게했던가요.
두 사람을 둘러싼 어둠은 점점 줄어들어 이윽고 하나의 형태가 됩니다.
어둠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금붕어의 눈이었습니다.
당신의 앞에는 새까맣고 공허한 눈동자로 당신을 들여다보는 금붕어가 있습니다.

심연처럼 어두운 눈동자는 마치 거울과도 같아서 당신의 모습이 고스란히 비칩니다.
금붕어의 눈동자에 비춰진 당신은 분명히 웃고있었습니다.
금붕어를 향해 손을 뻗습니다.
금방이라도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리인데 어째서인지 몸이 무겁습니다.

누군가 당신을 붙잡고 있어요.

(어째서..?)
(당황할 새도 없이, 붙잡은 손의 주인을 확인한다.)
고개를 돌리면 그곳에는 희원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날아가지 못하게 몸을 잡고있어요.
희원이 서있는 바닥에는 생전 처음 보는 언어들이 적혀있습니다.
몸이 점점 아래를 향해 가라앉습니다.



...그래, 이만 일어나, 한영휘.
문득 이 상황이 익숙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당신은 이 느낌을 알고있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몇 번이나 반복해서 꾸었던 악몽.
그러나 끝내 기억해내지 못했던 진실.
우리가 있는 곳은 진짜 '집' 인건가요?
당신은 기나긴 꿈에서 눈을 뜹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확실하게 꿈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온 몸이 식은땀에 절어있고, 잠에서 깨어난 몸에서는 한기마저 느껴집니다.
꽤 오랜 시간 잠에 들었던 것 같은데 창 밖은 여전히 아침입니다.
그래요. 이곳은 확실히 이상합니다.
창 밖에 금붕어가 헤엄치거나, 날고기를 식사로 먹는다던가, 새장에 이상한 생명체가 기어다니는 광경은 일반적으로 집에서 볼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어떻게 여태까지 이 모든 것을 평범하다고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었던걸까요.
희원은 어째서…. ….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침대 위에 엎드린 채 잠들어있는 희원이 보입니다.



(아무튼.. 여기가 이상하다는 건 확실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해.. 눈을 떠야한다.)
(슬그머니 밖으로 나와 희원의 방으로 향한다.)

당신과 동거하면서 희원이 지냈던 방입니다.
구조 자체는 당신의 방과 비슷해보이지만 벽에 무언가 그려진 캔버스들로 빼곡하게 채워놨습니다.
침대와 협탁도 보이지만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은건지 종이들이 올려져있고, 바닥도 엉망진창입니다.
영휘의 방과 달리 창문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습니다.
한 눈에 봐도 난장판인 방입니다.



도대체 희원은 무엇을 묘사하려고 한걸까요?

기준치: | 65/32/13 |
굴림: | 87 |
판정결과: | 실패 |
기준치: | 65/32/13 |
굴림: | 5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정확히 알아보기는 힘들지만 이목구비가 있는 것으로 보아 어떤 사람을 그린 것 같은 그림입니다.

(빤히)


(침대를 바라본다.)

푹신한 침대 위에는 종이가 어지러이 늘어져 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언어로 쓰여진 글자들이 어지러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굉장한 악필입니다.

(그래도 살펴 본다.)



희원이 쓴 것처럼 보이지만 글자를 읽기 어려울 정도로 굉장한 악필입니다.

기준치: | 65/32/13 |
굴림: | 88 |
판정결과: | 실패 |
기준치: | 65/32/13 |
굴림: | 77 |
판정결과: | 실패 |
(멍..)
(글씨 진짜 못 쓴다.)


(종이 한 장에 적힌 내용을 확인한다.)



(바닥을 확인한다.)
(샤샤샥)


케빈.

종이로 가려져서 창 밖 풍경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눈은 마주치지 않은 채, 서재로 간다.)
굳게 닫힌 문을 열면 낡은 종이 냄새를 풍깁니다.
책상과 책장이 보이는 서재에 들어서면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깨질 것처럼 두통이 몰려옵니다.


