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Charms Rainbow

10월의 반딧불이

2025-03-10

이 빛을 따라가자.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 약속되어 있어.

감독: 한영휘

출연: 정희원

정희원:70
10월의 반딧불이
"자율 학습 시간에 딴짓하지 말고. 선생님 자리에서는 다 보여!"
7교시 문학 시간은 자율 학습 시간입니다. 어느덧 일주일 뒤로 훌쩍 다가온 2학기 시험을 대비해, 몇몇 학생들은 고개를 숙여 공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정희원:(공부중...)
물론 전부 그런 것은 아니죠. 그렇지 않은 (대체로 공부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쪽지를 돌리거나, 제출하지 않은 전자 기기를 만지작거리거나, 들키지 않게 귓속말을 주고받습니다.
교탁 앞에 앉아 계신 문학 선생님은 눈매가 사납고 목청이 시원한 분입니다. 엄포를 놓으신 지 3분 만에 꾸벅꾸벅 졸고 계시지만요.
밋밋한 교복 소매 끄트머리에 달린 단추가 흰 형광등 빛을 반사합니다. 그 안에 비치는 납작하고 둥근 풍경, 이곳이 바로 당신이 사는 세상입니다.
여기는 지구, 평범한 인계(⼈界),
정희원은 시일 고등학교 2학년 3반 학생입니다.
이 교실에는 차분하게 머리카락을 넘기며 수학 문제집을 풀어내는 반장도, 엎드려서 부족한 잠을 충전하는 옆자리 친구도 있지만,
갑작스럽게 팔 천구백 개의 다리를 가진 뱀이 떨어지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정희원:(옆자리 친구 잠 깨운다.)
옆자리 친구: 커어..
정희원:유진아, 일어나.
옆자리 친구: (입까지 벌리고 잔다.)
정희원:...
인어, 좀비, 식인 괴물, 외계인 역시 희원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로지 상식의 선 안에서 사건이 발생하고 해결됩니다.
정희원:(손등 위에 네임펜으로 벌레 그린다.)
이곳은 아름답고, 평화롭고, 무료한 세계입니다.
정희원:(다시 공부에 집중한다.)
문득, 교과서 사이에 끼워둔 학습지 한 장이 바닥에 떨어집니다.
정희원:(줍는다.)
줍기 위해 몸을 숙인다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동급생들의 다리 (잠깐! 이전 수업이 체육이었으므로 전부 체육복 바지를 입고 있습니다. )
책상다리, 바닥을 뒹구는 학습지, 의자 다리, 뒤편의 사물함, 그리고 빛…….
빛?
깜빡, 깜빡. 그것은 정교하게 찍어낸 풍경 속에서 오로지 이질적으로 존재하는 청록색 빛입니다.
정희원:(빤히)
빛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면,
대여섯 개의 푸르스름한 빛들이 간간이 점멸하며 닫힌 희원의 사물함 틈에서 새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 빛이 아니라 이건…….
정희원:
과학(생물학) Roll
기준치: 51/25/10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반짝이는 벌레입니다. 해괴하게 생겼네요.
정희원:(학습지 주워 올려놓고, 사물함 확인하러 간다.)
지금은 10월이죠. 도심 한복판, 그것도 학교 사물함 안에서 대체 무엇이 나오고 있는 걸까요?
사물함이 저절로 열립니다. 교과서, 체육복, 실습 준비물….평소 사물함에 무엇을 넣어뒀던가요?
정희원:(사물함에는 교과서, 체육복, 실습 준비물, 양치도구와 여분 파우치를 가지런히 정리해두었을 것이다.)
존재하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새카만 구멍만이 사물함 안에 존재합니다.
블랙홀처럼 회오리치는 그것은 차츰차츰 주변을 검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빛이 깜빡이고 있습니다.
정희원: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감소
"정희원! 소지품 떨어졌으면 얼른 줍고 얌전히 자습해라!"
어느덧 일어난 문학 선생님이 입가의 침을 벅 눌러 닦고 꾸중합니다.
놀라운 광경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제외한 주변 그 누구도 이 상황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희원:네~oO(선생님도 참...)
(주변을 눈으로 훑고는, 다시 이질적인 모습을 한 사물함으로 시선을 돌린다.)
