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Charms Rainbow

CLOACA

2025-11-26

감독: 한영휘

출연: 정희원

정희원:85
한영휘: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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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 차 안에서
“역사상 최악의 태풍 '에밀리'가 지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평균 풍속 300km/h, 분당 최대 풍속 378km/h 이상을 기록하면서 전문가들은 피해규모조차 예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편 태풍 경로에 놓여있는 플로리다는 동남부에 거주민들에게 긴급대피명령을 내렸으며 … … .
어두운 오후. 차창에 빗물이 질척하게 달라붙었다가 긴 줄기를 남기며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을씨년스러운 바람은 상대적으로 내륙인 이곳, 미시시피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면서 둘의 일정을 완벽하게 망쳐 놓았습니다.
비행기도 배도 전혀 뜨지 못하는데다 가는 가게마다 문을 줄줄이 닫아버렸으니 말이죠.
정희원:(심기불편...)
그랜드 캐니언과 미국 국립 연구소를 방문했던 완벽한 일정은, 마지막 날 '에밀리'의 방문으로 인해 박살나고.
완전히 발이 묶였습니다.
정희원:(미간을 찌푸린다.)
한영휘:(눈 부비적거리면서 운전한다.)
정희원:(우나? 힐끔 본다.)
한영휘:(하품하느라 조금 눈물이 나왔다.)
흐아아아어암..
정희원:(아쉬워서 울 줄 알았다.)
... ...졸지 마.
한영휘:(뭐, 폭포는 이미 봤으니까!)
응. 여기서 졸았다간 큰일 나겠지~
쉴새없이 눈과 귀를 조롱하는 천둥번개에 그는 다소 지쳐보입니다.
그래도 주변 호텔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방 하나를 간신히 구해 쉴 곳을 찾았으니 다행입니다.
게다가 아무 호텔도 아니죠. 이 동네에서 가장 명이 자자한, 꺼지지 않는 화려한 불빛의, 그 이름이라 함은…
한영휘:그래도 모망젤까지는 얼마 안 걸릴 거야.
이 산 중턱만 넘으면 되나.. 피곤하지?
정희원:직접 휘말리지는 않았으니 망정인가.
딱히. (차창 밖을 본다.) 온통 일정 생각 뿐이야.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이 밀리는 건 싫은데.
한영휘:뭐~누나라면 똑똑하니까 알아서, 머리에 착착 정리하고 있겠지.
정희원:그거야 그렇지만...
한영휘:원격으로는 일 못해?
정희원:모망젤에 컴퓨터 있어?
한영휘:나름 좋은 호텔이니까. 있을 것 같은데..
정희원:미리 알아봤어야지.
침대는 몇개야? 욕조는 있어? 냉장고는 몇 칸? 화장품은?
한영휘:(···;;)
정희원:(한숨 내쉰다.)
됐어. 급하게 잡은 건 알고 있으니까.
...일정이 밀리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서, 짓궂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네.
넌 속 편해서 좋겠다.
한영휘:살다보면 어쩔 수 없는 일도 있기 마련이잖아.
침대랑 욕조! 화장품.. 같은 건 로비에서 내가 물어볼게!
나야 뭐, 요즘은 거의 훈련이라..
정희원:흐응. (더 트집 잡지 않고, 창밖을 보던 몸을 떨어트려 등받이에 미끄러지듯 기댄다.)
네 능력으로 태풍이나 어디로 날려 주면 좋겠네.
한영휘:흐음...아예 못 움직이진 않을 것 같은데.
그 뭐더라.. 역관성? 역성? 때문에 도움이 안 된다고 했었어.
도시가 부서질 거라나 뭐라나~
정희원:그럼 기류와 함께 직접 타고 가는 것도 좋고. 손오공처럼... (농담하듯 던진다.)
(하품한다.)
한영휘:살아남을 순 있을 것 같은데.
나 그러고보니, 누나랑 공중에서 물 타는 꿈 꾼 적있다?
(*각주 : 함박눈 안단테)
정희원:(너 멀티버스 본거야)
...
근래 들어서는 드물게...
아이 같은 말을 하네.
한영휘:(웃음 터뜨린다.) 내 능력이면 진짜 할 수 있잖아.
나 요즘 좀 어른 같았어?
정희원:...
(대답하지 않고 힐끔 보기만 한다.)
한영휘:(ovo)
(기대하는 눈으로 대답을 기다린다.)
정희원:전방주시해.
한영휘:아, 응!
어느정도 대화가 오가던 도중..
빵 ―
역주행하던 트럭 한대가 굵은 빗줄기를 뚫고 클락션을 울리며 코앞으로까지 다가옵니다.
한영휘가 직전에 재빨리 핸들을 꺾지 않았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습니다.
트럭은 비틀거리더니 사과도 없이 쌩 떠나 버립니다.
방금까지 무슨 얘기를 하던건지 잊어버릴 정도로 크게 놀란 둘은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정희원:....???!
뭐야, 저 트럭...
한영휘:...!??뭐야, 저 사람??
(역주행으로 넘어가는 트럭 백미러로 보면서 심호흡한다.)
누나..! 괜찮아!??(전방주시하면서 말 건다.)
정희원: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68
판정결과: 실패
문제 없어.
불이 꺼진 뒷자석에서 새가 지저귀는 것 같이 높고 청량한 소리를 듣습니다.
정희원:허리를 좀 삐끗한 것 같은데 괜찮아.
한영휘:뭐..?그건 큰 일인데..??
호텔 가자마자 파스 붙여줄게!
정희원:그래...
한영휘:누나 진짜 허리 조심해야돼.
우리 엄마도 허리 나가고 요즘 디스크로 누워만 있대.
정희원:저런. 고생하시네.
한영휘:진짜. 예방이 중요해.
정희원:알겠어.
그냥 자조하는 농담이었으니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아줘.
한영휘:하핫. 누나 농담은 재미가 없다니까!
(이내 차 몰아서 호텔로 향한다.)
무례한 조우를 뒤로 하고, 둘은 궂은 비를 뚫고 조금 더 달려 모망젤 호텔에 도착합니다.
“ 어서 들어오세요! 지독한 태풍이네요.”
