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Charms Rainbow

화수은화

2024-05-23

감독: 정희원

출연: 한영휘

상계:
건강
97
50 25 10
실패
한영휘:
행운 결정
65
음력 1월 1일,
저택은 춘절을 맞이해 지난 한 해 동안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새해와 새로운 저택의 주인을 맞이할 준비로 몹시 바쁩니다.
정문 앞에 서서 쉴 새 없이 오가는 사람들을 확인하던 호위도 슬슬 지치는 모양인지,
영휘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 더 보지도 않고 얼른 들어가라며 저택 안으로 영휘를 들여보냅니다.
영휘가 저택을 떠난 게 몇 해 전의 일이던가요? 실로 오랜만에 돌아왔군요.
마치 제 고향 같은 정겨움이 느껴집니다.
희원의 숙부, 저택의 새로운 주인어른이 된 이가 희원의 시중을 들 이로 영휘를 낙점했다고 합니다.
부친을 잃고 상심한 희원을 위해 어릴 적 희원을 모셨다는 영휘를 불러 희원을 위로하고자 한 것입니다.
저택에 무사히 도착했으니 우선은 새 주인어른을 먼저 뵈러 가야겠지요.
주인 어른은 본채 안의 서재에서 영휘를 맞이합니다.
재산과 위세로는 천하에 따라올 자가 없다 일컫는 당당한 집안입니다.
전 주인의 사치스러운 취향이 아직 남아 있는 서재에는 쉬이 구하기 어려운 고서와 섬세한 무늬가 양각된 도자기, 소맷부리 하나에도 섬세하게 자수가 새겨진 값 비싼 비단 겉옷 같은 것들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습니다.
책상에 앉아 집안의 대소사가 낱낱이 쓰인 두루마리를 읽던 주인어른은 영휘의 인사에 인자한 미소로 화답합니다.
주인어른: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자네가 영휘로군.
한영휘:(꾸벅 인사한다.)예. 대인을 뵙습니다.
흑치국에서 전 주인 어른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뒤늦게나마 유감을 전합니다.
주인어른:그래, 그래... 이렇게 보는 것은 처음이로구나.
부름에 응해줘서 고맙네. 마침 저택에 희원의 가까이서 시중을 들 만한 이가 없는 데다 희원도 영 기운을 못 차리는 듯해서 말이지.
이왕이면 친숙한 사람이 곁에 있는 게 훨씬 좋겠구나.
한영휘:아직도 기운을 차리지 못하셨군요. (근심이 서린 낯으로 말하고는, 이내 주먹 쥐어보인다.)
네. 제가 기필코 아가씨의 상심을 달래드리겠습니다!
주인어른:(허허허 웃는다.)
자네도 알겠지만, 희원은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해 자기 처소에서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지 않나.
앞으로도 희원의 곁에서 잘 살펴 주게.
자네가 성심껏 그 아이의 시중을 들어준다면 나도 한시름 놓을 수 있을 거야.
한영휘:못 본지도 오래되었지요. 저도 아가씨를 다시 뵙게 되어 반가운 차입니다.
모쪼록 열과 성을 다하겠습니다!
주인어른:부탁하네.
참, 별당에 들어가더라도 처소 안까지는 들어가지 말고, 대할 때도 가리개 뒤에 있어야 하네. 혹시 잊었을까 말하는 것이니 꼭 명심하게.
대화가 아무리 될 때쯤 영휘가 이 저택에 있을 때도 집사를 맡았던 노인이 찾아 옵니다.
집사의 방문에 주인어른은 영휘를 내보냅니다.
주인어른:희원이 자네를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을 게야. 어서 가보도록 하게.
한영휘:(인사하면서 빠져나온다.)
(반가운 달음박질로 별당 향했다.)
서재에서 물러 나와 별당으로 향합니다.
별당은 이 넓은 저택 부지 안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박혀 있어 서재에서 나온 뒤로도 한참을 더 걸어가야 합니다.
저 멀리 꽤 높게 둘러친 담장과 담 너머로 보이는, 아직 꽃이 채 피지 않은 목련 나무의 앙상한 가지가 보이면 드디어 별당에 다다릅니다.
수화문을 건너 들어선 별당은 그 후로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 저택에서 오로지 이곳만 세월이 멈춘 듯 달라진 게 하나도 없군요.
내원 곳곳에 심은 목련 나무가 마치 영휘를 반기 듯 바람에 가지를 살랑살랑 흔듭니다.
몇 년 전 영휘가 저택을 떠났던 것도 이맘때였을 겁니다.
봄이 되어 목련이 피는 것만 보고 가라고 붙잡던 희원의 목소리가 선하네요.
결국 영휘는 목련이 피는 것을 보지 못하고 저택을 나와야 했습니다.
내원 안쪽, 희원이 기거하는 건물에는 온 창마다 가리개를 쳐두어 한낮에도 저녁인 양 어둡습니다.
햇빛 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주인의 성미 덕분입니다.
빛을 내는 것은 곳곳에 놓인 촛대에 밝힌 촛불이 전부여도, 처소 안은 온갖 귀한 가구와 장식품, 빛을 받지 않아도 반짝이도록 잘 닦은 패물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과연 ‘재복신’께서 기거하는 곳이군요.
물론 희원의 부친이 가져 다 꾸민 것들이라 정작 별당의 주인인 희원은 관심이 없어 본체만체하던 것들이긴 하지만요.
영휘가 도착했다 먼저 아뢰지 않아도 그림자 하나 어리지 않도록 몇 겹을 겹쳐 놓은 가리개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정희원:영휘니?
한영휘:(주변을 둘러본다.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그리 변하지 않은 목소리가 들리면 가리개 가까이 다가선다.)
희원아!
아, 이 목소리. 이 목소리조차 전혀 변함이 없으시군요.
기억에 남은 그대로 친숙한 목소리가 자그맣게 들려옵니다.
영휘가 가까워지자 자신도 가리개 가까이로 한 무릎 다가오는 듯 옷 이끌리는 소리도 함께.
이윽고 아래로 드리운 가리개가 살짝 들리고 그 틈으로 손이 뻗어 나옵니다.
정희원:(손바닥 내민다.)
한영휘:(내민 손바닥 위로 가볍게 손 얹는다.)
손이 좀 큰 것 같기도 하고.
정희원:(붙잡고는 확인하듯 만지작거린다.) 어머, 이게 무슨 일이람.
장성했구나, 영휘야. (작게 웃는다.)
그간 어찌 지냈는지 말해주렴. 건강한 듯하여 다행이야.
영휘 네가 다시 올 거라고 숙부께서 일러주셨을 때부터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한영휘:(남은 손으로 제 볼 긁적이며 가리개 너머의 희원을 바라본다.) 그건 너도..
흑치국 상단과의 거래가 끝나서 이제 고향으로 돌아온 참이야.
그 곳은, 재앙신의 분노를 사서 나라 전체가 독으로 뒤덮혀 멸망했다는 흑혜국 위에 세워졌다는 전승이 있는데..
막상 가 보니까 어두운 분위기랑은 멀더라!
정희원:전승은 나도 들어봤어. 떠난 곳이 그곳이었구나.
흑치국 말고 다른 나라로도 가보았니? 어땠어?
한영휘:흑치국 말고 다른 나라? 으음. 해상 제국이라던 나라도 가봤고~ 신기한 동물들이 많은 섬나라도 가봤지.
제일 오래 머무른 곳은 흑치국이지만 말야~
광산이 정말 많더라고.
정희원: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장신구를 이것저것 보여주시면서 흑치국의 것이라고 하셨던 일이 가물가물하게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해.
해상 제국과 섬나라도 궁금한 걸. 영휘 너는 물을 좋아하잖아, 거기서 머무르는 동안은 즐거웠겠다.
한영휘:맞아~ 정말 재밌었어. 제국은 역사가 깊은 모양인지, 해안가마다 동상이 있었고, 항구에서는 길고 큰 장이 열려서 물건을 많이 팔더라고.
희원이 네가 좋아하던 쥐포도 최고급산으로 챙겨놨었는데.. 흑치국으로 돌아가다가 배가 난파됐지 뭐야!
정희원:앗, 아쉽다...
한영휘:그 땐 정말 죽는 줄 알았어. 하핫.
물고기 밥 되는 줄 알았다니깐.
정희원:후후... 다친 곳은 없고? (손목까지 타고 올라가서 흉이라도 더듬어보려는 듯 만지작거린다.)
한영휘:발목을 그 때 크게 다쳤었어. 따개비 군집에 심하게 쓸렸었지..
그치만, 배 물품 회수하려고 바다 잠수했을 때는 재밌더라.
정희원:그래도 걸음걸이에 문제는 없어 보이던걸. 잘 회복한 모양이라 기뻐.
잠수? 그거 힘들지 않니? (부러운 듯한 목소리.)
한영휘:응. 지금은 말짱하지!
좀 힘들지만 나는 폐활량이 좋거든.
요 앞에서 해녀를 할까봐. 조개 따다줄까?
정희원:안 돼. 이젠 날 챙겨줘야지.
후후, 조개는 괜찮아... (다시 손 주물거리다가)
오랜만에 보니 정말 좋다.
한영휘:그러게. 너무 오랜만이야. 주인 어른이 돌아가셨을 때 오고 싶었는데..
정희원:너도 네 일이 있었으니까 이해해.
있지... 오랜만인데 내기라도 하나 하지 않을래?
내기라. 이 또한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말입니다.
언제나 별당 안의 처소에 홀로 들어앉아 적적하기 짝이 없는 희원은,
유일하게 자신의 말벗이 되어주었던 영휘와 ‘내기’라고 이름 붙인 둘만의 놀이를 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정희원:방법은 기억하고 있니? 내가 가져와 달라고 부탁한 물건을 네가 가져오면 네가 이기고, 가져오지 못하고 하루가 지나면 내가 이기는 거였잖아.
지금까지 일흔 판을 해서 내가 서른여섯 번을 이기고 네가 서른네 번을 이겼던가...
한영휘:아~ 당연히 알지! (손깍지 끼고 쭉 위로 내민다.)만난 기념으로 내기 한 판 할까?
조개는 아니고. 이번에 생각난 물건이라도 있어?
정희원:으음... 어디 보자...
그렇지. 이건 어떨까? 오늘 밤에 머리라도 가져오련?
그간 일흔 번의 내기가 그러했듯 이번에도 난해하기 짝이 없는 심부름입니다.
묘하게 짓궂었던 희원의 성정도 여전한 것 같네요.
한영휘:으엑.
항상 뜻 모르겠다니까~
하지만 좋아! 내기를 했으면 이겨야하니까!
정희원:좋아. 이번 문제는 쉽지?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한영휘:좋~아.
금방 찾아올게!
정희원:그래, 밤에 보자. (손을 가리개 안으로 집어넣는다. 이내 옷자락을 가볍게 정돈하는 소리가 들린다.)
한영휘:(이번엔 언제 나와줄까? 힐끔 가리개를 바라보고는, 내기를 위해 별당을 나선다.)
머리라...
❁:희원은 손이 많이 가는 주인은 아니라 낮 동안에는 주로 저택을 돌아다니며 조사를 하거나 내기의 정답을 찾거나 혹은 영휘의 처소에서 푹 쉴 수도 있습니다.
1장에서는 〈부엌〉 〈서고〉 〈정원〉 을 조사할 수 있습니다.
한영휘:흐으으으음..
머리라..
참새머리구이라도 가져다줄까?
(고민하며 부엌으로 향한다.)
오늘 이 저택에서 부엌만큼 바쁜 곳이 또 있을까요?
춘절 음식 준비로 부엌 안은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탕, 탕, 탕, 도마에 칼이 부딪치는 소리와 무 쇠 냄비에서 지글지글 볶고 끓이는 소리……
그 사이로 잡다한 수다가 양념처럼 툭툭 뿌려집니다.
한영휘:
듣기
10
70 35 14
극단적 성공
또 다른 곳에서는,
...와 같은 이런저런 소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영휘:'도망'?
농땡이 한 번 거하게 치네.
(얻어먹을 것 없는지 기웃거린다.)
널찍한 그릇과 도마 위에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속을 꽉 채우고 찜통에 쪄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며 기름에서 금방 건져 올린 채소나 생선튀김, 자작하게 뿌린 기름에 구워 고소한 맛을 흠뻑 머금은 고기 산적, 신선한 과일과 예쁜 틀에 꾹 눌러 뺀 떡 등등.
한영휘:저기..
혹시 남은 음식 없나요?
풍채 좋은 아주머니가 영휘를 돌아봅니다.
아주머니:으응? 준비된 음식을 막 내어줄 수는 없지~
안 그래도 바빠 죽겠거든! (흘러내리는 소매 다시 걷어붙인다.) 먹고 싶으냐?