정희원: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97
판정결과: 실패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선생님이 다시 한 번 재촉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소란을 잠재울 수 있습니다. 사물함의 문을 닫고,
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풍경 일부가 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니까요.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지나치게 환상적입니다.
형광등 빛만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하는 교실 곳곳에 푸른 녹음의 빛을 발하는 반딧불이가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사물함 내부의 구멍에서는 고요한 바람이 먼지부터 집어삼키며, 제 존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정희원:oO(수능 공부 해야하는데...)
(헛것을 본 건 아닌지 안경 뽀득뽀득 닦고는 다시 본다.)
반딧불이 동동 떠서 빛을 내뿜고 있습니다.
정희원:(반딧불 하나를 잡는다.)
반딧불을 잡으려 손을 뻗자,
세찬 바람이 구멍 안에서부터 휘몰아칩니다.
비명과 함께 유진이가 희원의 이름을 외칩니다.
순식간에 사위가 어두워지고 모든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됩니다.
볼펜의 끝으로 바닥을 긁어내리는 소리나, 종이가 팔랑거리는 소리까지도.
지금 이 순간부터 벌어지는 일은 온전히 희원, 혼자만의 것입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잡아당기는 감각이 들이닥치고,
딸랑, 딸랑….
어디서 울리는 것인지 모를 방울 소리만이 메아리칩니다.
"이, 일어나아, 이런 곳에서 자면 곤란해."
정희원:(눈만 뜸)
어둠 속에서 사흘간 아무것도 마시지 못한 것처럼 걸걸한 음성이 들립니다.
그 외에도 북소리, 웃음소리, 피리 소리, 시끌벅적한 행인들의 목소리가 머나먼 곳에서 희미하게 울려 퍼집니다.
설마, 꽃다운 나이에 죽어버린 걸까요….
왜 눈을 떴음에도 아무것도 볼 수 없죠?
죽었다면 이 고약한 냄새의 출처는 어디인가요?
정희원:(눈살 찌푸린다.) 으, 지독한 냄새.
여긴 저승인가요...? 아직은 때가 아닌데.
주변에서 웃는 소리가 들립니다.
정희원:반딧불을 잡으려고 한 게 죽을 죄는 아니잖아요.
정희원: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지옥이라기엔 너무 익숙하고 고약한 냄새입니다.
자신이 쓰레기통을 뒤집어쓰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정희원:(덜그럭...) 어라...
(쓰레기통을 벗는다.)
이게 왜 머리에...
...기분 나빠.
쓰레기통을 걷어내고 주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저녁 무렵이며,
누워있던 곳은 보기 드물 정도로 거대한 나무 아래입니다. 금색 새끼줄이 이리저리 드리운 게, 신성해 보이네요.
쓰레기통을 뒤집어쓰긴 했지만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는 교실에 있던 물건들이 떨어져 있습니다.
교과서나 필통이 든 가방,사물함에 있던 소지품, 빗자루와 대걸레….
정희원:이런 거 실제로 본 적은 없는데. (북소리나 피리 소리도 그렇고 묘한 이질감이 든다. 음성의 주인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두 발로 선 붉은 여우와 마주칩니다.
붉은 등을 든 여우는 옷을 입고 있으며, 마치 사람처럼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습니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과 마주한 희원.
정희원:어라...
정희원:
SAN Roll
기준치: 59/29/11
굴림: 85
판정결과: 실패
그런 희원을 관찰하던 여우는 대뜸 길고 높게 비명을 지릅니다.
여우: 서, 서, 설마…. 인간이다!!!!!!!!!
비명에 놀랄 틈도 없이, 여우의 소리에 반응한 무언가가 재빠르게 하나둘씩 나무 주위로 모이기 시작합니다.
정희원:(주춤)
세찬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착지하는 것들은 정체 모를 벌레, 도깨비불, 목이 비틀린 남자, 뿔이 달린 여자, 여러 동물이 조합된 고양이, 두 발로 걷는 쥐….
하나같이 전부 인간이 아닐뿐더러 무시무시한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귀여운 축에 속하는 여우가 털을 빳빳하게 세우고 제자리에서 길길이 날뜁니다.
정희원: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4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저... 인간이면 안 되는 건가요?