화려한 불빛으로 장식된 입구에서 나온 연로한 도어맨이 장우산을 씌워주며 환한 미소로 반깁니다.
짐을 맡기고 서둘러 호텔 안으로 몸을 피하면 이번에는 유니폼을 갖춰입은 벨맨이 살가운 인사를 건넵니다.
[입구]와 [한쪽 구석], [벨맨], 그리고 [숲]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정희원:(입구로 들어오며 훑어본다.)
하얀 대리석이 오성급 호텔다운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며, 입구를 전체적으로 장식하는 작고 큰 등들이 따뜻한 빛망울을 만듭니다.
미시시피의 등대, 샹들리에의 불이 꺼질 줄을 모르는 곳이란 명성에 걸맞는 모습을 갖추고 있군요.
정희원:생각보다 훨씬 좋은 곳이네...
(한쪽 구석에는 뭐가 있는 걸까?)
[한쪽구석]
비교적 외진 구석에서 꼬질꼬질한 차림새의 노인이 낡은 카드보드지 한장을 들고 직원들과 다투고 있습니다.
정희원:(무슨 일이람?)
목에 핏줄을 세우고 침까지 튀겨가며 직원들에게 온갖 폭언을 쏟아내고 있는데, 반대로 호텔 직원들은 이질적으로 느껴질 만큼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군요.
관찰력/듣기 판정이 가능합니다.
정희원:(고생이 많네.)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카드보드지에 적힌 글씨를 발견합니다.
‘Mt 15:19’ 라고 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정희원: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위험’과 ‘정전’, ‘재난’ … … 귀를 기울이면 예사롭지 않은 단어들이 들립니다.
난데없이 진상을 부리는게 아니라, 무언가를 경고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정희원:흐음...
(더 안쪽으로 들어가려던 걸음을 돌려 노인에게로 간다.)
실례합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영어)
무슨 일 있으신가요?
노인에게로 당신이 다가가려 할 때,
누군가가 당신을 가로막고 빙긋 웃습니다.
정희원:...?
벨맨:일행 분이 체크인을 마치셨습니다.
찾고 계시더라고요. 가시죠.
멀리서 한영휘가 파스 든 채 손 흔들고 있습니다.
정희원:아, 네.
(벨맨 슬쩍 살펴보고 간다.)
훤칠한 키에 산뜻한 인상을 가진 남자입니다.
부드러운 갈색머리를 뒤로 말끔히 넘겼으며, 모망젤의 상징색인 고급스러운 버건디 벨벳수트는 빛을 받아 반짝입니다.
정희원:(음...ㅇㅇ)
벨맨을 따라 호텔 광장으로 들어서면,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서 직원과 투숙객들이 뒤섞여 분주히 움직입니다.
벨맨과 같은 복장을 차려입은 직원들이 카트에 짐을 한껏 실어 나르거나 길 안내를 하느라 분주해 보입니다.
벨맨:미시시피의 등불, 모망젤 호텔은 83년의 전통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건 전직원의 투철한 주인 정신과 철저한 관리 덕분이죠. 아름다운 뷰만큼 깔끔하고 세련되게 구성된 룸과 서비스를 기대해도 좋습니다..
그가 호텔에 대한 얘기를 하며 당신과 한영휘의 체크인을 돕습니다.
한영휘:와. 지존인데요?
카운터 뒤 빼곡한 서랍장 중 ‘2308’이라 써있는 서랍칸 안에 있는 열쇠를 받아 대신 건네줍니다.
정희원:(ZIEZON?)
한영휘:(YES. ZIEZON!)
정희원:(저 사람이 그걸 알아 듣겠나 싶은 얼굴 잠깐 하고 열쇠 받는다.)
벨맨:여분 키가 없어서 투숙객분들께는 하나만 제공해드릴 수 있으니 분실에 유의해주세요. 23층! 성수기에 구하기 힘든 방을 잘 구하셨네요.
2308호는 뷰가 특히나 아주 아름다울 겁니다.
한영휘:태풍 오는 데도 뷰가 예뻐요?(서툰 발음으로 말을 걸다가..제 뒷주머니를 살핀다.)
아. 헉. 차키..
...누나, 나 차에서 빨리 키 좀 가져올게. 먼저 들어가 있어!
정희원:못 챙겨왔니? 알겠어.
돌아올 때 다섯 번 노크해.
한영휘:응. 알았어!
정희원:(오성 급 호텔인데 여분 키가 없다니, 별로네.)
(먼저 방으로 들어간다.)
그는 차쪽으로 급하게 달려가고, 들어가는 문 근처에서 벨맨이 무어라 이릅니다.
벨맨:…아, 한가지 당부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정희원:네?
벨맨: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본다면 바로 불을 키고 호텔 관리인을 불러주세요.
창문이 큰 호텔 특성상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에 의한 착란현상이 발생할 수 있거든요. 신속하고 친절하게 문제를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정희원:(미간을 찌푸린다.)
희한하네요. 알겠습니다.
벨맨:(모자를 벗어 정중하게 웃는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빕니다.
관찰 판정.
정희원: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문이 닫히기 직전. 무전기를 든 크리스토퍼의 표정이 공포에 질린 듯 일순간 확 변합니다. 무슨 연유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방으로 가기 위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면서, 그가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시끌벅적한 로비와 상반되는 고요한 침묵이 좁은 공간을 채웁니다.
덜컹, 덜컹… 엘레베이터가 십몇층 언저리를 지날때 쯤, 천장의 불빛이 불안하게 깜빡거리기 시작합니다.
정희원: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peep.” 차 안에서 들은 것과 똑같은 소리가, 이번에는 분명히 났습니다.
꺼림직한 동시에 뒤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인기척까지 느껴졌으니까요.
정희원:흐음.
불쾌한 직감이 덮쳐오기 시작할때 쯤, 땡.
…도착을 알리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립니다.
고급스러운 버건디 카펫이 길게 늘어져 복도 끝에 위치한 2308호로 인도합니다.
양옆으로 2301호, 2302호.. 2307호까지 늘어져 있습니다.
복도에는 짐을 챙기는 투숙객들과 놀이방에 가고 싶다며 졸라대는 아이들로 북적거립니다.