한영휘:..(희원 이름 팔려다가 참으며)
예. 혹시 일 좀 도와드리고 얻을 수 없을까요?
아주머니:도와준다고? 아유~~~! (호탕한 웃음소리.)
도와주면 당연히 줄 수 있지! 자, 이거 먼저 좀 썰어보거라.
그러면서 영휘의 손에 턱 하고 주방 칼을 쥐여줍니다.
바로 앞, 사람이 빈 도마 옆에는 대파가 산처럼 쌓여있습니다.
일하지도 않은 자 먹지도 말라!
열심히 손질해 보자고요.
한영휘:(칼 휘리릭 돌려 잡고는 손질 시작한다.)
한영휘:
손놀림
17
10 5 2
실패
사각...사각...
요리사처럼 훌륭한 솜씨는 아니나 제법 빠른 속도로 파를 썰어냅니다.
한가득 쌓여있던 파를 거의 다 썰어갈 무렵,
아주머니는 이내 영휘를 알아보듯 다가옵니다.
아주머니:낯이 익다 싶었는데 어렸을 때 별당에 있던 영휘 아니냐?
희원 님을 모실 하인이 새로 온다더니 그게 영휘였구먼.
한영휘:기억하시네요!
아주머니는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
아주머니:어이고, 오래돼서 몰라볼 줄 알았드니만~
잘 컸다, 잘 컸어. 그래. 그만 썰고 이거 받아가거라.
그리고는 넓은 접시에 산처럼 만두와 튀김, 떡 등을 쌓아 영휘에게 건넵니다.
한영휘:누나 감사합니다!!
들고 가기에 조금 힘들어 보일 정도로 많은 양이지만, 영휘라면 한끼에 해결 가능하겠군요.
아주머니:(누나라는 말에 와하하 웃음...) 많이 먹고 더 커라! 희원 님도 좀 챙겨드리고.
희원 님이 입이 좀 짧으시냐? 옛날에도 뭐가 들어가든 반도 못 잡수셨지마는 요즘은 아예 음식을 입에도 안 대시니 이러다 진짜 줄초상 치르는 거 아닌가 싶다니까.
한영휘:음식을 입에도 안 대요..?(진심으로 충격 받은 표정 하며 떡 입에 문다.)
그럼..죽잖아요!?
아주머니:말이 그렇단 거지~
아무튼간 희원 님이 건강하시도록 또래인 너라도 어떻게 좀 잘 챙겨 드려보거라.
그래야 우리도 복 받는 거다. 희원 님은 그냥 주인님이 아니라 ‘재복신’ 님 인겨.
한영휘:(떡 우물거리고는. 음식들 빤히..) 예. 아무렴요. 희원 님은 저한테도 소중한 친구니까요.
재물과 복을 불러온다는 그거 말이죠..
아주머니:그려~ '재복신' 님.
알겠음 어서 가 봐. (등 탕탕 두들겨 준다.) 이제 주방이 더 번거로워질 테니까.
한영휘:네. 곧 춘절이라 다들 바쁘신가 보네요. 고생하세요! (꾸벅 인사하고는 부엌을 나온다.)
(산적을 우물우물 먹으면서, 정원을 산책한다.)
저택 안에는 크고 작은 정원이 여러 개 있습니다.
그중 가장 커다란 정원인 중 정은 수련이 가득 핀 호수 하나를 통째로 정원으로 만든 곳인데,
호수의 수면 위에는 수련이 가득 피어 있고 정자와 다리를 여러개 세워 연결한 모습이 누가 보아도 장관이라 할 만합니다.
전 주인어른이 살아계실 적에는 이곳에서 자주 연회도 열고 했었지만,
최근에는 그다지 쓰지 않아 조용한 곳이 되어버렸다나요.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한창 소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호수 중앙의 가장 넓은 정자에 척 봐도 곱상한 얼굴의 도련님이 하인 한 명을 무릎 꿇린 채 심하게 질책하고 있습니다.
이 저택에서 저런 차림새를 한, 저 정도 연배의 사람은 한 명뿐입니다.
지금 주인어른의 아드님이자 희원의 사촌이 되는 도련님.
납작 엎드린 하인이 고개도 들지 못하고 싹싹 빌기 바쁩니다.
하인:도련님, 제가 어떻게 일부러 그랬겠습니까? 이놈이 잠깐 헛디뎌서……
도련님:듣기 싫어! 네가 일부러 그랬든 실수로 그랬든 주인 옷자 락이나 밟는 머저리라는 게 사실이 아니게 되더냐?
하인:요, 용서해줍쇼. 한 번만 용서해줍쇼!
도련님:네 이놈! 말이야 누가 못해? 정 죄송해 죽겠으면 행동이라도 보이란 말이다. 그래, 호수에라도 빠지던지!
주변에서 숨을 삼키며 어쩔 줄 모르는 반응에도 도련님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도련님을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수행 하인들도 이 정도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릴 생각도 없어 보이네요.
실수 한 번에 애꿎은 불똥을 맞은 불쌍한 하인만 오들오들 떨고 있습니다.
한영휘:저런...
(안타까운 광경에 쉽사리 발 뗀다. 그릇 들고 하인과 도련님 사이로 걸어갔다.)
이 곳 호수는 매우 깊습니다. 도련님.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게 어떠실까요?
도련님:넌 뭐야? 저리 비켜! 내가 저 놈이랑 이야기 하고 있던 차였거든?
한영휘:전 희원 님의 시중을 드는 한영휘라고 합니다.
도련님:별당에서 한 발짝 안 나오는 사촌 녀석에게도 시중드는 녀석이 있었구나?
상관 없어. 계속 막지 말아. (도야가오함) 네 놈이 대신 호수에 빠지기라도 할 거냐?
한영휘:사촌 녀석이라니요. 도련님보다 손윗어른 이십니다.
그걸로 도련님의 화가 풀리신다면야. 기꺼이 할 수 있지요.
도련님:이, 일개 하인 주제에 자꾸만 말 꼬투리 잡지 말아!
(영휘를 매섭게 노려보더니 성에 차지 않는 듯 뒤에 있는 애꿎은 하인에게로 시선 옮긴다.)
하인:(ㅠㅠ)
한영휘:하인을 호수에 빠뜨리는 건 좋지 않아요.
이 곳의 호수는 깊습니다. 자칫하면 위험하다구요.
(도련님 옆에 달라붙어)
도련님:그러니까 더더욱 마땅한 벌이라고... (척 봐도 몸으론 못 이길 것 같아서 뒷걸음질친다.)
(그러더니 갑자기 혼자 분에 못이겨 씩씩거리기 시작한다.)
(삿대질한다.) 너... 너 두고 봐! 나한테 이런 식으로 대하고도 무사할 줄 알아!
도련님은 곧 쏜살같이 제 아버지의 서재로 도망갑니다.
한영휘:ㄴ..네?
오해입니다. 도련님?
도련님!
왜 저러지?
도련님:(ㅌㅌ)
다른 하인들은 저마다 아까의 일로 쑥덕거리기 바쁩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새로 오신 주인어른의 피붙이가 저런 사람이라면 저택도 옛날처럼 마냥 평화롭기는 그른 모양이네요.
영휘의 뒤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던 하인은 한 시름 놓은 듯 크게 숨을 내쉬고는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한영휘:흠..
지금 주인 어른이랑도 안 닮았어..(고개 기울이고는, 서고로 향한다.)
춘절 맞이 대청소는 서고도 피해 가지 못했습니다.
오래된 책을 전부 꺼내고 책장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탈탈 털어내, 책을 밖에 내놓아 습기가 좀먹지 않도록 잘 말리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하지만 다른 곳보다 긴장한 분위기가 맴도는 이유는,
고함과 탄식이 곳곳에서 들려오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도 창고 구석구석 박혀 있던 것을 전부 꺼내놓으니 제법 장관입니다.
정리하는 사람 중 몇 명이 둘러앉아 책을 구경하는 사이에 끼어 보고 있으면, 그들은 진귀한 구경을 하면서도 어딘가 꺼림칙한 티를 냅니다.
서고 일꾼:주인어른 취향이 좀 얄궂은 데가 있긴 하셨지만 이렇게 보니까 별 괴이한 책이 다 나오네.
귀신, 괴물, 무슨 의식 어쩌고…… 서고에 헛것이 바글바글 차 있대도 믿겠어.
한영휘:(슬쩍 옆에서 책들을 살펴본다.)
관찰력
37
65 32 13
성공
한쪽 구석에 반쯤 비틀려 열린 상자 안에 오래된 서신 묶음이 한가득 든 것을 발견합니다.
서명을 보니 희원의 부친이 친우에게 받은 서신 같네요.
한영휘:석상..?
서신의 내용을 다시 찬찬히 읽어보아도 무슨 내용인지 영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한영휘:재복신이라면 희원이라고 들었지만..석상은 무슨 소리지?
의식이 어떻고, 석상이 어떻고…… 영휘가 서신을 오래 붙잡고 있으면 일꾼이 다가옵니다.
서고 일꾼:다시 옮겨다 넣어야 하니 이리 주게.
한영휘:(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서신 뭉치 살피다가, 일꾼에게 건네준다.)
아, 네..
근데, 이게 다 무슨 내용이랍니까?
서고 일꾼:내가 묻고 싶은 말일세. 물론 대답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하겠지만...
주인어른 취향도 참 기이하단 말이지. 이게 다 무슨 말이냔 말이야?
한영휘:그러게 말입니다.. 이런 취향이 있으신 줄은 전혀 몰랐는 걸요.
(제 턱 매만지고는, 귀 기울여 본다. 대충이라도 아는 사람이 없을까?)
❁:글쎄요, 책 옮기기에 바쁜 사람이 태반인지라 아무래도 당장 더 알아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으니 잠시 쉬다가, 밤이 되면 희원에게 묻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한영휘: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하늘을 올려보고는, 제 처소로 걸음 옮긴다.)
시간이 참 빨라~
시간이 참 빠르군요.
여유롭게 산책하며 먹다 보니 아직 남은 음식들도 제법 됩니다.
처소로 돌아갑니다.
밤이 이슥한 시간, 양초가 흘러내려 사이에 끼워둔 못이 떨어져 덜컹, 하고 받침대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면 영휘는 스르륵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슬슬 해시가 지나 자시를 목전에 두고 있으니 지금 별당으로 출발하지 않으면 약속에 늦고 말테니까요.
한밤중에 몰래 찾아온 별당은 해가 떠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하지만, 오히려 낮보다 훨씬 생기 있어 보입니다.
낮에는 밖으로 한 걸음도 떼지 않는 주인이 가리개를 걷고 밖에 나와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희원은 내원에 지어진 작은 정자에 걸터앉아 영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꽃 피지 않은 목련 나무의 가지가 정자 안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한영휘:(훌쩍 큰 모습에, 어쩐지 다르게 보여 몇 번인가 멀리서 훑어본다. 그리고는 지척으로 걸어온다.)
기쁜 듯, 초조한 듯, 지루한 듯, 그리운 듯……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얼굴은 시시때때로 그 빛을 바꾸는데.
그 모습을 이 세상에 오로지 영휘만이 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희원은 유일하게 당신에게만 제 모습을 드러내니까.
정자 가까이 다가오는 영휘를 발견하면 희원은 얼른 손을 들어 영휘를 반깁니다.
정희원:어서 와, 영휘야. 여기 옆에 앉아.
한영휘:(희원의 옆으로 가 앉는다. 여러 가지 먹을 것 들고 온 채였다.)
정희원:내기의 정답은 잘 가져 왔니? (싸들고 온 것을 바라본다.)
많이 들고 왔네... 이런 건 반칙인데. 이리 줘보련? (손 내민다.)
한영휘:아~이건. 너 나눠주려고 가져온 간식이기도 하단 말야!
정희원:제법 영리해졌네~ (장난스레 웃어보이고는 음식을 이것저것 살펴보더니... 만두 하나 집어든다.)
이게 정답이야. 잘 가져왔네?
한영휘:'응?'
응.
정답이야?
정희원:응!
... (고개 기울인다.)
정말 그냥 먹고 싶어서 가져온 것 뿐이야?
한영휘:..
아..아냐!
만두가 머리라던 거 어디서 봤었는데..
자세히는 기억 안 나네. 맞아서 다행이다!(웃음.)
정희원:(가만히 바라보더니 작게 웃고) 그럼 영휘 네 승리야.
이제 네가 35승이구나. 분발하지 않으면 곧 역전당하겠는걸.
응, 신년이라고 다들 만두를 먹으면서 한 해 복을 비니까... 나도 너랑 같이 복을 빌고 싶어서 만두로 정했어.
한영휘:35대 36!!내일이면 동표가 될 지도~
그건 감동이다. 머리라고 했을 때는 깜짝 놀랐는데..
만두랑 머리에 대한 전설. 넌 기억 나?