공포 영화 속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생명체들―굳이 정의하자면 요괴들―은 전부 비슷한 옷을 입고 있습니다.
요괴들이 입은 옷이 약간은…. 교복을 떠올리게 합니다.
정희원:제가 이중에서 가장 최약체 인 것 같은데요.
여우: 마..말한다!인간!
요괴들은 마치, 길을 잃고 집안에 들어온 야생 동물을 보는 듯한 눈으로 희원을 살펴봅니다.
개중에는 손(으로 추정되는 것)을 뻗어 만지려고 하는 요괴도 있습니다.
촉수가 많은 벌레괴물이 희원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합니다.
정희원:그렇구나, 따지자면 동물 취급인 걸까요...
(주춤하더니 손으로 잡는다.)
멋대로 만지지 말아주세요. 그래도, 음, 반가워요.
벌레괴물은 움찔하더니, 희원의 손으로 잡은 촉수가 순식간에 여러 개로 나뉘어져 팔을 타고 오릅니다.
정희원:이건 무슨 원리... 가, 간지러워요.
"정말 인간이잖아."
"미호, 왜 발견하자마자 바로 말하지 않았어?"
"쓰, 쓰레기통 도깨비인 줄 알았지!"
"이상한 옷을 입고 있네. 문을 열고 온 건가?"
"규칙을 지켜. 요괴 5대 철칙을 잊은 거 아니지?"
호기심을 보였던 것도 잠시, 요괴들은 그들끼리 의견을 주고받습니다
정희원:요괴 5대 철칙이 뭔가요?
(쓰는 언어가 같네. 이건 신기하다.)
말을 걸자 그들은 몇 초 정도 입을 다물고 희원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그뿐, 원만한 대화가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인간’에게 우호적으로 대하는 요괴도 있는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흐름은 차츰차츰 악의적으로 변합니다.
"하지만, 우리끼리고 아무도 모를 거야."
"안 돼! 선생님께 이른다!!"
"그럼 넌 빠져. 우리끼리 잡아 먹어버리자."
"좋아! 누가 어느 부위를 먹을래?"
정희원:앗...
(위험해졌나? 옆에 떨어진 빗자루 집어든다.)
뒤는 신목, 앞과 옆은 빼곡하게 요괴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입니다.
몇 분 후, 토의가 끝났는지 이빨이 유독 많은 늑대 요괴 하나가 유감스러운 표정으로 희원을 향해 돌아섭니다.
털이 복슬복슬한 발끝에 삐져나온 발톱이 날카롭습니다.
차츰차츰 어두워지는 저녁 하늘, 컴컴한 배경을 등지고 희원을 바라보는 노란 눈은 분명,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늑대 요괴: 간만에 인간이라 반가웠지만, 미안하게 됐어. 감사히 먹도록 하겠다
곧 늑대 요괴가 희원에게로 달려듭니다.
정희원:앗...! (빗자루로 최대한 방어한다.)
빗자루가 날카로운 발톱에 두동강 납니다.
아아, 이렇게 끝인 걸까요….
이토록 낯선 곳에서 요괴들의 간식거리가 될 운명이었다니,
사물함 문을 닫으러 가지만 않았어도….
어쩐지 안타까운 독백이 들리는 것 같던 그때, 바닥으로 나뭇잎이 몇 장 떨어집니다. 경쾌하게 울리는 방울 소리와 함께요
얇은 꽃잎이 추락하듯, '어떤 것'이 사뿐히 땅바닥에 내려앉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과 다른 생김새를 가지고,
요괴들과 같은 옷을 입고 있지만, 기묘하게도 느껴지는 존재.
그것은 요괴와 희원 사이를 가로막고 요괴들에게 시선을 던집니다. 거대한 나무 아래에서 산들바람이 붑니다.
방금, 방울 소리가 울렸던가요?
한영휘:다들 철칙을 잊은 거야?
정희원:도와줘요! (뒤로 숨는다.)
한영휘:(희원을 뒤로 숨기고 요괴들에게 따진다.)
문을 넘어온 손님은 건드리지 않기로 선생님과 약속했잖아!
어디까지 하나 했는데, 너희 정말..
요괴들은 입맛을 다시다가, 가까운 이인지 다소 누그러진 태도를 보이더니….
"그래라, 인마."