정희원:무슨 연유로 내게 붙었는진 모르겠구나...
너도 태풍을 피하러 왔니? (2308호로 걸어가며 말을 건네듯 중얼거린다.)
하루 이틀 정도는 괜찮아. 내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2308호 앞에 다다른다.) 나는 지금 조금 예민해져 있거든...
서로 얼굴 붉힐 일 없도록 하자. 네게도 얼굴이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찰칵, 잠금을 풀고 객실 안으로 들어간다.)
묵직한 금속 키를 구멍에 넣고 돌리자 어둠이 희원을 반깁니다.
센서가 달린 자동 등이 움직임을 감지하고 켜짐과 동시에...
방의 가장 끝쪽, 반대편 구석에 웅크린 누군가와 눈이 마주칩니다.
..아니, 사람이라 명명할 수 있을까요?
족히 2M는 넘어 보이는 그의, 아니, 그것의 인영은 까맣고 커다랗고 위협적입니다.
길게 늘어뜨린 팔 끝에는 날카로운 손톱이 서늘하게 자리잡고 있고 공처럼 커다란 눈은 당신을 뚜렷이 응시하고 있습니다.
정희원:(안 놀랏는데 생략해도 돼요?)
:: (GM):(ㄱㄴ)
정희원:(저벅저벅)
서슬퍼런 눈이 당신을 응시하면 익숙하게 삿된 것입니다.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불이 꺼집니다.
동시에, 그것이 달려듭니다.
정희원:
민첩
기준치: 55/27/11
굴림: 1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무슨 짓?
반사적으로 피했지만, ‘그것’은 얼마나 빠른지 서늘한 감촉이 당신의 어깨 위로 닿습니다.
손톱이 길게 스치고 간 곳에선 생리적인 소름이 돋고, 몸을 움직이자 꺼졌던 현관등은 금방 다시 켜지고 ..
…그것은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방안은 평온합니다.
정희원:무슨 생각인 걸까... (적당한 자리에 짐을 내려놓으러 간다.)
찝찝한 경험은 분명 환각이 아니었을 겁니다. 살짝 내려다보면 손톱이 스쳐 지나갔던 곳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흙과 오물이 묻어 있고, 지독한 냄새가 올라와 희원의 코끝을 맴돌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방 안은 여전히 환하며 깨끗합니다.
정희원:(어깨를 털다가 냄새를 맡곤 얼굴을 찌푸린다.)
위협적으로 굴지 않아도 돼. 나도 네게 해가 되는 짓은 안 할 테니까.
종일 습기 찬 차 안에서 있던 옷과 오물의 냄새가 뒤섞여 불쾌감이 듭니다.
정희원:하아, 불쾌하네. 가급적이면 내 몸에 닿지 말아줘.
(겉옷을 벗고 걸어둔다.)
살갗에도 함께 묻어, 냄새가 쉽사리 지워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정희원:(그리고 겉에 묻은 것만 적당히 씻으러 간다...)
기왕이면 샤워를 하는 것도 좋겠죠.
정희원:(묻은 곳만 가볍게 세척해보고 킁킁...)
아, 안 되겠네. 무슨 냄새인가 싶겠어.
(샤워하러 간다.)
고급스럽고 깔끔한 욕실에는 정갈하게 정돈된 수건 몇장과 샴푸, 린스 비누가 구비되어 있고 반투명한 샤워커튼이 욕조와 나머지 공간을 나눕니다.
····
정희원:(반가운 얼굴이 된다.)
꽤 괜찮은 욕조가 있네.
(샤워커튼 너머로 뭔가 보여도 괘념치 않고 열어젖힌다.)
예쁜 욕조입니다. 취향대로 씻을 수 있습니다.
정희원:(씻을 준비를 하고 허리춤에 손 얹는다.) 씻는 사람을 엿보는 취미는 없겠지?
아마도?
정희원:내 개인적인 시간을 방해하지 말아주길 바랄게.
(샤워를 마친 후 욕조에 물 받고 들어간다.)
후와후와..
정희원:(늘어진다.)
5성급 호텔 답게 따뜻한 물이 당신을 감쌉니다.
아주 노곤한 목욕이 이어집니다.
정희원:...
(하품)
그렇지 참... 영휘가 돌아오기까지 오래 걸리진 않을 텐데.
너무 늘어져 있어도 곤란하겠지.
(적당히 몸 지지고 나온다.)
노곤한 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 입던 중 ···
화장실 불이 미약하게 깜빡거리기 시작합니다.
신경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다 씻었으니 욕실을 뒤로하고 나가도 될 것 같습니다.
정희원:그래.
타이밍 좋게 방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게,
영휘가 드디어 도착했나봅니다.
정희원:혼자의 시간을 즐기는 건 방해하지 않았구나...
(중얼거리며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방으로 나온다.)
나오기 전,
정희원: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그렇게 경고를 했는데도 듣지를 않은 걸까요?
키는 오직 하나뿐, '방 안'에서 인기척이 들릴 리 없잖아요.
정희원:기다려. 나가려던 참이니까.
내 가방에는 손 대지 않길 바랄게...
(토다닷)
욕실 안에는 무기로 삼을 만한게 없어 보입니다.
정희원:(ㄱㅊ.)
(나가긔요)
‘그것’이 괴기한 소리를 내며 문으로 달려듭니다.
정희원:(문 열어준다.)
(방금 그 음성은 언어였을까...? 곰곰.)
검붉은 털을 가지고, 족히 3미터는 넘는 짐승이 당신을 향해 달려들어, 이빨을 벌립니다.
정면으로 맞서 싸우기에는 그것을 이길 수 없음을 직감합니다.
정희원:아까 그 애가 아니구나?
(아차... 눈으로 빠르게 사각지대를 훑는다.)
(적당히 도주할만한 경로를 찾고 몸을 숙여 피한다.)
희원은 욕실 커튼 뒤로 급히 몸을 피합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숨어있는 것이 최선이겠습니다.
이윽고 화장실 불이 완전히 꺼지고 녹청색 비상등만 희미하게 빛을 냅니다. 문 밖에서는 지옥에서 올라온 화염처럼 정신없이 날뛰며 문을 부술 기세로 달려듭니다.