정희원:물론이지. 사람의 머리 대신 만두로 제사를 보냈더니 재앙이 멈췄다는 이야기잖니.
영휘가 떠난 후로 별당에 제대로 된 하인이 있기는 했던 걸까요?
아무리 귀한 비단옷을 겹겹이 걸치고 있어도 그 안에 있는 마르고 수척한 손목과 몸이 감추어지질 않는데.
물론 입이 짧으니 항시 들어가는 식사를 몇 술 뜨지도 않고 그대로 내보내는 버릇은 여전하신 모양입니다.
주먹보다도 작은 만두 하나를 희원은 깨작깨작 오래도 먹습니다.
한영휘:아하..그런 거 들으면 참 신도 인간적이구나 싶어.
만두로 속았다니. (잘 먹으면서)
정희원:모든 신이 그렇지는 않을 거야. (깨작깨작 씹던 것 삼키고 먹는 모습 지켜본다.)
한영휘:그럼 전설의 신은 착한 녀석이었나?(냠냠 만두 먹는다.)
정희원:조금 바보같고 사람을 좋아하는 신이라면 그럴지도? (작게 웃는다.)
한영휘:하하. 그런 신이라니~ 하나도 안 무서워!
정희원:그런 신만 있었더라면 우리에겐 좋을 텐데...
(목련나무 가지를 보며 먹던 만두 내려놓는다.)
(그러더니 네 어깨에 고개 기댄다.)
영휘 네가 오니까 좋다.
한영휘:(다른 신이 있던가. 의아한 말에 앞을 바라보던 시선 네게 옮기면, 그보다 빨리 어깨에 감촉이 닿는다.)
(잠시 놀라는가 싶더니 차분해진다.)
나도 다시 널 만나니까 좋아.
정희원:너도 그래?
나와 가까이에 있으면 중병이 옮는다던가 하는 소문도 돌잖아.
안 무서워?
한영휘:다 널 본 적이 없으니까 하는 뜬소문이지.
난 너랑 있을 때 재밌었어. 지금도 당연히 반갑고..
정희원:...(웃음소리를 내고는) 앞으로 또 이렇게 매일 볼 수 있다니...
이렇게 계속 내기를 하자. 매일 밤마다 만나고, 같이 앉아서 담소도 나누고,
곧 목련 꽃이 피면 그것도 함께 구경하자. 그리고...
(무어라 말을 이으려다 만다. 올려다보며 웃는다.) 그렇게 하자. 약속이야.
한영휘:그래. 이번에는 꼭 같이 목련을 보자. (티 없이 눈 마주한 채로 웃었다.)
약속할게.
정희원:응. (새끼손가락 내민다.)
한영휘:(새끼손가락 마주 걸어 흔들었다.)
정희원:(함께 흔들며 미소짓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럼 이만 처소로 돌아가야겠어.
한영휘:벌써? 시간이 빠르네..
(입 닦고는 아쉬운 기색으로 엉거주춤 따라 일어선다.)
정희원:날이 아직 많이 추우니까. 너도 어서 돌아가 봐.
희원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습니다.
몸이 약한 희원은 오래 밖에 나와 있을 수 없고,
금세 찾아온 새벽에 누군가 이 모습을 볼까봐 두 려워 한 시진의 반도 채 지나지 않아 처소로 돌아갑니다.
정희원:조심히 돌아가렴. 다음에 또 내기를 하자.
한영휘:...응!내일 봐.
새해가 지나고 겨울의 추운 바람도 이제야 한풀 꺾였습니다.
영휘가 저택에 돌아왔던 겨울이 가고 훌쩍 봄이 다가온 것입니다.
전 주인의 손길이 곳곳에 닿았던 이 저택은 새로운 이의 등장으로 유례없이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시간의 흐름을 비껴간 별당을 맡아 보는 영휘에게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영휘의 일과는 아침 일찍 별당으로 가 밤새 무슨 일이 있진 않았는지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별당에 출입하는 이가 거의 없어 웬만해선 별일이야 없으나 오늘은 다른 날보다 조금 더 특별합니다.
며칠 동안 꽃봉오리만 틔우고 꾹 다물려 있던 목련이 처음으로 꽃잎을 벌리고 꽃을 피웠군요.
곧 목련이 만개하면 1년 중 저택에서 별당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가 찾아올 겁니다.
그 다음으로는 희원을 깨우고 아침 식사를 가져다줄 차례입니다.
부엌에서 식사가 와도 별당 안까지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영휘를 포함한 미리 정해진 극 소수뿐이라,
영휘는 수화문 바깥까지 나와 식사를 가져오는 하인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유난히 식사를 가져오는 게 늦네요.
한영휘:(목련을 보고, 희원이 기뻐하려나..즐거운 생각하고 있으면, 좀처럼 밥이 오질 않는다.)
(수화문 바깥에서 인영이 보이는지 확인한다.)
❁:조금 더 기다려봐야 하나?
수화문에서 일각을 더 기다리자 허둥지둥 식사를 이고 오는 하인이 보입니다.
그는 영휘에게 연신 사과의 말을 전합니다.
하인:늦어서 정말 미안한데, 오늘 하루만 좀 봐줘요.
아침에 부엌에서 아주 난리가 났었다니까요.
한영휘:'왔다..!' 저런.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하인:놀라지 말고 들어요.
글쎄 부엌일 맡 아보는 고참 중에 장씨라고 있잖수, 그 사람 남편도 이 집에서 주인어른 심부름꾼으로 일하는데 글쎄 한밤중에 변소 간다고 나갔다가 아침에 시신으로 발견됐다지 뭐야!
장 씨라면 식당의 아주머니를 말하는 거겠죠.
하인:그런데 시신 상태가 아주 처참했대요. 꼭 마른 곶감만치 쭈글쭈글 쪼그라들어서……
얘기만 해도 소름 끼쳐. 심지어 창고 근처에 묻혀 있던 걸 꺼냈다지 뭐야!
한영휘:.....
하인:하루아침에 남편이 죽은 것도 모자라서 시신이 그래서야 장 씨가 제정신일 수가 있나.
부엌에서 울고불고 아주 난리가 났지.
아침에 다들 놀라서 일도 못 하고 한 식경이나 멍하니 있었다니까!
한영휘:
지능
28
50 25 10
성공
❁:희원의 부친이 죽은 이후 저택에서 몇 명인가 자취도 없이 사라진 사람이 있다고는 하지만 워낙 일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다들 일이 고되어서 야반도주한 거라느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에는 바싹 마른 시신이 나왔다고 하니 다들 놀랄 만도 하죠.
어쩌면 지금까지 도망친 거라 생각했던 이들도 사실은 귀신에게 당해…… 아직 저택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한영휘:장씨 아주머니, 힘드시겠네요..(식사 후에 찾아뵈어야겠다 생각하며 식판 받아든다.)
하인:말도 마, 나같아도 미치고 말지...
아무튼 희원 님께는 적당히 듣기 좋게 말해줘요. 미움 받고 싶진 않어!
한영휘:하아...정말 흉흉한 일이네요.
그런 걸로 희원 님이 뭐라고 하지는 않을 거예요.
아침부터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침 식사를 들고 희원의 처소 안으로 들어갑니다.
...
영휘가 희원을 몇 번이고 부르지만 가리개 너머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인가 부르고 난 후에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가 조금씩 초조해질 때쯤
가냘픈 희원의 목소리가 화답합니다.
정희원:아, 영휘구나...
언제 왔니? 깜빡 졸았던 모양이야.
좋은 아침이야, 영휘야.
한영휘:아. 나도 방금 왔어.
좋은 아침. 식사 가져왔는데..어디 놓아줄까?
정희원:으음...
오늘은 입맛이 없어서 물리고 싶은데...
매일 고생해주는데 많이 먹질 못하니 미안한걸.
한영휘:많이는 안 먹어도 되지만, 끼니 시간은 지키는 게 좋은데..
몸이 많이 안 좋아?
정희원:몸이야 늘 그렇지만...
봄이 되니 졸음이 확 늘은 것 같아.
아침은 정말 괜찮아.
(작게 하품한다.)
오늘은 바쁘니?
괜찮으면 나와 내기나 하자.
한영휘:음..(볼 긁적이며 너를 가만히 바라본다.)
나야 항상 한가하지.
오늘의 내기는 뭔데?
정희원:후후, 요즘은 어떤 걸 가져오라고 할까 종일 그것만 생각하게 되네.
이번에는... 물밖에 뿌리를 내린 연꽃을 꺾어와서 보여줘.
한영휘:진짜 종일 생각한 주제 같다.
어렵잖아!?
정희원:잘 생각해 보면 금방 답을 낼 수 있을 거야.
한영휘:흐으음...
어려운 수수께끼다.
아.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것이 있어. 희원아.
정희원:응?
한영휘:서고에서 봤는데. 복이 들어온다는 석상이 있더라고. 제사와 의식에 대한 책들도 많고..
정희원:아버지 건가... (작게 하품하고는) 응..
한영휘:응. 전 주인어른께 그런 취미가 있었어?
정희원:좋아하시는 것 같더라. 왜? 영휘 너도 그런 것에 관심이 있어?
한영휘:음..그렇진 않은데.
복이 들어오게 해주는 신이라니까 네가 생각나서.
정희원:음...
영휘 너도 날 봐서 알겠지만. 난 재복신이 아니야.
그런 별명이 내게 왜 붙었는지도 모르겠어. 우연찮게 들어맞았나 보네.
한영휘:하긴..나도 그래 보여. 왜 네게 그런 별명이 붙었지?
옛날에는 별로 이상하다고 생각도 안 했는데..
오랜만에 보니까 궁금한 게 많아졌어.
정희원:...미안, 다 대답해주기에는 더 자고 싶어서...
밤에 보자. 내기에서 이기면 알려줄게.
희원은 그렇게 말하며 느리고 휘청이는 걸음으로 안쪽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2장에서는 〈창고〉 〈저택 정문〉 을 조사할 수 있습니다.
한영휘:(볼 긁적인다.)
대체 무슨 병이길래 밖에 나다니지 못하는 걸까?
왜 그 석상 신을 가리키던 말이 희원이를 가리키는 말이 된 걸까?
어쩌면..
뭔가 숨겨져 있는 게 아닐까!
(창고로 향합니다.)
장 씨네 아주머니 남편의 시신이 발견된 게 창고 근처라고 했던가요.
근처에만 가더라도 창고 멀찍이 몇 명씩 떼를 지어 건너다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저마다 한마디씩 거드는 목소리가 겹쳐서 들려옵니다.
창고 주변으로 주변을 정리하는 하인들과 관아에서 조사차 나온 관원들이 들락날락하고 있습니다.
영휘가 창고 가까이 다가오면 현장을 지키며 서있는 하인들이 영휘를 막습니다.
하인:한가하게 구경이나 할 일이 아니야! 관아의 나리들도 보 고 계시니 물러서 있게!
❁:막아서는 하인들을 잘 구슬려 안으로 들어가거나 혹은 돌아가는 척하며 그들의 어깨 너머로 몰래 창고 주변을 훔쳐볼 수도 있습니다.
영휘가 장 씨 아주머니와 안면을 텄다면 아주머니를 찾으러 왔다고 해도 좋습니다.
훔쳐보기로 한다면 짧은 시간 자세히 보기가 어려워 패널티 다이스가 하나 붙습니다.
한영휘:그치만, 전 아저씨랑도 알던 사이였는걸요.
아주머니도 걱정이 돼서.. 여기 계신가요?
하인:장 씨는 지금 누구랑 대화할 정신이 아닌데... 친한 사이냐?
한영휘:(고개 끄덕끄덕)
아주머니 한 번 뵙게만 해주세요!
하인은 조심스럽게 영휘를 창고 안으로 들여보냅니다.
❁:시신을 살피거나, 시신이 있던 자리를 보거나,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한영휘:(아주머니를 찾으려고 하면, 시신에게로 자연스레 시선이 옮겨간다.)
❁:시신은 멍석에 돌돌 말려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도록 잘 가려두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래로 삐죽이 튀어나온 종아리와 발목이 말도 안 되게 쪼그라들어 있습니다.
누가 보아도 정상적인 시신처럼은 보이지 않는데…… 심지어 사람이 무슨 짓을 한대도 시신이 저런 꼴이 될 것 같지는 않군요.
머리끝까지 쭈뼛거리며 소름이 돋습니다.
한영휘:'저렇게 바짝 마르다니..대체 왜?'
이성
69
70 35 14
성공
(시신이 있던 자리를 봅니다.)
❁:시신이 묻혀있던 구멍에 눈길이 갑니다. 구멍 주변으로 질질 끌려온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한영휘:
지능
71
50 25 10
실패
❁:음, 정말 사람이 간신히 몸 하나 욱여넣을 수 있을 크기의 구멍이로군요...