(현기증을 뒤로 하고 책상을 본다.)

희원 방에 있는 종이와 필기구도 이곳에서 가져온 것 같아보입니다.
책상 구석에는 표지가 없는 검은색 표지의 책 한 권이 놓여져 있습니다.


어디선가 들어본 괴담도, 처음보는 괴담도 보입니다.
페이지를 넘기다가, 붉은색 펜으로 밑줄이 그어져 있는 부분을 발견합니다.
오컬트 수치+3

세계와 세계를 잇는 통로..
(무언가를 떠올리며, 책장을 확인한다.)


기준치: | 70/35/14 |
굴림: | 6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촤라락 펼친다.)

그리고 영휘가 책을 꺼내면 드드득, 하는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책장이 옆으로 밀려나며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멋있다..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감상이었지만, 어쩐지 설렘 느끼며 아래로 향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새까만 어둠 속에서 당신은 한 걸음 한 걸음 아래를 향해 발을 내딛습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시간이 지나고,
도착한 지하실은 불을 켜지 않았음에도 내부가 훤히 보일 정도로 밝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열리지 않았는지 공기가 답답하고 퀘퀘한 먼지 냄새가 납니다.
텅 빈 지하실에는 오로지 전신 거울 하나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거울 너머에는 오로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만이 자리할 뿐입니다.
손을 뻗으면 막히는 것 없이 그대로 거울을 통과합니다.

지하실에 있는 전신 거울은 자그마한 블랙홀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대로 이 거울 너머로 몸을 밀어넣는다면 이곳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이곳은 두 사람의 집이잖아요?

아니, 이곳이 집이 맞던가요?
여태까지 평범하게 받아들였던 평화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진작에 깨달았잖아요.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미지에 대한 두려움일까요, 아니면 깨달음에 대한 기쁨일까요.
어느 쪽이든, 지금 이 상황이 큰 전환점이 될 순간이라는 기분이 듭니다.

'안녕 희원이 누나 난 한영휘야. 하지만 나는 누나랑 살았던 한영휘가 아니고 다른 세계에서 왔어. 원래 녀석은 열심히 누나를 찾고 있을 거야. 나는 가족들에게 돌아갈 테니까 누나는 그 녀석을 찾아줘! 건강하게 잘 챙겨 먹어야해.'
(열심히 편지를 써 두고는, 전신 거울 안으로 발을 내딛는다.)
내딛은 발이 거울을 통과하자 오싹이는 기분이 듭니다.
이 집 밖으로 나가보는 건 처음이네요.
처음... 그렇지.
이 집엔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조차 없었으니까요.
바깥과 완전히 단절된 집. 그렇다면 남아있는 사람은 어떡하죠?

(단순한 꿈이 아니라면..)
(어쩌면 누나도 함께 이상한 세계에 떨어진 걸지도 몰라.)
(거울로 나가다가, 발을 돌려 제 방으로 향한다.)
다시 제 방으로 향하면, 발소리를 들은 희원이 느리게 일어납니다.

언제 일어났어...?

아까 일어났어.
누나는.. 언제 푹 잤대.

아, 벌써 아침인가. 식사 해야지.
기다려 봐. 준비할게.

누나. 기다려 봐.


여기, 이상하잖아.
나갈 수 없는 집이 말이 돼?



(이유를 설명하기가 불가능한 듯 가만 눈을 굴리다가)
어쨌든 안 돼.

같이 여기서 나가자. 통로 같은 거울이 있어!

그냥... 나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그동안 딱히 문제 없이 잘 살고 있었잖아.

하지만 다른 소중한 기억들이 있어. 누나가 그걸 잊고 있을지도 몰라.
그래서 나가고 싶지 않게 됐다면? 누나가 모르는 기억이 존재한다면 어떡할래?

그런 게... 있어?

..저 너머로 간다면 알아볼 수 있을 거야.

아니야, 아니, 그렇지만.
(혼란스러운 듯 창 밖의 금붕어를 한번 보더니 방 밖으로 나간다.)
싫어. 지금 생활이 나한텐 당연한 일이야.
바깥으로 나가고 싶지 않아.