다른 호실들에서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때를 노리던 것들에게 급습을 당한건지 여기저기서 비명과 끔찍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정체모를 괴물들이 호텔을 광기로 물들었습니다.
정희원:(그런가, 완전히 집합소가 되었네.)
(영휘는...)
(알아서 잘 하겠지. 헌터고 예비해군이니까.)
(눈만 힐끔 내밀어서 구경한다.)
소음으로 가득찬 암흑 속에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딘가에서 물이 역류하여 올라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보글보글 끓다가 바닥에 넘쳐 흐르면서 찰방거리는 기척이 바로 옆에서 느껴집니다.
긴장감 속에서 소음은 잦아들고, 축축한 발걸음이 욕조 바로 앞까지 다가옵니다.
아, 그것들이 결국 싱크대 하수도까지 타고 올라와 안으로 들어온 것일까요. 사방이 조용해집니다.
정희원:(이번엔 또 다른 괴이인가?)
(어둠에 거의 동화돼서 빨간 동공만 켜진 채로 끔뻑끔뻑)
커튼 뒤로 누군가의 인영이 흐릿하게 비춰보이다가, 명확하게 보입니다.
이상하리만큼 침묵을 지키던 이가, 얼마 후 입을 엽니다.
한영휘?:어우 깜짝이야;
(뻘건 눈을 보고 커튼을 탁 다시 친다.)
정희원:(끔뻑)
한영휘?:밖은 아직 위험해. 진정 될 때까지 거기 그대로 있어.
정희원:넌 누구니?
손 하나 들어가지 못할만큼 가느다란 하수도를 타고 올라왔을 리가 없는데, 그를 닮다못해 똑같은 어조입니다.
‘그것’은 당장 당신을 해할 생각이 없어 보이며, 당신 또한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영휘?:뭐. 내 성격대로라면.. 딱히 숨길 건 없겠지.
나야. 누나! 한영휘.
정확히는 한영휘의 peeper.
정희원:Pee...?
한영휘?:Peep.(새소리 울린다.)
정희원:아, Peep.
계속 따라오던 게 너였구나?
한영휘?:맞아.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방금까지는 형체가 없었는데..
이제 생겼어. 덕분에 대답도 할 수 있고.
그러니까. 누나의 휴식을 방해한 건 내가 아니라구.
정희원:몰랐어. 들어오자마자 보았던 냄새 나는 녀석인 줄 알았네.
한영휘?:그 녀석은 다른 피퍼야.. 내가 아니면 죽을 수도 있었을 걸.
왜 이렇게 태연한 거야? 누가 보면, 누나가 해군인 줄 알겠어. (제 허리춤에 손을 올린다.)
정희원:그래? 고마워.
위협적인 상황이긴 했지만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니까...
이제 걷어도 돼? (커튼 잡는다.)
한영휘?:음..
뭔가 커튼 뒤로 둔 이유가 있었는데.
잘 기억이 안 나.
일단 위험하니까 좀 있어봐.
누나 꼬불치고 음침하게 앉아있는 거 잘하잖아.
정희원:영휘를 닮아서 꽤 바보같구나.
...
(뒷말에는 조금 삔또상했다.)
한영휘?:(ㅋ)
허리가 배기면 파스 정도는 만들어줄 수 있어.
정희원:괜찮아. 멀쩡해.
한영휘?:그렇다면 다행이고.
(커튼을 가림막으로 두고, 지척으로 와서는 걸터앉는다.)
(네게는 흐릿하지만 정확하게 보일 인영이다.)
정희원:(너머로 빤히 바라본다.)
(손 뻗어서 커튼 한 장 두고 얼굴 만져본다.)
한영휘?:(영락 없이, 네가 아는 얼굴 굴곡이 만져진다.)
(그는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그 손길을 가만히 받고 있다.)
정희원:흐음. 정말 비슷하네.
무슨 생각 하니?
한영휘?:좀 망한 것 같다는 생각?..
정희원:왜?
한영휘?:누나가 충격 받을만한 일은, 기껏해야 가족이잖아.
주원이를 건드리기에는 너무 멀리 있고. 지금 당장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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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휘라도 건드리기에, 마찬가지로 시간이 부족하고..(목을 쭉 편다.)
정희원:공포를 먹고 살아가니? 할로윈의 괴물처럼.
상대를 잘못 찾아버렸구나?
한영휘?:비슷해.
당신의 것만 있으면 되는데..
(슬 커튼 걷어서 뻘건 눈 본다.)
(절레절레) 어떡해..
정희원:(작게 웃는다.) 다른 인간은?
한영휘?:다른 인간은 의미 없어. 당신이어야 해..
정희원: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텐데, 처음부터 큰 도전을 하는구나.
영휘를 건들기에 시간이 부족하단 건, 영휘는 이 근처에 없니?
한영휘?:방금 소리 들었잖아. 이 일대는 피퍼들이 잠식했어.
정희원:이미 임자가 있다는 거?
한영휘?:(절레)내가 당신을 두고 나갔다가, 다른 피퍼가 당신을 '놀래키는' 게 아니라 잡아먹는다면 곤란하고.
그 녀석이 쉽게 죽진 않을 것 같은데..
난 좀 시간이 부족하단 말이지..
정희원:그렇구나.
흐음...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다가)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줄게.
한영휘?:도와줘!
정희원:내가 도와주면 뭘 해줄 건데?
한영휘?:뭐가 좋을까~
(천장을 바라봤다가 다시 마주한다.)
이 녀석의 약점을 알려줄게!
정희원:...
...약점?
한영휘?:솔직히..
거의 없어보이긴 한데.
바보라서..
정희원:그리고 웬만해선 알고 있기도 해.
한영휘?:지네 무서워하는 그런 건 알지.
정희원:흐음.
내가 모르고 있는 약점이 있을 거란 기대를 걸어봐도 좋으려나.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일어난다.) 좋아.
그럼... 슬슬 나가고 싶은데?
한영휘?:밖으로 나갈 수는 없어. 어둠이 지속되는 한, 피퍼들은 사라지지 않을 테고.