한영휘:'창고 안에 파서 묻었나?'
(자극적인 광경에 빼앗겼던 눈길 도로 장씨에게 돌린다. 조심스럽게 다가선다.)
아주머니..
아침부터 내내 울기만 했을 아주머니의 얼굴은 몹시도 퀭합니다.
그녀는 멍한 얼굴로 창고 뒤쪽에 주저앉아 있다가, 영휘가 말을 걸면 한참 후에야 대답하면서도 결국 다시 오열하기 시작합니다.
아주머니:왜 저 이가 죽어야 했지? 맹세코 죽을 짓을 하며 살지 않았어. 게다가 저런, 저런 말라비틀어진 꼴로…….
귀신이나 악귀의 짓거리가 분명해. 주인어른이 돌아가셔서 희원 님께 부정이 탄 거야. 저택 안에 귀신이 있어!
정신이 나간 듯 내내 혼잣말을 중얼거리니 뭘 물어본다고 해도 제대로 설명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한영휘:.....(오열하는 아주머니의 등을 그저 두드려준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어떻게 하루 아침에..
..'그러고 보니, 경황이 없어 희원이에게는 이 일을 말도 해주지 못했구나.'
장 씨 아주머니 말처럼 귀신의 짓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관원들도 뚜렷한 원인은 밝혀내지 못하고 결국 돌아갈 채비를 하기 시작합니다.
시신은 아무도 보지 못하게 잘 숨겨 저택 밖으로 옮겨집니다.
한영휘:....
(안타까운 눈으로 그 시신을 바라본다.)
아주머니..가실 수 있겠어요?
아주머니:아이고, 아이고... (바닥을 손으로 내치며 울다가 고개를 든다.)
한영휘:(걱정 담고 눈 마주친다.)
아주머니:(도저히 일어날 생각이 들지 않는지 훌쩍이다가 얼굴 문질러 닦고는)
이대로 둬라, 먼저 가...
한영휘:이대로 두고 어떻게 가요.
물이라도 좀 가져다 드릴까요? 이러다 탈수 오겠어요.
아주머니:하이고... 내가 애 앞에서 이러는 사람이 아닌데...
그럼 한 그릇만 떠다 주겠어?
한영휘:(고개 끄덕이고는, 부엌에서 물그릇을 떠온다.)
영휘가 물을 챙겨주면, 장 씨 아주머니는 전보다 훨씬 진정되었는지 감사 인사를 건네고 방으로 돌아갑니다.
동료 하인들도 장 씨 아주머니를 부축해 줍니다.
한영휘:...(오랜만의 재회가 이런 모습이라니, 밖으로 옮겨진 시신의 인영을 떠올리다가, 저택 정문 쪽으로 가 본다.)
오늘은 물건이 들어오는 날도 아니고 손님들이 많이 찾는 날도 아니건만 저택 정문 앞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습니다.
뭘 하고 있나 보고 있자면...
하인들이 궤짝 여러 개를 들어 밖으로 내가면 그 궤짝을 다른 사람들이 받아 수레에 하나씩 옮겨 싣기를 반복합니다.
궤짝을 받은 이들은 상인이라고 하기에는 인상이 너무 화려하고 그렇다고 밖에서 부른 일꾼들이라고 하기에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무얼 하는 중일까요?
한영휘:?
(슬쩍 일 도와주는 척 궤짝 옮긴다.)
영휘가 정문으로 와 궤짝 옮기는 것을 도우면 하인들이 흐르는 땀을 슥슥 닦아내며 지금 무엇을 하는 중인지 알려줍니다.
하인:고마워요!
주인님께서 저택 주인이 바뀌었으니 서고 정리를 좀 하신다고 해서 말이요.
전 주인님 책들을 아예 저택 밖으로 내다 버리든 하라 하시는데 이렇게 많은 걸 어디다 갖다 버리겠어.
그런데 마침 곡예단에서 버릴 거면 우리가 가져가도 되겠느냐 하지 않겠소?
한영휘:곡예단에서 책을 가져가요?
(의아한 듯 말한다.)
곡예단원:(물건을 받으며) 예, 저희는 제값을 주고 사가라고 해도 감사합니다, 어르신~ 하고 가져가려고 했는데 말이에요.
세상에 거저 주신다니 이게 웬 복입니까? 여기 재복신 님이 계신다는데 그래서 그런가 다들 맘이 참 넓으셔요
하인:하지만 나라도 이런 걸 싹 가져가 준다는데 얼른 내주고 싶을 거요.
궤짝 안에 봤소? (영휘를 보며 궤짝 가리키고) 무슨 귀신이니 뭐니 하는 이상한 책이 태반이라니까. 돌아가신 주인님도 이런 걸 서고에 모아 두고 매일 꿈자리는 성하셨는지 모르겠어.
한영휘:잘 모르지만 제물이니 의식이니..신기한 책들이 많긴 했어요.(볼 긁적이다가.)
그런데 곡예단에서는 이런 것들이 왜 필요한가요?
하인:재주 부리는 데에 필요한가부지.
궤짝을 거의 다 옮겼을 무렵, 갑자기 한쪽에서 우당탕탕 구르는 소리와 함께 꽥 비명을 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혼이 빠져나간 얼굴로 궤짝 안에 이상한 게 있다며 난리를 칩니다.
한영휘:어엉?
왜 그러세요?
(그 쪽으로 다가가, 궤짝 안 들여다본다.)
하인:뭐야? 대체 뭔데 그래? 에게, 빈 족자 아니냐. 뭘 보고 놀란 게야?
하인2:아닐세! 여기 분명히 이상한 게 그려져 있었다니까! 뭔 끔찍한 게 있었어!
궤짝 안에는 끈이 풀려 반쯤 펼쳐진 그림 족자가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족자를 들고 쫙 펼쳐 모두가 확인해도 안에는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무슨 그림을 보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직접 이야기를 듣거나 직접 자세히 살펴보아야 겠습니다.
한영휘:무슨 그림이 있었는데요?
❁:미친 사람처럼 경련하며 떨고 있는 사람에게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으니 【정신 분석】 판정으로 상대를 진정시키는 게 우선입니다.
주변 사람들 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보너스 다이스를 한 개 받을 수 있습니다.\
한영휘:..(장씨 아주머니가 떠올라 처음 보는 하인이 안쓰러워 보인다.) 저기..물 좀 가져와 주시겠어요?
하인:어어... 알았네. 기다려 보게나!
❁:보너스 다이스 +1
한영휘:
정신분석
94
1 0 0
실패
정신분석
84
1 0 0
실패
❁:도무지 진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한영휘:대체 뭘 보신거지?
(갸웃
❁:직접 그림을 살펴볼까요?
한영휘:(자기도 빈 족자 펼쳐본다.)
아무리 보아도 빈 족자 같은데……
오래 들여다볼수록 어쩐지 현기증이 일어납니다.
왜 이렇게 머릿속이 지끈거리는지 도통 알 수 없습니다.
현기증을 느끼면서도 이 빈 족자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서도.
한영휘:
이성
30
70 35 14
어려운 성공
❁:간신히 족자에서 눈을 뗄 수 있었습니다.
소란통에 곡예단 쪽에서 누군가 앞으로 나옵니다.
오랜 세월을 가닥가닥 주름으로 새긴 듯한 나이 든 노파입니다.
노파는 거침없는 손길로 족자 봉을 돌돌 말아 다시 궤짝 안에 넣고는 얼른 가져가라며 곡예단원에게 궤짝을 밀어줍니다.
그리고는 다시 사라질 줄 알았건만 어째서인지 노파는 영휘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빤히 쳐다보기 시작합니다.
한영휘:?
절..
노파:얼굴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쓰인 관상이구먼.
한영휘:보시는 건가요?
예?
노파:그래 자네.
한영휘:고생이라니..그게 무슨 소리죠?!
노파:(어리둥절한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죽은 사람 더 보기 싫으면 저택에서 떠나는 게 나을 것이네, 젊은이.
아주 질리도록 죽어 나갈 테니 말이여.
한영휘: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노파:기구하다, 기구해. 어쩌다 아주 지독하게 꼬여서는…….
노인은 수레에 올라타고, 궤짝을 전부 실은 곡예단의 수레는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굴러갑니다.
한영휘:아니 무슨 뜻인지..
저기요!
저주하고 그냥 가시면 어떡합니까!!
궤짝을 받을 때는 기뻐 보였으나 떠날 때는 몹시 서두르는 것 같네요.
마치 이 저택에 한시라도 있고 싶지 않은 듯이.
한영휘:뭐..뭐야?
너무한 거 아니야?
(한숨 쉬며 뒷목 벅벅 문지른다.)
'지금 이게 중요한 건가.'
(내기가 머리에 스치면 드는 생각이었다.)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이게 더 중요한 일 아닐까?)
한영휘:'물 밖에 뿌리내린 연꽃이라..'
흠..
아!
(저택에 호수를 본다.)
(의)
호수의 수면 위에 수련이 가득 피어 있습니다.
❁:뿌리는 물 안에 있네요.
한영휘:(호수에 잠수한다.)
❁:잠수합니다.
호수에서 헤엄치던 잉어가 당황합니다.
한영휘:(잉어한테 손 흔들어주고 땅을 판다.)
(물리적으로 연꽃 뿌리 파내고는 올라와)
하핫!
물 밖에 뿌리내린 연꽃이다!
(추욱 늘어지는 수련)
❁:수련: 추욱...
한영휘:어어?
(슬쩍 꽃 든다.)
이제 밤 되면 가져다 줘야지~
(흙, 물 투성이인 채로 제 처소 간다.)
❁:영휘: 축축...
덜컹, 양초에 꽂아둔 못이 떨어지는 소리가 울리면 눈이 번쩍 뜨입니다.
희원을 만나러 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택 안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다는데, 이런 시간에 겁도 없이 바깥을 나돌아다닐 사람이 달리 더 있을리 없으니 바깥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합니다.
별당으로 향하던 영휘의 발걸음이 어느 지점에서 멈춥니다.
별당 앞에 두 명의 호위가 조를 지어 지키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별당에 변고가 생길까 심려한 주인어른께서 호위를 붙인 모양이지만, 영휘 입장에서는 낭패가 따로 없군요.
한영휘:이런..
❁:별당의 담을 보거나, 별당의 주변을 수색, 정면돌파 등의 방법이 있습니다.
한영휘:(우선은 별당 주변을 돌아다닌다. )
'돌아다니다 보면 자러 가지 않을까?'
❁:서성 서성...
호위들은 요지부동입니다.
한영휘:...
(주변을 탐색해본다.)
(들어갈 만한 개구멍 없나?)
한영휘:
관찰력
15
65 32 13
어려운 성공
별당 뒤쪽 담에 작은 문이 하나 달려 있음을 발견합니다.
❁:정말 개구멍 크기입니다.
높이가 낮고 폭도 무척 좁습니다.
한영휘:흠..
난 머리도 안 들어가겠다~
❁:일단 넣어보자
한영휘:
크기
48
65 32 13
성공
❁:잘 욱여넣고 엉금엉금 기어가면 될 것 같지만 옷이 쓸리는군요.
한영휘:(옷 쓸리는 정도야..엉금엉금 기어본다.)
엉금엉금 기어서 별당 내부로 들어갑니다.
❁:겨우 옷을 말리고 흙을 털었는데 또 먼지를 뒤집어썼네요.
별당 안으로 무사히 들어왔다면 다시 희원을 만나러 갑니다.
그 사이 꽃이 제법 많이 핀 목련 나무 아래, 정자에 걸터앉아 있던 희원은 영휘가 보이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정희원:영휘야! 왜 이렇게 늦었어? 기다리다가 죽는 줄 알았잖니.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싶어서 얼마나 불안했는데…….
한영휘:헤헤. (흙 탈탈 털고는 가까이 온다.)
별당에 호위가 붙었더라고. 아침에 있던 사건 때문인가봐.
정희원:왜 이렇게 지저분해. (옷 털어준다.)
사건? (고개 기울인다.)
한영휘:개구멍으로 들어왔거든.
응. 아침에 장씨 아저씨가 돌아가셨거든..
범인도 아직 안 잡힌 것 같고..
정희원:장씨 아저씨가 누구지...?
'범인'이라고 말한다는 건, 사건이었던 거니?
어머, 어쩐지 늦더라. 최대한 조심스럽게 온 모양이구나.
한영휘:부엌에서 일하시는 장씨 아주머니 남편.
아침에 변소에 들른다고 했다가 사라지셨는데.. 그대로.
바짝 마른 시신으로 발견되셨대.
정희원:아...! (누군지 알겠다는 듯 탄성하고)
그건 끔찍한 일이네...
영휘 너도 조심하렴.
아, 그렇지, 내기... 정답은 가져왔니?