"쳇, 인간이 별미래서 기대했는데…."
라고 말하며, 처음 등장했던 것처럼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립니다.
정희원:저는 맛 없거든요!
(메롱)
한영휘:맞아. 먹을 것도 없어보이는데.
정희원:그래요. 안 그래도 요즘 공부할 게 많아서 살이 쪽쪽 빠지고 있단 말이에요.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한영휘:하하. 공부랑 살이 무슨 상관이야?
머리 쓰는 거잖아!
뭐 별 말을.
(어쩐지 흥미로운 듯 계속 쳐다보고 기웃거린다.)
정희원:(이쪽도 흥미로운 건 마찬가지인지 마주본다.)
제 이름은 정희원이에요.
한영휘:...내 이름은 한영휘야.
그나저나 이 곳은 인간이 있을 곳이 아니야. 얼른 돌아가는 게 좋을 걸.
정희원:음...어떻게 돌아가는데요?
사실 여기 오게 된 것도, 제가 이 세계의 존재를 알고 온 것도 아니라서요.
한영휘:흐~음.
(냄새 맡아보고는 물러선다.)
문이 열리는 대로. 축제가 끝나면 문이 열리거든, 아, 그런데, 축제는 내일부터니까. 오래 기다려야 할 거야.
정희원:그럼 '얼른'은 못 하겠는 걸요.
한영휘:그러네.(웃음)
정희원:(제 교복 냄새 맡아본다.)
하필이면 쓰레기통을 뒤집어쓰고 올 게 뭐람.
한영휘:(냄새나는 지 슬쩍 떨어져있다.)
정희원:(다가간다.)
한영휘:이런 말은 미안하지만..
대체 뭘 쓰고 있었던 거야?
정희원:음...
제가 사는 세계에서는, 음식 따위를 널리 유통하고 보관할 수 있도록 잘 썩지 않는 얇은 소재로 포장을 하고는 해요.
내용물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 포장재를 벗겨야 하고, 벗겨낸 포장재들은 다시 한 데로 모아 버리죠.
그 쓰레기들을 모으는 통이에요.
한영휘:그러니까 쓰레기통이라는 거 아냐!
조금 떨어져서 걸어.
정희원:여기에도 그런 개념이 있군요?
한영휘:그럼. 당연하지.
정희원:'플라스틱' 이라고, 가벼운 소재로 만들어졌어요.
이 세계에 플라스틱은 있어요?
한영휘:나도 안다고, 알어!
플라스틱은 없지만.
우리는 인계에 대해서 나름 알거든.
인간들은 우리에 대해서 모르지만 말야~
정희원:응~? 정말요?
한영휘:그래!
정희원:신기하다.
(조금 떨어져서 따라간다.)
시야가 넓어집니다. 탁 트인 주변은 숲속이 아닌, 어떤 건물 앞입니다.
정희원:제가 묵을 수 있는 곳인가요?
건물의 건축 양식은 동양의 것과 유사하지만, 어느 한 나라의 것이라고 콕 집어서 말하기 어렵습니다.
한영휘:으응?여기는 학교야.
'영월호'라고 해.
정희원:그렇구나. 어쩐지 아까 전의 요괴분들과 영휘 씨는 다 같은 옷을 입고 계시더라고요.
'선생님'이라는 말씀도 들었고...
여기서는 보통 뭘 배워요?
식사도 제공하나요?
저희 학교는 점심마다 식사를 제공해요..
매점은 있나요?
정희원:저희 학교에는 있어요.
한영휘:식사도 주지. 그럼. 인계에 대한 것도 배우고, 요술 부리는 법도 배우고..
..매점은 없어.
정희원:그래요?
요술이라니, 재미있겠다.
과학도 배우나요?
한영휘:어느 정도는 배우지. 근데 그 뭐냐..인계에서 하는 복잡한 거?까지는 아니고.
정희원:그래요? 제가 교실에 현미경을 뒀다면 이쪽에 선물로 가져올 수 있었겠는 걸요.
여기도 저희 세계... 인계와 같은 단위를 쓰나요?
저희는 365일이 1년이에요.
그리고 저희 세계는 202X년이고요.
제 나이는 18살이에요.
한영휘:인계랑은 같은 단위를 쓰고 있지만, 세는 사람은 별로 없어.