목숨 부지 하고 싶다면 이 안에서 해결해야 해.
정희원:그렇구나.
피퍼와 인간을 구별하는 법이라도 있어?
한영휘?:거의 없지..
정희원:다른 피퍼가 날 넘보기라도 한다면 네가 peep. 이라고 하면 되잖아.
(커튼을 걷는다.)
한영휘?:하여간 겁도 없다니까..
(아쉬운 눈치로 혀를 차고는.)
나 1살인데? 피퍼들 상대하라고?
정희원:날 상대로 고른 깡 정도는 있을 것 아니야?
그리고...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내려다본다.)
한영휘의 기억이나 태도까지 흉내낼 수 있다면, 그 용기는 대강 곱절로 늘어나지.
한영휘?:알았어. 누나. 내가 구해줄게! 밖으로 나가자!
라고 하기엔, 난 물 능력 같은 거 없다구.
뭐..방 안에 있는 피퍼 정도는 처리해줄 수 있어.
일단 그걸로 괜찮겠어?
정희원:응. 이 욕실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것만 아니라면 뭔들.
한영휘?:아. 그게 문제 였구나.
(웃으면서 쭉 팔을 폈다.) 그럼 처리하고 부를게.
..그러니까 그 동안 좀 껴입고 나와!
정희원:아차.
(뒤늦게 커튼 다시 반쯤 친다.) ...그래.
한영휘?:(후다닥 달려나간다.)
바깥에서, 익숙한 괴성과 타격음이 울립니다.
정희원:(영휘가 아닌 건 알지만...)
Peep Peep..들렸던 것 같기도 하고.
정희원:(정말 영휘 같네. 고장난 한영휘...)
받아라! 같은 소리가 들리기도 하네요.
정희원:(으음...)
(상대로 나를 고르고, 껍데기로 영휘를 고르다니. 정말 최악의 조합을 생각해냈구나, 피퍼.)
(원피스 입는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 노크 소리가 울립니다.
한영휘?:누나. 끝났어.(헉헉..)
정희원:(머리도 잘 말렸다.)
응. (문 연다.)
꽤 고전했네?
한영휘?:(팔이며, 얼굴에 오물을 묻힌 채로.) 후..아무래도. 본체만큼 강하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꽤 강한 신체야!
정희원:... 냄새 난다.
한영휘?:..
아니..방금은 늑대 피퍼였고..
하수구에서 기어올라왔으니깐..
정희원:너도 씻을래?
한영휘?:..응.
정희원:그래. (욕조로 향하는 길을 내어준다.)
한영휘?:..
(욕조로 들어가서 씻는다..)
(peep..)
정희원:(ㅋ)
말 걸어도 돼?
한영휘?:(문 닫고 씻고 있는데..문 앞에 있나?)
정희원:(안 나갔다 처음부터.)
한영휘?:어우
정희원:(커튼 쳤잖아)
한영휘?:(그럼 안 벗었다;)
(아니 그래도)
정희원:(응)
한영휘?:말 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왜 여깄는데..?
정희원:개별행동은 위험하니까?
(등은 매너있게 돌리고 있다.)
한영휘?:아니. 나 씻으라며.
(황당)
아. 어이가 없네. (웃음 터뜨린다.)
정희원:날 변태 취급 하는 거야?
한영휘?:별로 그렇게 생각은 안 하지만.
난 당신 좋아했던 자각 있는 쪽이라 좀 그렇다고.
정희원:응?
뭐... 언제?
한영휘?:누나가 선생놀이 해줬을때?
대사건을 꾸미면서..
정희원:(그 시절을 회상한다.)
(확실히, 그땐 ■■을 꾸미느라 바빴지.)
그런 생각을 가졌었을 줄은 몰랐네.
(뒤늦게서야 이해했다는 듯 작게 웃는다.) 알겠어. 나가줄게.
(나감)
한영휘?:뭔 생각 하는 지 하나도 모르겠네.
왜 저런 여자가 좋았..좋지?
(1살의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보다가 마저 씻는다.)
(얼마 후에, 문 빼꼼 열고)
누나. 혹시 갈아입을 옷 없어?
정희원:그건 영휘 짐에 있을 텐데. 나한텐 없어.
가운이라도 가져다 줄까?
한영휘?:이런..
인간 피퍼는 불편하다니까.
부탁 좀 할게.
정희원:옷은 못 만드니?
한영휘?:아직 만들 줄 몰라..
정희원:(가운 갖다준다.)
공부해야겠네.
한영휘?:(손으로 받고는, 가운 걸치고 나온다.)
선생놀이 해주게~?
정희원:나도 피퍼에 대해서 알게 된다면 말이지.
너희가 변하는 원리가 뭔지 아직 내 사전엔 없거든.
한영휘?:(대충 네 근처에 걸터 앉고는.)
뭐, 당신한테 이 지능으로 두뇌 싸움 거는 건 의미가 없겠고!
그냥 다 말해줄게.
피퍼는 이 일대에서 사람의 욕망이나 정념 등, 강한 감정이 배출되었을 때 생겨나.
내가 태어난 건.. 트럭이 역주행했을 때,
한영휘가 놀라 자빠졌을 때였지..
한영휘?:peep
정희원:그건...
웃기네.
한영휘?:..
나름 탄생비화니까 진지하게 들어줘.
정희원:응.
한영휘?:아무튼. 변하는 원리는 저게 다긴 해.
그리고 어두울 때만 모습을 보이고.. 이정도?
정희원:지금은 정전 상태라서 이 호텔 건물 전체가 난리인 거구나.
그리고... 그에 따른 투숙객들의 공포심이 여기서 다른 피퍼를 탄생시키기도 한걸까? (곰곰.)
한영휘?:맞아. 숨어있던 피퍼들, 그리고 새로 생겨나는 피퍼들까지..
바깥은 아수라장이라고 볼 수 있지.
정희원:이해했어. 인간 입장에서는 당장이라도 빛이 필요하겠구나.
그리고 너는?
날 놀래킨 다음, 어쩔 할 셈이니?
한영휘?:그 정념에서 태어난 피퍼랑 오순도순 잘 살 거야.
정희원:?
한영휘?:?