한영휘:...조심이야 하겠지만. 너무 기묘해서..
아. 응!
(품 안, 작은 화분에 심은 연꽃 내민다.)
물 위에 뿌리내린 연꽃이야!
정희원:(화분 받더니 눈 꿈뻑이며 바라보다가 웃음보 터트린다.)
아하하, 이건 정말 물에 살다온 꽃이잖아. 물 밖에 뿌리내린 연꽃을 가져와달라고 했는데.
이번엔 네가 졌어!
한영휘:그..그런가?
(볼 긁적이고는.) 물 밖에 뿌리내린 연꽃이 어디 있어?
모르겠다!
정희원:이리 와 봐. (손 내민다.)
한영휘:(손 잡는다.)
정희원:(그대로 끌고 목련나무 아래로 간다.)
여기 열린 꽃 말이야.
이 저택에서 연꽃은 연못에서만 자라지만, 별당의 연꽃은 나무에서 자라니까.
목련, 이게 정답이었어.
(올려다본다.) 하나 따 줄래?
한영휘:아!
다시 보니까 연꽃을 꼭 닮았네!
(올려다보며 감탄하고는, 고개 끄덕인다. 나무를 타고 오른다.)
정희원:조심해!
한영휘:
오르기
76
30 15 6
실패
오르려고 붙잡았던 나뭇가지가 뚜둑 꺾입니다.
한영휘:앗..!
그대로 발까지 헛디뎌 땅으로 추락하지만...
푹신한 것이 등에 닿고는 바닥에서 함께 구릅니다.
한영휘:아야야...?(뒤를 돌아본다.)
정희원:(받아주려다 실패하고 같이 굴러서 쓰러져 있다.)
무거워...
한영휘:희원아!
괜찮아??
(쓰러진 너 일으켜줘)
정희원:으으... (어질어질...)
한영휘:(일으켜서 별당 툇마루에 앉혀준다.)
어디 다친 건 아니지??
몸도 아픈 애가..
정희원:(앉혀지면 정신 차린다.) 괜찮아. 난 그냥 걱정이 돼서...
조심하지 그랬어.
한영휘:헉..날 받쳐준 거야?
고마워..
정희원:...응.
따오지 않아도 괜찮아. 함께 꽃구경하고 싶었을 뿐이야.
(화분 무릎 위에 올려둔다.)
한영휘:하하..평소에도 자주 오르는 편이라.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조심할게.
그치만 하나 땄어!(쥐고 부러진 나뭇가지 들면 목련이 한가득 펴 있다.)
정희원:어머...! 정말이네.
(나뭇가지에 달린 목련을 매만진다.)
하얗게 잘 피었구나.
가느다란 바람이 잔마루를 스치고 지나가면 꽃잎이 흔들립니다.
정희원:이 나무는 아버지가 직접 심으셨던 첫 나무야.
한영휘:그래? 참 예쁘다. (사방에서 피는 꽃과, 네가 든 꽃을 차례로 바라본다.)
정희원:그렇지?
옛날부터 이상하게 이 나무만 가장 먼저 꽃을 피웠었는데, 기억하니?
한영휘:그러게. 한참 전 일이지만..
전 주인 어른께서 심으셔서 그런가. 각별하네.
정희원:...응.
처소에서 내원을 내다보면서 목련이 피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이렇게 꽃이 피면 몰래 나와 구경하는 게 그렇게 즐거웠었는데……
네가 곁에 있는데도 지금은 옛날만큼 기쁘지 않아. 이상하지.
한영휘:..희원아..
혼자 있는 동안 많이 힘들었지. 주인 어른도 돌아가시고..
'내가 옆에 있어줬어야 했는데..! 어떡하냐..'
정희원:있지, 목련은 가지에 매달려 있을 때만 아름다워.
가지에서 떨어진 꽃잎은 금방 뭉그러지고 더러워지잖아.
지고 나면 시커멓고, 끈적이고, 추하고...
가지에 필사적으로 매달려야만 살 수 있는 게 꼭 나 같다가도, 바닥에 떨어져 썩어가는 잎도 꼭 나 같아서……
영원히 아름답게 피어 있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피고 나면 금세 져버릴 일밖에 남지 않아.
한영휘:..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어. (내뱉는 말의 무게를 감히 가늠하기 어렵다. 먹먹한 시선으로 가지를 잡은 손에 위로하듯, 제 손을 얹었다.)
..희원아. 요즘 몸이 많이 안 좋아?걱정이 돼.
넌 떨어지는 꽃잎에는 비할 수 없는 내 소중한 친구니까. 져버리는 모습이라도 그 사실만은 변하지 않아..
..네가 어떤 모습이라도 내게는 소중해.
정희원:(제 손이 감싸지는 감각에도 어두운 얼굴로 꽃을 내려다 본다.)
내 어머니는 날 낳고 돌아가셨어. 아버지도 날 여기에서 쭉 혼자 살게 했고...
너도 영영 떠나버리는 줄 알았어.
한영휘:(네 말을 들으면 죄책감이 서린다. 목련이 피는 것만 보고 가라던 네 목소리가 귓가에 일렁여서..)
나, 난 이제 어른이야 희원아!
내 일은 내가 결정할 수 있어.
널 절대 떠나지 않을게.
정희원:... 정말?
한영휘:응. 약속할게!
정희원:(고개를 들어 네 얼굴을 바라본다.) 그러면, 있지...
(하고 싶은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네 눈을 여전히 보고 있자니 도저히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약속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 정말 단순한 넋두리일 뿐이니까...
음울한 이야기 해서 미안.
내 몸상태는 괜찮아.
한영휘:(푸른 눈동자가 선명하게 네 모습을 담는다. 네 말 떨어질 때도 눈길 떨어지지 않았다.)
아냐. 이런 말을 나누기 위해 친구가 있는 걸.
..혼자 계속, 저택에 있으면..나라도 우울할 것 같아.
난, 네가 이렇게 힘든 얘기도 항상 나와 나눠줬으면 좋겠어.
우리 같이 앞으로 보낼 날이 많으니까. (티 없이 웃었다.)
정희원:(시선을 피하고 목련나무를 바라본다.) 정말, 네가 들어주니 기분이 한결 낫네.
(말과는 다르게 후련한 얼굴은 아니다.) 그래도 저택 안이 부쩍 뒤숭숭해졌다며.
무엇보다 함께 만나려면 몸조심하는 게 중요하지.
영휘야, 이제부터 해가 지고 나면 절대 밖을 돌아다니지 않겠다고 약속해 줄래?
나도 한동안은 늦은 시간에 널 부르지 않을게.
한영휘:...(그 후에도 걱정스러운 듯 네 옆선을 흘끔흘끔 보다가.) 맞아. 기묘한 살인범이 나타났으니까.. 우리 둘 다 몸 조심해야지.
네 말대로 할게!
정희원:(가지 내려놓고 네 손 꼭 잡는다.) 다시 손가락 걸고 약속하자.
한영휘:응. (새끼 손가락을 세워 네 소지와 맞닿게 걸었다.)
그럼 희원은 안심한 듯 미소짓습니다.
손을 놓아주고, 오늘은 특히 더 조심해서 가라며 영휘를 내보냅니다.
바깥의 호위들도 눈과 귀가 있으니 이 이상은 있을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
별당에서 물러 나와 처소로 돌아가는 길은 별당으로 갈 때보다 훨씬 더 스산합니다.
어쩌면 스산한 것은 영휘의 마음인지도 모르지요.
서둘러 발을 뗍니다.
빠르게 자박자박 걷고 있으면,
누군가 영휘의 팔을, 몸이 휘청일 정도로 강하게 잡아챕니다.
한영휘:...!?
휙 돌아보면 하인 한 명이 바들바들 떨며 영휘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습니다.
하인:귀, 귀신이야! 귀신이 있어!
한영휘:...뭐..어디요?
자세히 보니 얼마나 뛰었는지 머리는 풀어 헤쳐져 있고, 신발은 한 짝을 어디에 흘리고 왔는지 한쪽만 맨발입니다.
하인:귀신이 있었다니까! 내가 봤어. 내가…… 바닥을 기는 게, 시커먼 게 막, 막 사람을 질질 끌고…… 힉, 히익……!
얼마나 크게 악을 썼으면 새벽에 잠들었던 이들이 모두 깨어 밖을 나와 볼 정도입니다.
여러 사람이 붙어 젊은 하인을 영휘에게서 떼어내고 진정시키려 하지만,
그들 손에 들려 가면서도 여전히 몸부림을 치며 바닥에 넘어지고 뒹굴뒹굴 구르니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네요.
한영휘:어디에 있었어요?
❁:빈 족자에서 이상한 그림을 봤다고 비명을 지르던 사람과 동일인임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한영휘:...!
(심상치 않은 기운에 그 하인에게 되묻는다. 불길한 감각이 뒷목을 엄습한다..)
하인:저기, 저기에....!!!!
가리키는 곳은 탁 트인 곳입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닿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혼자 소란입니다.
한영휘:(탁 트인 곳을 바라본다.)
하인:저기에 있었어! 분명히 있었다고!
다들 영휘더러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영휘인들 알 턱이 없지요.
갑자기 튀어나와 귀신을 보았다며 비명을 지르는 이의 유곡절을.
동료 하인들이 겨우 진정시키고 처소로 데려갑니다.
여전히 경련하는 듯 떠는 듯 불안한 뒷모습이 눈에 밟혔지만...
상황이 소강되었으니 이런 흉흉한 때에 영휘도 어서 처소로 돌아가야겠죠.
...
그럼에도 밤이 끝나면 아침은 찾아오고 하루의 일과도 함께 시작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난 영휘가 별당으로 향하면 별당 앞에서부터 웬 소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도련님:내가 내 사촌 얼굴도 못 보느냐? 썩 비켜!
하인:도련님, 주인어른께서 어젯밤에도 별당에는 출입하지 말라 하셨잖습니까.
자, 어서 돌아가시지요.
주인어른의 아드님, 즉 희원의 사촌이 되는 도련님이 별당 앞을 지키는 호위 에게 바락바락 성을 내는 동안
꿈쩍도 하지 않는 호위와 도련님 사이를 가로 막느라 하인들이 쩔쩔매며 제발 돌아갑시다 하고 말리느라 바빠 보입니다.
저 괴팍한 도련님은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는지 고개를 휙 돌려 영휘를 쳐다봅니다.
도련님:거기 너! 사촌의 하인!
얼른 내 사촌에게 안내해라.
가서 정희원에게 내가 그 귀한 얼굴 좀 뵙자 한다고 전해.
한영휘:네?
안녕하세요. 도련님.
주인 어른께 허락 받고 오세요!
도련님:뭐?! 내 명령을 듣지 않아?!
쪼잔하고 고얀 것들!!
하란 대로 하기나 해! 어서 안내하라고!
한영휘:네?
도련님:왜 자꾸 되묻는 것이야?!
한영휘:그렇지만 그럼 주인 어른께 혼이 나요!
도련님:시끄러워! 네 녀석이 뭘 아느냐!
한영휘:진짜에요!
도련님:이게 진짜!
한영휘:아 진짜라니까요?!
그나저나.
왜 희원ㅇ..님을 만나시려는 건가요?
도련님:별당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얼굴 좀 궁금해서 그런다.
재복신인지 귀신인지 얼굴을 비춰야 알 수 있을 것 아니냐?
이제 알겠지? 빨리 문 열어1
한영휘:주인 어른 데리고 오시면 열어드리겠나이다~
도련님:꾀 부리지 말아! 천한 것.
주인어른:이 녀석!!!!!
도련님:히,히익, 아빠...! (움츠러든다.)
주인어른: 저 하인을 못살게 굴고 있었느냐! 저번에 그리 혼나고도 정신을 못 차렸어?
희원은 몸이 약해 사람을 만날 수 없으니 귀찮게 하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그동안 대체 뭘 들은 게야!
어서 돌아가라. 다시 별당 근처에서 어슬렁거린단 소리가 들리면 밖에도 못 나가게 가둬 둘 것이다!
제 아비에게 한껏 혼이 난 도련님은 거의 끌려가듯이 주인어른을 따라 별당에서 떠납니다.
한영휘:쯧쯧..
가기 전 이쪽을 살벌하게 노려보는 것도 잊지 않고요.
한영휘:(웃으며 손 흔들어준다.)
하여튼 저 성질머리하고는.
정작 별당의 작은 주인님은 별당 앞에서 자기 사촌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소란을 피우는 것도 듣지 못했는지,
처소까지 들어간 영휘가 한참을 불러도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가리개 가까이에 한 무릎 들어가 귀를 들이밀어도 아무 소리 들려오질 않네요.
숙면 중인가...
한영휘:으음..
희원아~?
묵묵부답입니다.
설마 자리를 비웠을 리도 없는데.
한영휘:음...