(네게 따라붙는다.)
누나 아들은 어떻게 됐어?
주원이 말야.

...집에 없네.
오늘은 학교 가는 날이던가?
아니... 오늘이... 어느 요일이지?

얼른 여기서 나가야 해.

같이 나갈 수 있어?
이상해.
나가면 외로워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누나는 외로울 새도 없이 바쁠 걸.

끔찍한 일 같은건 안 벌어지는 거지?

끔찍한 일이 벌어져도 내가 지켜줄게!

안내해 줘.

전신 거울은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 있습니다.
함께 들어가나요?

당신은 희원과 함께 거울 너머로 몸을 밀어넣습니다.
거울 속으로 들어오자마자 공간이 무너지고 점차 우리가 함께 살았던 '집'에서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일까요.
폐부가 짓눌리고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지는 것만 같은 고통이 느껴집니다.
받아들이기조차 끔찍한 고통에 의식이 점차 희미해져만 갑니다.
결국 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잠시동안 의식이 끊겼던가요.
깊게 가라앉아있던 의식이 수면 위로 끌어올려지는 생경한 느낌과 함께 두 눈이 뜨입니다.
당신은 자신이 침대 위에 누워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온 몸은 식은땀에 절어있습니다.
시야에는 낯설고도 익숙한 천장이 보입니다.
아주 머나먼 과거에서 보았던 것 같은 천장입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래요. 여기는 당신의 진짜 「집」입니다.

여태까지 집이라고 여겨왔던 곳은 진짜가 아니었습니다. 당신과 희원은 괴한의 습격으로 그저 차원과 차원 사이에 있던 공간에 갇혀 서서히 미쳐가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곳에서 버티지 못하고 가장 먼저 광기에 물든 것은 당신이었죠.
희원은 당신을 구하기 위해 애썼지만 결국 함께 미치기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악몽이 지나가고 두 사람은 무사히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고난을 이겨냈음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당신의 옆에는 희원이 누워있습니다.

따사로운 아침 햇살에 눈이 조금 부셨던가요. 당신은 고개를 들어 창문을 바라봅니다.
창 밖에 보이는 것은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던 일상이었습니다.

누나는 정말 누나였구나.
(만약 꿈의 세계라고 치부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등골이 서늘한 기분에 손을 꽉 잡았다.)

(ㅇ_ㅇ)
돌아왔구나.

이게 다 어떻게 된 거야?
왜..왜 출구를 찾지 못했지?

악질적인 괴한한테 휘말려서 이공간에 갇히게 됐었어.
온갖 잡스러운 괴이들이 우리 정신을 갉아먹었었고, 광기에 사로잡히게 해서 집에서의 생활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 만들었어.
네가 먼저 그렇게 되고 말았고, 난 빠져나갈 구멍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포기해 버렸지.
... 그 상황에서 어떻게 정신을 차렸던 거야?

하...정말, 돌아와서 다행이다!!(와락 껴안는다.)

다, 답답해. (밀어내려다가 멋쩍게 네 등 감싼다.)



왜 그런 지는.. 잘 모르겠어.

완전히 실패인 줄 알았는데... 통했어, 다행이야. (미소짓는다.)

처음에는 완전히 다른 세계인 줄 알고, 그냥 도망치려고 했는데.. 휴. 진짜 그랬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래도 찾아냈겠지만.

... ... (햇살이 비춰지는 창문을 바라보고, 안도하듯 한 숨 놓는다.)



돌아와서 다행이다.

결과적으로 잘 됐으니까 상관 없나? (돌아보고 웃는다.)

그런 이상한 곳에 떨어지는 바람에 카페도 못 갔고.
이상한 날고기만 먹었고.



그래, 제대로 된 스테이크 먹으러 가자.

(날름)


(나갈 준비하러 ㄱㄱ)
다시금 찾아온 평범한 일상이 우리를 반깁니다.
영원한 악몽은 이제 없습니다.

보상: SANc 1d5 회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