그야 평균 수명부터가 아득하게 차이나는 걸.
여긴 500살에서 800살 사이의 요괴를 가르치는 곳이야!
정희원:많다...
한영휘:난 지금 최고 학년이니까 700몇 살 쯤 됐을까.
할아버지라고 불러!
정희원:그래요, 할아버지.
요괴들은 오래 사는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오컬트 소설이라도 읽는 거였는데.
저는 요괴들에 대해 아는 게 없어요.
요괴라는 거 저희 세계에서는 '픽션'에 불과하니까요.
아, 픽션이 무슨 뜻이냐면요,
한영휘:삑션이 뭔데?
정희원:'fiction'이요. 허구라는 뜻이에요.
한영휘:에프아이씨티아이오엔이 뭔데?
정희원:아,
알파벳도 모르시겠구나.
여기에도 서양이라는 개념이 있나요?
한영휘:서쪽은 있지만 그런 건 없어.
인계에는 있다지?그건 알아.
거기서 쓰는 언어인가 보군.
정희원:네. 서양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인 '영어'라고 하는데요, 저희 지구에서는 그게 표준어라서 저희 나라에서도 섞어 쓰는 편이에요.
한영휘:으으음..배웠던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정희원:후훗. 여기에서도 배울 수 없는 인계의 지식이란 게 있는 모양이죠?
한영휘:뻔질나게 드나들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정희원:제가 이 학교 '인계학'의 선생님이 된다면 좋을 텐데!
저, 저희 학교에서는 모범생이거든요.
한영휘:..(잠시 멈칫하더니 웃음을 터뜨린다.)
그래? 그럼 돌아가지 말고 선생님 해!
하핫.
정희원:아, 음...
그건 안 되는데.
한영휘:농담이야.
정희원:축제 동안에는 학교 안 와요?
한영휘:굳이 안 와도 돼.
근데 아무튼..요괴들 있으니까 여기서 자는 건 안 되고.
일단 우리 집으로 가자.
정희원:으음~ 그래도 오는 학생들이 있다면 제가 가르치면 안 되나요?
일대일 강습도 좋구요...
(따라간다.)
한영휘:몰래 와서 너 잡아먹을걸?
정희원:그럼 할아버지 상대로 일대일 강습 해야겠다.
한영휘:그건 좋아!
그리고 축제 동안에는 학생들 거의 없을 거야.
해봤자 방금처럼 학교 주변에서 무리 지어 노는 녀석들 뿐이고.
인계학 같은 거에 관심 없을걸.
정희원:에~
하긴, 다들 지금 삶에 바쁘다면 외계에 대해서 탐구할 생각 같은 것 보통 안 하겠죠.
저희 세계에 이계학 같은 게 있었더라면...
전 들었을 것 같지만요!
한영휘:너 참 특이한 녀석이구나.
아무튼 당분간은 축제기간이야.
내 집에만 짱박혀 있을 건 아니지?
정희원:그러고 있으면 할아버지 집에 누군가 몰래 와서 잡아먹을까요?
일단 안전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서요.
한영휘:음...우리 집에는 딱히 안 올테지만.
나랑 있는 게 더 안전하겠지.
네가 쓰레기통 요괴로 변장하면 아무도 모를걸?
정희원:그건 싫어요...
그럼 할아버지 옆에 붙어 다녀야 겠다.
할아버지는 축제 즐길 생각이신 거죠?
한영휘:아하하. 응. 그럼. 오랜만의 축제니까.
최근에 졸업 시험이 있었거든. 이 다음엔 항상 축제를 열어!
마을을 전부 빌려서 하는 축제라, 기대하고 있었다구.
정희원:졸업 시험이라~ 여기에도 그런 게 있구나.
할아버지도 졸업 시험 치셨나요?
한영휘:난 아직!
딱히 졸업하고 싶지 않아서.
정희원:졸업하고 싶을 때 치는 건가요?
한영휘:응. 합격하면 졸업하는 방식이거든.
집으로 가자고 했지만, 향하는 곳은 민가가 아닌 으슥하고 외진 뒷산입니다.
정희원:그렇구나~
그래도 보통은 빨리들 졸업하고 싶어하죠?
한영휘:맞아.
보통은 그렇지.