정희원:음...
그렇구나.
한영휘?:반응이 왜 그래?
한영휘는 다른 사람 없인 못 산단 말야.
정희원:내가 널 돕기에는 너무 소소한 바람이라서... 한영휘라고 생각하면 이해는 되네.
흐음... ... (고민에 빠진다.)
그런데, 내 피퍼를 만들어도 너랑 오순도순 살 수 있을까?
한영휘?:뭐. 이상한 음모를 꾸민다거나 인간을 탐구하려 들긴 하겠는데.
왜 안되는데? 너도 지금, 자주 나랑 다니잖아.
미국으로 여행까지 와서..
정희원:이상한 음모?
인간을 탐구하는 걸 꽤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네?
흠, 하지만, 그것도 그런가.
하지만 정말 고민인 건 내 피퍼가 피퍼의 세계를 유치시키기 위해 세계에 어둠을 가져올 방법을 찾으려고 하지 않을까 하고...
그럼 하나만 더 질문할게. 어둠이 걷히면 피퍼들은 어디로 가는 거니?
한영휘?:뭐. 보수적인 면이 있으니까.
피퍼들은 '자주 태어나고' '자주 사라지지'. 어둠을 가져올 방법을 정희원이 찾겠다고 한다면..도와주겠지만.
실상 어려울 거야.
'그런 식으로 세계에 간섭한다면' 우리는 그리 오래 살 지 못할 걸.
생명체로써의 직감이랄까.
정희원:그래?
그렇게 말하는 걸 들으니 인간이랑 크게 다를 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 방금은 너처럼 내 클론 같은 존재가 생겨서 나도 모르는 일을 하고 다닐 거라고 생각하니 따지고 싶어져서 물어봤을 뿐이야.
잠깐 뿐이라면야.
한영휘?:참 성격 나쁘다니까.
너랑 다니고 싶은 게 나 스스로도 신기하긴해.
정희원:호텔로 오는 자동차에서 영휘에게 예민하게 굴었을 때에도 날 보고 성격 나쁘다는 생각 같은 걸 했을까...
한영휘?:너무 당연한 거라 일일이 생각하진 않았을 거야.
정희원:그래. 고오맙네.
한영휘?:천만에!
정희원:아무튼, 날 놀래킬 방법을 알려줄게.
한영휘?:(귀 쫑긋)
정희원:내가 보는 앞에서 죽어. 고통스럽게.
한영휘?:...,
내가 죽으면 전부 의미가 없어지는 이야기들 아냐?(황당한 얼굴로..)
정희원:하지만 그게 유일한 방법인걸?
으음, 뭐. 명쾌한 해답은 되지 못하더라도 힌트는 될 거야.
한영휘?:어떡하지..
너무 어려워..
정희원:...
그럼 네 생도 거기까지인거겠지, 어떡하니, 주인을 닮아서...
한영휘?:한영휘는 오래 살 것 같은데..억울해..
나도 정희원의 피퍼로 태어나고 싶었어..
정희원: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지.
그럼...
(복도 쪽으로 귀를 기울여본다.)
한영휘?:(엎드려서 우는 소리하다가)
응?
정희원:적어도 이 층에 피퍼가 몇 마리 정도 있을까 싶어서.
한영휘?:너 이미 날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관심이 옮겨간 거야??
몇십 마리는 되지 싶어.
정희원:어음, 솔직히 말해서, 약간.
흥미가 떨어져가는 참이야...
한영휘?:............................
어쩔수 없다는 말로 그러지 말고..
도와줘..!
정희원:날 놀래킬 다른 방법을 찾아 보는 건?
내 머리가 아니라 한영휘의 순수한 머리로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도 있잖니.
한영휘?:그 녀석이 널 놀래킬 때는 대부분 의도가 없어서. 어렵단 말이지.
....................................
이건 아니고..
이건..
이것도 아니고..
정희원:(팔짱 끼고 보다가 하품한다.)
한영휘?:같이 고민해달라고!
정희원:미안. 날이 습하니까 졸리네.
한영휘?:날이 좀 습하긴 하지.
어차피 정념이니까 한 번 할까. 생각해봤는데. 어떻게 하는 지도 모르겠어서 패스.
그 다음, 한영휘가 당신을 생각하는 바에서 충격 받을까 했는데..
어차피 동정 받은 건 알고 있을 것 같고.
(어떡하지 누나..표정으로 봄)
정희원:(가만히 듣다가 고개를 기울인다.)
역시 당사자 외의 입에서 그의 본심을 듣자니 기분이 별로네.
나도 타인을 향한 '존중'이라는 게 생겼을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그런 표정으로 봐도... 난 이미 힌트를 줬잖니.
한영휘?:비꼬는 거 다 알거든!
(한숨을 쉬고는, 부엌으로 향하도록 일어선다.)
정희원:진심이었는데... (어깨를 으쓱인다.)
네가 클론에 불과하니까 내가 진심을 그나마 편하게 말하고 있다는 걸 모르겠니?
(따라간다.) 어디 가?
한영휘?:그래? 별 차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걔는 솔직하게 굴어도 별 타격 없을 걸. (부엌에서 식칼을 들었다.)
정희원:좀 더 섬세한 피퍼로 태어났다면 날 이해할 수 있었을 지도 몰라...
(식칼 가만히 본다.)
한영휘?:한영휘의 피퍼인 이상 어려워..
(식칼을 들고, 침대 근처로 가 앉는다.)
이리와봐.
정희원:창 밖에서 번개가 치면 넌 사라지려나? (따라간다.)
한영휘?:그럴 지도? 지금 열린 공간에서 있는 것 자체로, 좀 리스크야.
(털썩 앉혀두고는, 팔을 걷는다.)
정희원:(누구의 팔을 걷었지?)
한영휘?:(제 팔이다.)
정희원:자르려고?
한영휘?:아니.
어차피 내가 아는 건, 한영휘에 대한 것 뿐이야.
그나마 네가 친밀감을 느끼는 대상이라면..
내가 아는 선에서, 전부 털어내는 게 좋겠지.
(손 끝에서 물방울이 튀었다.)
정희원:(뭘 하려는지 가만히 지켜본다.)