희원이 별당 밖으로 나오는 일은 그의 평생을 들어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테니.
그 순간 바깥에서 작고 여린 쇳소리가 들립니다.
한영휘:희원이야?
(바깥으로 눈 돌린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지만요...
바깥엔 별다른 인영도 보이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였던 거지?
어쨌든 희원이 안에서 곤히 자고 있다면 굳이 깨울 필요는 없겠습니다.
오랜만에 별당 청소라도 한 번 할까요?
한영휘:...?
(뭔 소리지)
❁:잘못 들었나?
한영휘:?(귀 한 번 파고 별당을 쓴다.)
별당 빗자루를 들고 정원을 쓸고 치웁니다.
목련 나무에서 떨어진 빛바랜 꽃잎들도 한데 모으고 웃자란 수풀도 대충이나마 정리해둡시다.
영휘가 열심히 청소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다시...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확실히 이 근처에서 들렸습니다.
한영휘:...
누구냐!
(귀를 기울인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 찾아보던 와중, 수풀 사이가 마구 흔들리더니 얼굴을 쑥 내미는 것은 자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입니다.
강아지:망!
사람은 들어오지도 못하는 곳인데 어디로 들어왔는지 몰라도 나가는 길까지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한영휘:우왓
강아지다~~~~
강아지:(낑낑대는 소릴 내며 프로펠러 꼬리로 추진력을 얻어 네 주위를 빙빙 돈다.)
한영휘:(주위 도는 강아지 덥썩 안아 쓰다듬어준다.)
멍멍아 안녕~~~
강아지:헥헥
한영휘:누구네 집 개인가?
강아지:(네 얼굴을 핥는다.)
한영휘:하핫(꼭 껴안고 핥아진다.)
강아지:(꼬리로 날아오를 수 있을 것만 같다.)
(충분히 반가워한 것 같으면, 내려오고 싶은지 몸부림친다.)
한영휘:(계속 껴안고 뽀뽀하다가, 겨우 내려준다.)
아~귀엽다.
강아지:헥헥
망!
(네 하의를 물더니 낑낑거리며 어디론가 끌고 간다.)
한영휘:(그대로 질질 끌려간다.)
어디가~
강아지가 이끄는 곳으로 영휘가 따라가면 강아지는 별당 뒤쪽 담 바로 아래에 멈춰 섭니다.
그리고는 말랑한 앞발로 땅을 마구 파기 시작합니다.
강아지:망!
한영휘:(강아지 옆에서 같이 판다.)
뭐가 있어?
강아지가 흙을 파는 것을 도와줍니다.
강아지:(킁킁킁킁)
한영휘:(삭삭삭)
한참 땅을 파 내려간 끝에...
뭉친 머리카락 같은 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영휘:..?
한영휘:
근력
84
75 37 15
실패
손가락이며 손등에 잘게 상처가 납니다.
1d3의 데미지를 입습니다.
강아지:왕! 왕!
한영휘:3
뭐야, 이게..?
땅을 전부 파고 나면 드러난 것은 언제 죽었는진 몰라도 꽤 시간이 흐른 것 같은 시신 한 구입니다.
온몸이 심하게 부패하고 썩어들어간 곳도 군데군데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몸의 피를 모두 빨린 듯 쪼그라들어 허름한 옷에 거의 파묻히다시피 한 시신.
한영휘:
이성
64
69 34 13
성공
2
대체 누가 이런 곳에 시신을 파묻었을까요.
아무나 들어오지도 못하는 이 외진 별당에 사람을 끌고 와서……
아니, 그보다 별당 안에서 죽였다고 보는 게 더 말이 될 겁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별당 안으로 누군가를 유인했거나 원래 별당 안에 있었던 사람…….
희원이 그 얇고 쇠약한 손목으로 시신을 끌어와 땅을 파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나요?
의기양양하게 땅을 판 강아지는 천진난만하게 영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왕, 왕 하고 짖습니다.
한영휘:....
(황망하게 흔들리는 시선으로 시신의 인적을 확인한다.)
누군지 가늠이 어렵습니다.
애초에, 영휘가 아는 인상착의가 아닙니다.
한영휘:......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강아지:왕!
한영휘:(강아지를 안아 든다.)
강아지:(영휘의 얼굴을 침범벅으로 만든다.)
한영휘:(멍..)
이..일단..
......
(별당으로 간다.)
희원아!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그렇게나 졸린가...
한영휘:(별당 안으로 들어가려 시도합니다.)
. 조심스럽게 가리개를 걷고 들여다본 안은 별당의 다른 곳들과는 다르게 텅 비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넓은 공간에 겨우 침대 하나가 전부니까요.
별당의 주인께서 쓰시는 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휑합니다.
한영휘:(침대에 희원이 있나?)
침대 또한 텅 비었습니다.
영휘가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온다면 문득 무언가 사각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닿습니다.
강아지:This message has been hidden.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에 무언가 진득한 것이 아래로 쏟아집니다.
순식간에 숨을 빼앗겨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됩니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미지의 공포 속에 갇히고 맙니다.
한영휘:
이성
83
67 33 13
실패
1
그렇게 영휘는 의식을 잃고 맙니다.
눈을 뜨면 늘 아침과 밤을 맞이하던 처소의 안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장씨 부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영휘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한영휘:.....!
(퍼뜩 일어난다.)
(두리번거리다 익숙한 얼굴 확인하고.) 아주머니. 무슨 일이..?
아주머니:어휴, 하마터면 변이라도 당한 줄 알았네.
괜찮냐, 영휘야?
그 사건 이후로 부쩍 피곤한 몰골입니다.
아주머니:영휘 네가 별당 바깥에서 쓰러져 있었다지 않냐. 깜짝 놀라가지고 일어날 때까지 지키고 있었지.
별당의 담 옆에서 쓰러져 있었다는데, 거기 사람들이 드나들어야 언제 뭔 해를 입었는지나 알지. 가뜩이나 다들 조심조심하는 차에 무슨 일이냐.
한영휘:저도 대체 무슨 일인지..영문을 모르겠네요.
...강아지가 들어왔었는데..걔는 못 보셨나요?
아주머니:강아지? 아, 아저씨들이 길을 잃은 것 같다고 내보냈어. 아는 녀석이던?
한영휘:아아..다행이네요. (고개 절레 젓고는) 그건 아닌데, 걱정 돼서요. ..
...지금 아침이에요?(두리번)
아주머니:해가 막 지고 있지. 몸 불편한 데는 없고?
한영휘:아. 아직 하루 안 지났구나..
네. 몸은 멀쩡해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주머니:성하다니 한 시름 놨구만.
그래, 오늘밤은 꼭 문단속 잘 하고!
몸 불편한 데 있으면 캄캄해지기 전에 이 누나 찾으러 와라.
영휘의 안부를 확인한 장씨 아주머니는 처소에서 떠납니다.
온 몸이 찌뿌둥한 느낌입니다.
그보다는 마음이 더욱 복잡하겠지만요.
오늘은 쉬어야겠습니다.
결국 오늘은 밤이 될 때까지 희원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했습니다.
희원은 자신의 병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죠.
“아무리 좋은 약을 쓰고 아무리 뛰어난 명의가 와도 고칠 수 없는 병”이라고.
그러니 나으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영휘가 늦은 밤 잠이 들고,
야심한 새벽 무렵 처소 주위에서 인기척을 느낍니다.
한영휘:...
?
(귀신인가? 자는 척 한다.)
인기척이 문 바로 앞에서 멈춥니다.
야윈 손 하나가 조심스레 문틈을 벌립니다.
한영휘:으아아악
소리를 지르면 손이 움찔하며 놀라더니 그대로 다시 뒤로 쑥 빠집니다.
...
한영휘:누..누구냐!
(두리번 거리다가 청동거울 하나를 든다.)
인기척이 그대로 사라집니다.
멀리 떠나버린 것 같습니다.
이내 저벅저벅한 발걸음이 영휘의 처소 앞으로 다가옵니다.
문을 두들깁니다.
한영휘:누구십니까?
하인:안에 있소?
한영휘:네.
하인:큰일일세! 나와 보시게.
방금 호위들이 별당 근처에서 도련님의 시신을 발견했다는군!
한영휘:ㅇ..예?
(문 벌컥 열고 나온다.)
하인:영휘 자네 언제 처소로 돌아왔나?
무슨 수상한 인기척 같은 거 없었고?
한영휘:전 돌아온 지 좀 됐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오기전에..
야윈 손 같은 것이 문을 열려고 했는데..
귀신이었던 걸까요.(식은 땀)
한영휘:
지능
86
50 25 10
실패
❁:네, 귀신 손입니다 ㅇㅇ
한영휘:(역시;;)
하인:아니 글쎄, 이번엔 귀신의 짓거리가 아닌가 보아.
지금껏 본 시신들은 바싹 마른 장작 같더니만 도련님은 아주 멀쩡하셨다는군.
한영휘:예...?
하인:별당 근처에서 쓰러졌었다고 하지 않았나. 의식을 잃기 전에 기억하는 건 없어?
한영휘:..,..
그게..글쎄요. 의식을 잃기 전 후로 기억이 별로 없어서..
뭔가 떠오르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도련님은..어떻게 돌아가신 거죠.
하인:겉보기엔 모르겠어. 관원이 와야 알 수 있을 것 같군.
알겠어. 쉬게나.
하인은 영휘가 쓰려졌었던 것을 아는지 순순히 자리를 떠납니다.
한영휘:...후. (이마를 짚는다.)
다시 처소에 홀로 남겨집니다.
이번엔 이례적인 살인이라니, 심지어 주인어른의 아들을 해하다니!
도대체 무슨 일인지 가늠이 가지 않습니다.
오늘은 특히나 흉흉하군요.
한영휘:하아...
....
(심란한 기분을 안고 침대에 눕는다. 우선, 내일 희원을 만나 이야기 해 봐야 한다.)
힘겹게 뒤척이다 잠이 듭니다.
다음날 아침입니다.
날은 따뜻해졌는데 분위기는 한층 차갑고 무겁습니다.
아침을 전하러 별당으로 가면, 가리개 앞에 작은 쪽지가 놓여 있습니다.
한영휘:....
뭐?!
한영휘:정희원!!!!
한참 대답이 없는가 싶더니,
가리개 바로 너머에서 대답이 들려옵니다.
정희원:걱정하는 거야.
한영휘:....
뭘 걱정하는 건데?!
네가 있는 별당 안은 대체 뭔데?
정희원:나가줘.
한영휘:들어갈 거야
..막무가내로 이러는 게 어딨어!
정희원:간밤에 내 사촌이 죽었다지.
이 저택은 이제 어느 상황에서건 안전하지 않아.
돌아가. 네 집으로 가도 괜찮으니까.
동시에 바깥에서 별당의 문고리로 문을 두어번 치는 소리가 납니다.
호위에게서의 신호입니다.
한영휘:아니, 난 이런 식으로는..
(말하려던 찰나, 신호가 들리면 그 쪽으로 간다.)
무슨 일입니까?
호위에게로 가면 문 앞을 지키러 온 호위들이 두 배... 아니, 세 배로 훌쩍 늘어난 것 같습니다.
호위:주인어른께서 방금 별당에 아무도 들이지 않도록 경비하라 명하셨습니다.
한영휘:.......
..하.(이마 짚는다.)
호위:주인어른께서 다시 명령하실 때까지는 접근하시면 안 됩니다.
(영휘의 걸음을 별당 바깥으로 옮기게 하고 문을 닫는다.)
한영휘:아,
아니. 저기요.
...
(황망하게 밖에 선다.)
호위:내원 안에 일자리가 많이 비지 않습니까. 일감 걱정은 마시오.
한영휘:그런 게 아니라.. 왜 갑자기 이러시는 겁니까?
별당 안을 조사하려고요?
호위:주인의 뜻을 알 수는 없소.
그저 철저히 별당 앞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소이다.
주인어른이 간밤에 도련님을 잃으시고 많이 충격을 받으신 모양이오.
저 안의 아가씨를 의심하는지도 모르지...
한영휘:......
호위:주인어른께서도 겁을 집어먹으신게 아닌가 모르겠소. 아가씨는 그간 한 번도 얼굴을 내보이지 않으셨잖소.
아가씨께서 괴물인게 아닌가 하는 허튼 소문도 간간이 들리고 있소.
아가씨께서 얼굴을 보이지 않는 이유에 대한 여러 추측 중 하나요.
한영휘:..주인 어른도 아가씨의 얼굴을 뵌 적이 없는 겁니까?
호위:당연한 소리를.
한영휘:...
'왜지?조카딸인데, 보고자 하면 별당에 들어오면 될 것 아닌가..'
..아무튼, 알겠습니다.
호위:이만 돌아가 보시오.
This message has been hidden.