하지만 뭐..인계에도,
졸업하고 싶지 않아서 미루는 사람은 있다고 들었어!
그런 거지.
정희원:하긴 저도 대학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어요.
보통 그런 사람들을 '화석'이라고 불러요.
한영휘:어쩐지 너무한 명명이구만..
벌레나 올빼미가 우는 소리만 음산하게 울려 퍼집니다.
정희원:혹시 동굴 같은 곳에 사세요?
한영휘:평범한 집이거든?
영월호의 뒷산은 잡풀이나 나무가 무성해, 걷기 무척 힘듭니다.
영휘는 개의치 않고 그곳을 가로질러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정희원:할아버지~
한영휘:왜~
정희원:공중부양 요술은 쓸 줄 모르세요?
여기 걷기 너무 힘드네요...
한영휘:난 쓸 수 있지!
(둥둥 떠서 자랑만 한다.)
정희원:와, 신기하다... 저한테도 써 주시면 안 돼요?
한영휘:..
다른 사람한테는 못 써.
(긁적)
정희원:(시무룩하다.)
한영휘:걷기 힘들면 메쳐줄까?
정희원:업어주세요.
한영휘:나참.
인계의 교복은 영 불편하게 생겼다니까.
(네 앞에 등 보이고 수그린다.)
업혀!
정희원:후후. (냉큼 업힌다.)
어느덧 해는 완전히 지고, 종종 날아오르는 반딧불이 빛만이 앞길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마저도 제법 어두워 올라가기 쉽지 않지만, 영휘는 재빠르게 나아갑니다.
한영휘가 희원을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정희원:(반딧불빛에 의지해 주위 풍경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구경한다.)
생면부지의 남을, 그것도 인간을 도와준다는 게 다른 요괴들의 반응으로 미루어볼 때 독특한 일이라는 건 짐작 가능합니다.
가파른 산지가 밟기 좋을 정도로 평평해질 무렵, 그는 멈춰 섭니다.
한영휘:..(머뭇거리다가 업힌 너를 돌아본다.)
혹시, 여기 알고 있어?
정희원:(골똘...)
그렇게 말하며,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고개를 비켜줍니다.
정희원:(살핀다. 아는 곳인가...)
교실 안에서 본 반딧불이를 기억하고 있나요? 단지 몇 마리에 불과했지만,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지금 당신의 앞에는 그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백, 수천 마리의 반딧불이가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호수를 둘러싼 풀과 나무들은 바람에 산들산들 몸을 흔들고, 새까만 도화지 위에 한 방울씩 떨어진 물감 방울처럼 반딧불이 빛은 번져나갑니다
어두운 밤하늘, 별처럼 푸른 빛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아름답습니다. 모든 것들이 조화롭고, 넋이 나갈 정도로 환상적인 풍경입니다.
한영휘는 무언가 기대하는 것처럼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분명 여기를 알고 있냐고 했죠, 하지만 이런 풍경은 책에서도 본 적 없습니다.
정희원:예쁘다...
그렇지만 처음 봐요.
한영휘:으음. 그렇구나.
정희원:
심리학
기준치: 40/20/8
굴림: 88
판정결과: 실패
찾는 사람 있어요?
기분이 급격히 가라앉은 것 같습니다.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요?
한영휘:뭐...
어떻게 알았어??
정희원:그런 얼굴을 하고 계시길래...
(붙들은 어깨 단단히 감싼다.) 찾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저 버리시면 안 돼요? 저는 아무 능력도 없고 운동신경도 없는 최약체 인간이니까요.
한영휘:아, 알았어.
그런다고 버리진 않아.
네가 최약체고 약해빠진 건 보기만 해도 아니까 걱정마.
정희원:네...
호수 앞에는 조각배가 놓여있습니다. 이 앞에는 길이 없으니, 아마 호수를 건너야 도착할 수 있는 거겠죠.
한영휘:이제 내려와. 이거 타고 가야해.
정희원:네. (조심조심 내려온다.)
한영휘:(조각배의 끝에 앉아 노를 잡는다.)
정희원:배를 타고 등교한다니~
인계... 저희 나라에서는 거의 없는 일이에요.
한영휘:흐흠. 그래?
멋지지?
정희원:네, 보통 강 위에는 다리가 놓여 있어서...