(...물방울?)
한영휘?:여기가 손 끝으로 수력을 만들어내는 곳, (팔의 중앙을 가르며, 겨드랑이 까지 깊게 파고든 혈관부를 칼 끝으로 푹 찔렀다.)
(그리고 이내 손 끝에서 떨어지던 물방울이 멎고, 구겨낸 인상 밑으로 혈액이 줄줄 흘러 떨어지기 시작한다.) ...,
(이마에 맺힌 식은 땀을 닦을 새 없이, 팔에서 칼을 뽑아내고 손목으로 내려간다.)
(이내 짚어 찔러낸 곳은 맥이 뛰는 손목의 혈관.) 여기서는, 제대로, 그러니까 가령.. 섬세한 조정같은 게, 불가능 해지고,
이 곳에서는 압력, (허벅지의 대퇴동맥.)
정희원:... (가만히 지켜본다. 계속되면 몇 분 내로 실혈사 할텐데.)
한영휘?:이 곳에서는, 변화. ..(죽음이 두려워 찌르지 못한다. 관자놀이에 가져다댄 칼이 뇌혈관을 가리키는 듯.) 그러니까..(가쁜 숨을 몰아쉰다.)
이 능력은, 보통 인간이 그렇듯이..
뇌로 근원되지 않고.., (헐떡이며 칼 끝을 가져다댄 곳은 심장 아래의 대동맥이다. 전신으로 혈액을 보내는 가장 큰 혈관.)
심장으로부터, 피로부터 이어져서.., 작동한다는 거야.
정희원:그렇구나... ...
예상 밖의 원리는 아니네. (걸터앉은 채, 평정을 유지하는 얼굴로 올려다본다.)
(제 손을 뻗어 칼 끝을 가져다 대고 있는 네 손을 쥔다.)
(혈향이 코끝을 스친다. 이런 비릿한 냄새를 맡으면 어느 인간이든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하고 긴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미 뇌를 너덜너덜하게 썼던 전적이 있는 정희원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건 결코 이 정도의 피 같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평소보다 정희원의 손이 평소보다 찬 이유는, 손에 땀을 쥐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아직 멀었어. 네가 정말로 죽을 지경에 이른 게 아니라면 이 정도로는 내가 괴롭지 않아.
정희원:(가장 큰 이유는, '피퍼'라는 것이 한영휘를 모방하고 있다는 점이 불쾌했기 때문에, 이대로면 깔끔하게 일을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다음 이유는, 단순하다. 정희원의 안에서 지독하게 남아있던 사디즘을 자극 받았기 때문에.)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그래. 한영휘의 인두겁을 쓰고 이 정도로 피를 내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정희원에게 두려운 일도 맞다. 위의 두 이유가 클 뿐...)
(붙잡은 손을 밀어넣는다.)
한영휘?:(제 손에 와닿은 살갗의 온도는 변하지 않고, 또한 표정 또한 너무나 여상했기에 일순 좌절한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는 말에 본능적으로 다음 해결책을 찾아 머리를 굴리는 것은 한영휘의 피퍼로서. 그러니까 살아서 자신과 타자가 합의점을 도출하자는 것은 한영휘의 결론으로.)
(근본적으로 그는 정희원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받아들이지 않고 이겼기에.)
(정희원은 그렇게 해도 정을 나눌 수 있는 타자였기에.)
(한영휘의 피퍼가 정희원의 정동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필연이다.)
한영휘?:(밀어넣는 손을 부여잡는 악력이 한참을 늦는다.)
(그 시점은 이미 가슴 아래서 선혈이 솟구칠 때였다.)
(울컥이는 피를 사지에서, 복부에서, 입에서 흘려내던 그것은 까닭도 모른 채, 상처받은 얼굴로 발성했다.)
왜?..,
정희원:말했잖아, 난 이 정도 충격이 아니면 웬만해서는 놀라지 않아... (오감이 한영휘의 껍데기를 인식하고 있다. 장본인이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반응을, 감정을 인식하고 있다.)
(정희원이 취한 행동은 다음과 같다. 가장 먼저 입꼬리를 느슨하고 짓궂게 끌어올렸다. 그 다음으로 한영휘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을 잘게 떨기 시작했다.)
(방금의 과정에서 지은 미소가 결코 조소는 아니었으나, 시선을 맞춘 이후로는 상대의 순진함을 더는 우습게 볼 수 없어졌기에, 그저 미소, 거기서 그친다.)
(좀 전에도 말했듯이, 피퍼에 불과한 네게 조금은 더 솔직해질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네게 하는 말은 모두 진실이다.)
미안, 네가 함부로 한영휘의 모습을 하고 태어난 탓이야.
한영휘?:(심장 밑에 박힌 칼이 흔들릴 때마다 신체가 덜커덕 흔들리기를 반복한다.)
(손목을 강하게 틀어잡은 손아귀에서 점차 힘이 빠져나간다. 웃음의 이유도 짐작할 수 없다. 네가 마지막에 한 말도. 제 전부이자 인조인 기억으로서는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없다.)
(그의 모습을 한 게 기분 나빴다는 것일까?..)
(물이 빠진 풍선처럼 다량의 피가 흘러 빠진다.)
(심장 아래의 장기들 또한 위치를 잃고 흔들리다가, 그저 못내 서럽게 바라보던 원망도 그 감정의 빛이 바랜다.)
(고요한 끝은 반드시 마침표로 끝난다. 물음표를 덧붙일 수는 없다.)
한영휘?:(제 주인—한영휘—의 신념대로, 작동을 멈춘 피퍼는 의미 없는 肉이 되었다.)
정희원:거짓 인생 같은 건 용서가 안 되더라. 누군가에겐 기만이 될지도 모르는 걸.
내가 피퍼 입장이 되어본 적은 없으니 네 설움을 공감하긴 어렵겠지만 말이야... 미안하게 됐어, 정말로.
(변명과 미소는 반비례한다.) 그런 습성을 가진 존재라면 '오순도순'도 오래 가진 않을 것 아냐...
내가 예상 못할 여러 일을 방지하고자 했을 뿐이야.
그러니까...
...