저택의 분위기는 이제 더 이상 나빠질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매일같이 하인 들이 그만두지만 새로운 하인을 구하지도 못해 일손은 항상 모자라고 저택에 귀신이 있어 사람을 죽이고 파묻는다는 괴악한 소문은 날로 커집니다.
그간 번영을 누려온 희원의 가문이 이제는 몰락의 길을 밟고 있노라고, 입으로 내어 말하는 사람은 없어도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응접실을 조사할 수 있습니다.
한영휘:(응접실로 향합니다.)
저택이 이런 꼴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매일같이 손님들이 오고 가는 곳이었습니다.
저택의 새 주인에게 눈도장이라도 찍어보려고 친척들이며 이웃, 지인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며 주인어른을 만나기 위해 몇 시진이고 기꺼이 기다리던 이들이 넘쳐났으나
지금은 관원들만 줄줄이 드나들 따름입니다.
가장 처음에는 장 씨 아주머니 남편의 시신이, 그 뒤로는 도련님...
누구도 이 기묘한 살인사건의 진상을 밝혀 내지 못하니 무의미한 조사만 이어지고 있습니다.
영휘가 응접실 앞을 지날 때 응접실에서는 찻주전자와 찻잔을 든 시비가 안으로 들어갑니다.
잠시 후 시비가 밖으로 나오자 안에서는 관원 몇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가 작게 들려옵니다.
쪼그라든 시신을 파냈다라...
어제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별당 말고도 땅 곳곳에 시신이 묻혀있었던 모양입니다.
바깥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말소리는 뚝 끊기고 밖으로 나와보는 발소리가 들립니다.
들키기라도 하면 공연히 의심을 사게 생겼어요.
❁:자리에서 도망치는 편이 낫겠습니다.
한영휘:(자리를 피합니다.)
한영휘:
민첩성
86
70 35 14
실패
관원:자네, 자네 어디서 일하는 하인인가? 여기서 뭘 하고 있었지?
한영휘:별당에서 일하는 하인입니다. 어제부터 출입금지가 되어서.. 주인님을 뵈려고요.
관원:별당에서 일하는 하인? 주인어른을 모시는 게 아닌가?
한영휘:예. 저는 아가씨를 모시는 하인입니다.
관원:... (미심쩍은 얼굴로 보다가)
알았네. 주인어른은 여기 없으니 가도록 하시게.
한영휘:네. (꾸벅 인사하고는 자리를 뜬다.)
주인어른은 어디 계신 걸까요?
어디든 찾으러 발걸음을 분주히 옮기면, 영휘를 누군가 붙잡습니다.
한영휘:(뒤를 돌아본다.)
'누구지?'
늙은 집사:여기 있었군. 주인어른께서 자네를 좀 보자 하시니 같이 가세나.
마침 잘 된 일이지만, 주인어른께서 무슨 일로 영휘를 부른다는 건지.
일언반구 첨언도 하지 않고 집사는 영휘를 데리고 앞장서서 주인어른의 서재로 향합니다.
한영휘:'마침 잘 된 일이지만, 주인어른께서 무슨 일로 나를 부른다는 건지.'
서재에는 우울과 절망의 낯빛을 한 울긋불긋한 얼굴의 주인어른이 영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늙은 집사: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집사가 서재 밖으로 나가자 주인어른은 까끌 까끌한 손으로 몇 차례 마른세수를 한 뒤 입을 엽니다.
주인어른:갑자기 불러서 놀랐겠군.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이리 오라 일렀네.
자네 어렸을 때부터 희원의 일을 맡아봤다고 했지.
한영휘:...네. (짧게 목례하고 그의 가까이로 다가선다.)
그렇습니다.
주인어른:단도직입적으로 묻겠네.
한영휘:(잠시 침묵하고는 명료하게 뱉는다.)네.
주인어른:봤다고?
한영휘:..예.
주인어른:그 애를?
한영휘:...
그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요?..
주인어른:(숨을 몰아쉬기 시작한다.)
더 자세히 말해봐!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중병 든 환자인지, 아니면 사람 잡아먹는 미친 괴물이 맞는지!!
한영휘:희원이는 5척 정도의 신장을 가졌습니다. 검고 긴 머리고요. 눈매는 내려가 있지만 날카로운 인상이에요. ..
그리고 마르고 야위었고요. 병에 걸렸다는 거..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런 걸 왜 저한테 물으세요. 조카딸이잖아요.
주인어른:...뭐...?
거짓말 마라! 지금껏 일어난 기괴한 일들은 어찌 설명할 거냐?
예전부터 일했다면 알 것 아니냐. 그 핏줄이 얼마나 악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어깨를 붙잡고 흔든다.)
한영휘:악한 취향이라니요..? 그게 뭡니까?
주인 어른이 귀신이니 제물이니 하는 책을 모았다는 건 압니다.
주인어른:그래, 그거!
한영휘:하지만 가족이잖아요. 직접 확인하시면 될 일이에요.
..물론 경황이 없으시겠지만.
한 번도 들여다 봐주지 않으신 건, 주인 어른이 아니십니까.
주인어른은 벼랑 끝에 몰린 이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주인어른:걔 아비도 이제껏 그 딸을 꼭꼭 숨겨왔는데, 무슨 수로 그것을 마주하냐?
더 말해봐, 너. 그 애랑 무슨 짓을 했어?
한영휘:그냥..별당 안에 들어가시면 되잖아요?
주인어른:나를 꾀어낼 생각 마라!
한영휘:뭔..
정신 차리십시오!
주인어른:네 녀석도 이 사달을 내는 데에 일조한 것이 틀림 없어.
내가 묻는 말에나 대답하거라!
한영휘:저희가 한 건 그저 대화가 다입니다.
왜 별당 안에 걸어들어가지 않았습니까?
딸을 숨겨둔 다른 이유가 있는 겁니까?
..말씀해주세요!
주인어른:... 모른 체 하겠다는 거군...
상식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게 아들을 잃은지 삼일도 채 되지 않았으니까요.
주인어른:.....
자네 이야기는 다음에 합세.
처소에서 나오지 말고 근신하게.
장례식을 치르고 나면 내보내겠네.
한영휘:.....
(한숨 쉰다. 폐인 같은 몰골 보고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태인 것 깨닫는다.)
..아드님의 명복을 빕니다.
쉬십시오.
바깥에 기다리고 있던 늙은 집사가 다시 말없이 영휘를 처소까지 데려다줍니다.
늙은 집사:주인어른께서 자네더러 근신을 명하셨으니 하여튼 오늘내일은 나올 생각하지 말게.
한영휘:...
늙은 집사:식사는 다 챙겨다 줄 테니까 염려 말구.
한영휘:예.
...집사님은..
아니. 왜 다른 사람들은.. 왜 희원 님을 보지 못하는 거죠.
보려 하지 않는 것인지, 보지 못한 것인지..
늙은 집사:내 전 주인어른의 뜻을 어찌 알겠나.
우린 그저 따를 뿐이지.
더군다나 곁에 가면 중병이 옮네, 괴물이네, 허약하여 조금이라도 심기에 거슬리면 안 된다, 여러 소문까지 그들의 발을 묶은 것이야.
아가씨와 마주한 것은 자네가 유일할 게다.
용감한 것...
집사는 영휘를 처소에 두고 떠납니다.
근신은 무슨 근신.
장례식까지 기다리기에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바깥을 슬쩍 내다보면 별당에 하듯이 꽁꽁 싸매듯 호위를 붙인 건 아닌 듯하지만,
이쪽을 흘끔거리며 감시하는 눈이 아예 없지도 않습니다.
불길한 기분이 가시질 않지만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다리는 것밖에는.
한영휘:....(한숨 쉬면서 침대에 눕는다. 아마..세 구라고 한 것을 보면, 별당 마당의 시체도 발견된 것이겠지.)
..(심란한 마음 지우고 애써 잠에 든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바깥이 몹시 어둡습니다.
촛불을 켜지 않은 어두운 처소 안에 달빛이 비쳐 들어옵니다.
처소의 문틈 새로 서늘한 바람이 새어 들어옵니다.
추위에 다시 문을 닫으려 하면, 뭔가 걸리는 느
느낌이 듭니다.
원래 이렇게 엇나가는 문이 아니었는데...
한영휘:
관찰력
28
65 32 13
어려운 성공
문틀에 반지에 묶인 작은 쪽지가 끼어있었습니다.
언제부터 있었죠? 왜 이걸 이제야 발견한 걸까요?
어쩌면 이런 걸 두고 사람들은 운명 이라 말하는 것일지도요.
쪽지를 펼쳐 보면... 서신이군요.
한영휘:(서신을 확인한다.)
안에는 희원이 쓴 것 같은 휘갈겨 쓰인 글씨가 보입니다.
대체 언제 이런 걸 써서, 언제 이런 곳에……
도련님이 죽었던 밤에 보았던 귀신같은 손이 떠오릅니다.
한영휘:.....
하아...
대체 뭐하자는 거야?
(헛웃음 친다. 마주할 때마다 했던 말과 똑같은 서신의 내용.)
(반지 손에 끼고 도로 눕는다.)
선물은 고맙게 받을게.
이것이 마지막 내기라면, 내기를 제안하는 것은 당신이 되는 것은 어떨까요.
그동안 한번도 먼저 내기를 제안한 적이 없었죠?
이건 어떨까요. 반지를 희원에게 돌려주면 영휘 당신이 이기는 내기에요.
한영휘:(반지를 끼고 누워있자면, 달아나는 것은 잠이요 차오르는 것은 울분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두고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다닌 건지, 아니. 애초에 그는 무엇인지.)
(반지 들고 일어선다.)
희원을 만나러 갑시다.
아침이 오기 전에 이 내기는 당신이 이겼으며 자신이 역전할 날은 아직 오지 않았음을 알리기 위하여.
밤이 이슥한 시간이기 때문인지 영휘의 처소 앞을 감시하는 시선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지금이라면 근신 따위 개나 준들 아무도 잡을 수 없을 겁니다.
영휘의 귓가에 문득 거슬리는 비명이 들립니다.
한영휘:.....!
별당이 있어야 할 방향에 어두운 밤 보여서는 안 될 붉은 빛이 어른거립니다.
한밤중에 별당에 불이 났다며 하인들이 뛰쳐나오고 별당을 지키는 호위들은 당황한 얼굴로 타오르는 지붕 끝을 쳐다봅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선뜻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영휘:(조심스럽던 걸음이 다급해진다. 망설임 없이 별당으로 뛰어 들어갔다.)
다들 허겁지겁 움직이고 있지만 담 밖에서 물을 가져오라느니 왜 안 들어가고 있냐느니 실랑이를 해봤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안에 주인어른과 희원 님이 계신다고 하면서도 그들이 왜 나오지 않는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 사이를 헤치고 별당 안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아무도 당신을 붙잡지 않습니다.
어느새 가지에서 전부 떨어져 버린 목련꽃들을 밟고,
당장이라도 우지끈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희원의 처소로 뛰어 들어가면,
너덜너덜하게 찢어진 가리개 너머로 살풍경한 방 안에 쓰러진 사람이 보입니다.
그건 분명히 희원의 숙부였고……
그의 곁에 새카맣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무언가가 몸을 웅크리고 있습니다.
❁:기시감이 듭니다.
한영휘:
이성
8
66 33 13
극단적 성공
영휘가 방 안으로 한 걸음 들어오면 웅크린 것은 흐느적거리며 몸을 움직여 이내 희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한영휘:...(숨을 들이켰다.)
분명 희원의 목소리가 맞습니다.
하지만 잔뜩 뭉개진 발음이며 마치 온몸을 비틀어 쥐어 짜낸 듯한 숨소리에 점점 확신할 수 없어집니다.
한영휘:.....,(그 생소한 형태에 공포심도 잠시, 기시감에 점차 가라앉는다.)
희원이야?
지금 영휘의 눈앞에 있는 게 ‘괴물’이 아니라면,
희원의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영휘를 홀리려는 게 아니라면,
저것이 정말로 희원이 맞다면…….
긴장한 영휘를 두고,
그 무언가는 꾸물꾸물 바닥을 기어 희원의 숙부에게 달라붙습니다.
파랗게 질려 쓰러진 몸에서 울컥 쏟아지자 그것은 피를 모조리 핥아 마시고,
몇 차례 더 끅끅거리는 신음을 흘린 끝에 점점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갑니다.
한영휘:(저지하려 달려드는 찰나의 순간, 벌어진 일에 멍하니 그 풍경을 바라본다.)
.....,
영휘가 알고 있는 낯익은 희원의 모습으로.
하지만 완벽하지는 못해 반쯤 뭉개지고 흘러내리며 억지로 형체를 고정하려 애쓰는 게 느껴집니다.
정희원:...네가 졌어.
마지막 내기였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이기고 말았네.
...이런 모습은 다시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한영휘:.......
넌...