정희원:(오로지 자신만의 죄로 만들어낸 붉은 피를 뒤집어쓴지 오래다.)
(쏟아내고 쏟아진 몸에서 한 발짝 떨어진다.)
... 너무 원망하진 마. (청각은 감각기관 중 가장 마지막에 소실된다고 한다. 그 기회를 잡아 건넨 말은 누구에게도 좋게 들릴 말은 아니었지만.)
(핏물에 젖은 손과 그 너머로 쓰러진 육신을 바라본다.)
('난 이 정도 충격이 아니면 웬만해서는 놀라지 않아.')
(그래. 지금이 딱 '이 정도' 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정희원:... (불은 아직인가? 진짜 한영휘는 언제 돌아오지?)
(이젠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의 체력을 소모해 통제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들숨에 하루 날숨에 이틀 수명이 깎여들어가는 기분이다... 습기로 인해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피에 젖은 손으로 넘기고, 피퍼의 다리를 잡아 침대 밑으로 이끈다.)
저마다 숨기고 살아가는 것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남들에게 보여지지 않고 싶고 보이지 말아야 할 모습들, 추하고 더러워 화려한 도시아래 기회를 노리며 무섭도록 들끓는..
우리는 양지에서 살아가기에 고귀한 존재인 걸까요?
추악함은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요?
눈에 보이지만 않게 감춰 놓는다고 존재까지도 사라지는 걸까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사념이, 한영휘에게서 떨어진 한조각의 심연이 버젓이 내 곁을 이렇게 지키고 있는데…
금이 간 만화경처럼 명과 암이 정신없이 뒤섞이면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혹은 자격이 우리에게 있는지조차 의문이 듭니다.
····
문틈 새로 희미한 빛이 새어 들어옵니다.
드디어 복구가 된건지 문 밖으로 따뜻한 불빛이 느껴집니다
참혹한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처절한 비명소리, 달음박질 치는 불쌍한 영혼들이 들립니다.
오늘의 재앙은 1면을 장식하는 대형 참사로 역사의 한 지점에 남을거예요, 나오지 말아야 할 것들이 역류하는 바람에 말입니다
하지만 정확한 진상을 목격하고도 살아남은 건 당신을 포함해 몇명 되지 않을겁니다. 혹은, 당신 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화장실 불까지 켜지자, 시신과 피는 눈 깜빡할 새에 연기같이 사라집니다.
무결해졌습니다!
아, 때마침 발소리가 들립니다.
정희원:...사라졌네.
당신을 찾는 또 하나의 다급한, 다정한, 겁을 먹은, 떨리는, 인간적인 목소리.
정희원:(원래도 존재했던 식칼만 주워든다.)
당신이 너무도 잘 알고있고, 당신을 너무도 잘 안다고 확신하는...
한영휘:누나!
(땀과 피에 젖은 채로, 반가운 낯을 하고 달려온다. 그 안면에 안도감이 비친다.)
정희원:(곧 다급한 소리에 주워든 식칼을 등 뒤로 숨긴다.)
아, 왔어?
괜찮아? 난리도 아니었잖아.
피가 나네.
한영휘:아. 괴물들이랑 싸우느라. 말도 마. 진짜 장난 아니었어..
쓰러뜨려도 쓰러뜨려도 계속 생겨서..(한숨을 쉬고는, 멀쩡한 네 몸을 와락 끌어안는다.)
다행이다. 누나가 객실 안에 있어서 진짜 다행이야!
..무슨 일 생기는 줄 알고 진짜 걱정했어..
정희원:난 잘 숨어 있었어. 영휘 너는 혼자서도 잘 살아남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앗.
(갑작스러운 포옹에 등 뒤로 숨긴 팔에서 식칼이 쨍그랑하고 떨어진다.)
한영휘:헉..
정희원:아, 이건...
한영휘:깜짝이야.(식칼을 보고는 놓아준다.)
뭔 일 날까봐 들고 있었던 거지?
정희원:(괜히 숨겨서 부자연스러운 모습이나 보였겠다는 생각에 작게 숨을 삼켰다가, 곧 옅게 미소짓는다.)
응. 호신용으로 들고 있었어.
어딘가 다쳤어? 상처 좀 보자.
한영휘:뭐. 다 생채기야. (팔 다리에나 긁힌 상처를 보여주고는, 별 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정희원:(떨어진 식칼을 주워 선반에 조심히 올려놓고는 긁힌 상처를 살핀다.)
어디 보자... (그리고, 피퍼가 스스로 자해했던 맥이 있는 부위에는 손끝을 스쳤다.)
(심장 아래에 손을 올려보고는, 끝내 안도한 듯 미소짓는다.)
응. 다행이네.
한영휘:아. 간지러워.(바람 빠지게 웃고는, 새삼 심장까지 올려두는 손에 괜스레 낯간지러움이나 느낀다.)
아무튼 둘 다 아무 일 없어서 진짜 다행이다~
정희원:그렇네... 좀 쉬어.
아, 먼저 씻을래?
한영휘:그래야겠다. 일단 물만 먹고, 씻으러 갈게.
한영휘가 부엌으로 향하고,
욕실에 시선을 두게 된 당신은,
샤워커튼 넘어 욕조 안에 늘어지게 앉아 당신을 바라보는 한 개의 시선과 마주합니다.
서늘해진 물 안에 당신을 꼭 닮은 실루엣과 시뻘건 안광만 선명히 보입니다.
정희원:... ...
완벽하게 당신은 아니지만, 혹은 아니라고 믿고 싶겠지만, 당신에게서 태어난 피조물인만큼 당신을 꼭 빼닮았습니다.
입꼬리를 올려 웃은 그것.
당신을 꿰뚫어봅니다.
정희원:(확실하게 시선을 마주쳤다. 결국 태어났구나. 물을 꺼내는 영휘의 뒷모습을 한 번 보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식칼을 둔 자리로 돌아간다.)
얼마간 그러고 있다가, 물이 빠지면서 하수도를 통해 흘러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물길을 따라 완전한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흐르고 흘러,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겠지만 당신만은 그들의 존재를 오래토록 기억할 것입니다.
:: (GM):KPC, 탐사자 생환. 더 이상 이상한 것들을 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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