정희원:네가 생각하는 대로야.
내막을 알았으니 되었지?
이제 정말 돌아가. 패자에게 주어지는 벌칙이야.
한영휘:이번에는 나도 내기를 걸었어.
내가 너에게 반지를 돌려주면 이기는 내기야.
..아직 나는 패자가 아니야.
정희원:규칙에 어긋나잖아.
한영휘:'가지고 돌아오는 것'이 규칙이었잖아.
...언제부터 넌 이런 존재였어?
나만 몰랐던 건가.
정희원:...
중요한 때에 꾀 부리지 말아.
... 태어날 때부터...
한영휘:규칙을 멋대로 바꾼 건 네가 먼저잖아.
....
나참.
도련님은..왜 그렇게 죽은 거야?
그냥..순전히 궁금해서.
정희원:도련님이 내 처소로 들어왔어.
네가 아닌 사람이 날 봐버리니까, 너무 놀라서...
그리고, 내가 언제 규칙을 바꿨다고 그래.
한영휘:물건을 가져오는 게 내기였잖아. 내 내기 쪽이 훨씬 타당하다구.
(손 끝에 반지를 잡는가 싶더니, 빙그르르 튕겨 네게 건넨다.)
정희원:(물러진... 아니, 원래부터 무른 손으로 떨어져 굴러가는 반지를 붙잡는다.)
...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소중하다는 말...
역시 믿지 않는 게 좋았겠지.
한영휘:아니라고는 말한 적 없는데..
정희원:네가 겁에 질린 얼굴을 똑똑히 봤는걸.
한영휘:좀 무섭긴 하지.
하지만 소중한 건 별개야.
그보다는..
그보단..사람을 막 죽이면 어떡해? 그건 나쁜 짓이야!
정희원:......
나도 여기서 죽으려고 했어.
한영휘:뭐?!
정희원:아니, 여전히... 아직도...
내가 죽으면 어떨까 생각해.
그럼 내세에는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한영휘:그런 소리 하지마!
죽는다는 소리...슬프니까.
정희원:괴물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영휘 너는 몰라.
멀리 갈 것도 없어. 인간의 삶을 향유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알려준 건 너니까.
한영휘:...그래. 나는 몰라.
..사람을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거야?
정희원:...응...
...넌 그런 건 좋아하지 않잖아.
한영휘:하아....
그치만!
계속 너랑 같이 있으면서, 생각해보면..
방법이 생길 수도 있잖아.
정희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1년 간 아무도 먹지 못했어. 정말로 바닥에 문드러져서 죽어버리는 줄 알았어.
내어 오는 식사에서 고기 몇 점, 쥐나 새의 피 조금...
장담하는데 다른 방법은 없어.
한영휘:.....
정희원:(얼굴 반쪽이 무너져내리면 다시 고개를 숙여 숙부의 피를 들이킨다.)
...
마지막으로 내 이야기를 해줄게.
내 아버지는 재물을 위해 ■■■ ■을 부르고자 했어.
그러니까...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 저택에 산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이야기야.
■■■ ■은 머리를 원했는데, 이럴 수가...
정희원:아버지는 제물을 만두로 대체했지.
그런데 ■■■ ■은 그게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야.
그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아버지를 빼고 다 죽고 말았어.
운좋게 살아남은 아버지는 저주를 하나 받았어.
그게 나야.
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자, ■■■ ■의 저주, 괴물.
정희원:알고 나서 아버지의 서고에 있는 책을 몇 권이나 빌렸어. 혼자 갇혀서 할 일도 없으니 아버지는 괴이한 책들을 나에게 꾸준히 구해다 주셨지.
그거 아니? 하늘은 바다보다 끝이 없이 깊고 그 안에서 우리가 사는 터전보다, 아니... 대제국보다도 거대한 신들이 살아가.
그리고 그런 신들은 다 ■■■ ■과 같아. 우리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는 악한 신들이 태반이야...
(한참 우주의 섭리 따위를 미친 사람처럼 줄줄이 읊어대다가 고개를 떨군다.)
한영휘:....
정희원:있지,
그런데 이걸 다 안다고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라.
당장 어머니는 날 낳자 마자 충격을 받아 타계하셨고 아버지는 날 괴물 취급하며 별당에 꽁꽁 숨기고 말았으니까.
아무도 날 사랑해주지 않고 내가 아무도 사랑할 수 없으면 난 깊은 하늘은 커녕 저택 밖을 나가보지도 못하고 여기에 머물러 썩어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도대체 무슨 소용인지.
한영휘:...,(식은 땀 흐른다. 본능적인 부정과 더불어 너라는 인간에 대한 호의..오갈 곳 없는 낭떠러지 다리 위에 서 있는 감각이 엄습한다.)
나는.., 나는 사랑해줄 수 있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정희원:...그런데,
왜 그런 얼굴을 해?
한영휘:....., (그대로 얼어붙는다. 어쩐지 들킨 기분이 되어선..)
정희원:.........
실은 널 이용해서 언젠가는 여기서 떠나려고 했어.
널 속이면서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거나, 네게 전부 밝히고 도움을 청하거나, 여러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마음을 굳히기 전에 이미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지...
무엇보다 내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 네가 내 모습이 어떻든 소중하다는 말에는 흔들렸지만...
역시 무서워하는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지 않네.
그렇게 깨달아버린 거야.
정희원:내게 즐겁게 말을 걸어준 건 네가 처음이고, 유일한 말벗도 너 뿐이고, 내가 인간 흉내를 내며 곁에 있고 싶었던 상대도 영휘 너밖엔 없다고.
그 어린 시절부터 나는 쭉 영휘 너를 사랑했다고...
한영휘:....., (괴로운 듯 인상 구기고 아래를 본다.) 무서워하는 게 아니야. 처음.. 처음 봤을 땐 그랬지만.
어릴 때부터 지금도 항상 나도 너를!....., 너를..
(사랑하고 소중하다고 외치기에는 그 후를 감당할 수 있나. 지금 이 여자가 해 놓은 일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거짓말 못하는 성정 변하지 않는다. 연신 입꼬리가 달싹거리다, 꼴사납게 멈춘다.)
정희원:(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뒷말이 이어지지 않자 상심한 듯 시선을 내렸다.)
윤회와 업보라는 것을 아니?
한영휘:...?
정희원:아는 것 같네.
한영휘:으,응?
정희원:윤회가 사실이라면, 난...
전생에 분명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런 벌을 받고 만 거겠지...
하지만 억울해. 나라고 이렇게 태어나고 싶은 게 아니었는데.
결국 이번 생에서도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잖아.
하지만 난 아직 젊으니까...
더 큰 죄를 저지르기 전에 모든 욕심을 놓는다면,
정희원:그럼 다음 생에는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한영휘:...,...(어쩔 줄 모르는 손 주먹 쥐었다 펼친다.)
....
윤회 같은 게 어딨어..
설령 있다고 해도.. 지금과 그 때의 너는 다른 사람일텐데..
무슨 의미가 있어..
정희원:... 그럼 어떻게 해?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에게 어떤 위로도 통하지 않아.
가라고 몇 번이고 말했잖아.
왜 왔어?
왜 괴롭게 하는 거야?
한영휘:난, 그냥 네가 보고 싶어서..
네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으니까..
네가 좋으니까..,
정희원:그런데 왜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은 거야... (다시 얼굴 반쪽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한다.)
네가 그러는 모습도 보고 싶지 않았단 말이야. (손으로 흘러내리는 얼굴을 받친다. 꼭 흐느껴 우는 꼴 같다.)
한영휘:내가 뭘 그랬다고, 그런 말을 해..,
(먹먹한 듯 말하고는 네 몸 끌어안는다.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정희원:... 어떻게 해야 나를 떠날래. (손이 네 등을 감싼다. 질척한 소리가 난다.)
한영휘:.....,떠나지 않는다고 했잖아...(금방이라도 손 안에서 무너질 것 같아서 세게 당긴다.)
..., 너를..
이런.. - 가여운 - 너를 두고 어떻게 떠나겠어?
정희원:... 하지만 날 용서할 수도 없겠지. (포근하다 못해 숨막히는 감각은 이런 몸으로도 전해졌다. 눈을 감았다.)
한영휘:...(실없는 웃음 샌다. 부정할 수 없었다.)
...있잖아..나를 이용해서 떠나겠다고 했잖아.
지금이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될까?
정희원:그렇게 한다는 건... 내가 죽기 전까지 죄를 저지르게 둔다는 말이야...?
한영휘:모르겠어.
너랑 더 이야기가 하고 싶어.
이대로 불 속에서 사라지게 놔둘 수는 없다고..
정희원:...
그럼...
잠깐만 놓아 줄래?
한영휘:....
(조심스럽게 손을 놓고 떨어진다. 불안하게 눈 마주친다.)
정희원:이게 내 마지막 식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너와 이야기할 시간 정도는 생길 거야.
(쓰러진 숙부의 몸을 다시 끌어왔다.)
한영휘:...(숙부의 몸을 보면 이마 짚는다. 난 대체 저 사람한테 무슨 말을..)
희원이 숙부의 피를 빨자, 그의 몸은 눈에 변화가 곧바로 보일 정도로 순식간에 쪼그라듭니다.
익숙한 형태네요.
피를 전부 마신 희원은 늘 알던 인간의 모습이 됩니다.
이제는 많이 타들어간 별당의 지붕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한영휘:..
뒷담을 넘어서 가자.
(네게 손 내민다.)
정희원:...
너와 함께 나가는 건 처음인 걸.
(손 위에 살포시 얹는다.)
한영휘:나도..너랑 항상 밖으로 나가보고 싶었어!
(맞잡은 손이 떨리는 것을 네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속으로 간절히 바라며 불길 속을 걸어나간다. 수치심과 죄책감 따위는 전부 뒤로 하고, 어느새 뛰고 있었다.)
두 사람은 불티가 몸을 태우는 줄도 모르고 달립니다.
분명, 희원은 당신을 속였습니다.
하지만 영휘가 어떻게 희원을 비난하고 탓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태어나 살아가는 운명의 사람을 사랑하고 말아서,
응어리처럼 남아버린 죄책감을 뒤로하고 달릴 수밖에 없겠죠.
영휘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녀와 함께 대화하기를 바랐죠.
오늘, 이 저택의 주인이 죽었습니다.
갑작스러운 화재로 별당이 전소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안 그래도 흉흉하다는 소문이 자자했던 저택의 화재 소식은 또한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그는 정말로 축복을 내리러 온 재복신이었으나 부정을 타 하늘로 돌아가고 만 게 아니냐는 헛소문까지 따릅니다.
이렇게 옆에 숨쉬고 있는데 말이에요.
문제는 시간이 지날 수록 희원의 몸 또한 다시 괴물로 돌아가고 있다는 거겠죠.
희원은 영휘가 무어라 하지 않아도 더이상 '식사'활동을 하지 않을 생각인가 봅니다.
그래서 더더욱 목이 쉴 정도로 이야기를 나누고 발이 아플 정도로 달려왔죠.
지난 나흘 간의 이야기였습니다.
지금 두 사람은 산속에 은신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을 지켜달라며, 다시 검게 문드러지기 시작한 희원의 목련같은 몸이 영휘의 몸을 끌어안습니다.
정희원:역시 내세를 꿈꾸는 건 어떨까?
그렇게 말하며, 숨겨둔 날카로운 괴물의 이빨이 영휘의 목덜미에 파고듭니다.
한영휘:(천자와 방관의 대가로는 어울리는 결말이다. 아는 이들에게 사죄의 말이라도 남겨둘 것을 유일한 후회로 둔다.)
( 삶은 유일하고 완결되기에 가치가 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으므로 내세에 바람을 둘 이유 없었다.)
그래. 다음 생에 보자.
정희원:(박아넣었던 이빨을 뽑으면 다시 저-人間-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시선을 맞추는 부분만큼은 인간 대 인간으로 보이고 싶은 고집 같은 것. 네 목덜미에서 뜨겁게 치솟는 피를 가볍게 무시하고 네 고개에 매달려 한참이나 입을 맞춘다.)
(이런 짓이라도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한에 사무쳐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불타는 처소에서 당당하게 모든 욕심을 놓겠고 떠나겠다 이야기했지만, 어리석게도 마지막 가는 길에 놓을 수 없는 한가지를 붙잡느라 또다시 업을 쌓는다.)
(윤회를 지독하게 믿고, 상대를 죽임으로서 지독하게 위로받았다. 그 사실이 눈물겨워 입을 맞추는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헤아리지 못하고.)
입술이 떨어지고, 의식이 흐려집니다.
마지막으로 본 희원의 모습은 사랑하는 듯, 기쁜 듯, 슬픈 듯, 안심한 듯.....
여러 감정이 섞인 얼굴빛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이 세상에 오로지 영휘만이 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