번거로울 것 같긴 하지만 낭만있네요.
한영휘:칭찬 맞지?
(긴가민가)
정희원:물론이죠.
호수의 잔잔한 수면을 헤치며 두 사람을 태운 조각배는 앞을 나아갑니다.
일그러졌다 수복하기를 반복하는 수면 위로 조각배와 두 사람의 그림자가 일렁입니다. 반딧불이는 주변을 배회하며 조각배가 길을 잃지 않도록 빛을 밝혀줍니다.
한영휘:여기는 전설이 있어.
반딧불이는 운명과 길조의 상징이라, 계절을 가리지 않고, 인연이 생기면 반딧불이가 함께한대.
정희원:와.
한영휘:여긴 원래 반딧불이가 많지만.
하핫.
정희원:그런 것 같더라고요.
전설이라든가, 상징이라든가 하고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인계에도 있어요. 그게 사실이라고 증명된 일은 보통 없지만요.
이곳에서는 전설이라 하면 보통 사실이라고 증명 된 건가요?
한영휘:넌 참 어린이 답지 않게 철저한 성격이구나.
정희원:인계에서 18살이면 어린이는 아니에요!
한영휘:나한테는 어린이지.
여기는 기묘한 일들이 많이 생겨나니까, 인계에 비하면 훨씬..
사실이라고 생각될 만큼, 부합하는 현상들이 일어나지.
하지만 이건, 이계라서 그런 걸 거야.
네가 인계로 돌아간다면 단순한 전설이 될지도 모르지.
정희원:그렇구나~
저, 인계에서 이곳으로 향하는 문을 열 때부터 반딧불이를 쭉 봐왔거든요.
길조라고 생각하니 낯선 곳이지만 마음이 놓이네요.
한영휘:되게 철저하다가 낭만도 인정하네.
참 특이한 녀석이라니까.
(노 열심히 젓는 중..)
정희원:여긴 기묘한 곳이니까요~
이야기가 끝날 무렵, 조각배는 호수의 끝에 도달합니다. 지면 한가득 활짝 핀 달맞이꽃이 시선을 끕니다. 새하얗게, 혹은 노랗게 핀 꽃밭은 간간이 바람에 일렁입니다.
영휘는 익숙하게 꽃을 피해 밭 너머의 오두막집으로 향합니다
문득 그는 당신이 있는 쪽으로 돌아봅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낯익은 방울 소리가 들려옵니다.
정희원: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3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분명 아까 호수에는 달도 별도 비치지 않았죠. 문득 든 생각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이곳에는 달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로지 새까맣기만 할 뿐
하늘을 보자 아득하게 밀려오는 영문 모를 공포심이 당신의 마음을 파고듭니다.
정희원:
SAN Roll
기준치: 58/29/11
굴림: 88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감소
한영휘:이리로 건너와!
정희원:(하늘 올려다보다가 다시 걷기 시작한다.)
할아버지, 달이 뭔지 아세요?
한영휘:인계에 있는 위성이라고 들었어.
정희원:여기엔 처음부터 없던 모양이군요.
으음... '이계' 라는 건 다른 행성인 건가?
어렵네요.
한영휘:그게 중요한 거야?
(어깨 으쓱인다.)
정희원:과학적으로 납득하고 싶어져요. 그래야 현실 인지가 될 것 같달까?
(졸졸 따라간다.)
감각 같은 건 생생하지만...
여전히 살짝 붕 뜬 느낌이에요~ 꿈을 꾸는 것처럼.
...(가던 걸음 멈칫하고) 아!
한영휘:꿈이라고 생각해도..
?
왜?
정희원:(주머니를 뒤적인다.) 아까 풍경 예뻤는데, 사진 찍어둘 걸 그랬어요.
(스마트폰 꺼낸다.)
한영휘:오옷.
이런 건 본 적 없어.
(가까이로 다가온다.)
정희원:(영휘 사진부터 찍는다. 플래시가 터진다.)
앗, 죄송해요.
자동 플래시가.,..
한영휘:으악.
(부신 눈을 비빈다.)
뭐야. 뭘 한 거야?
정희원:이 화면 보세요. 할아버지 사진을 찍었어요. (찍힌 화면 함께 본다.)
화면에는 아무것도 찍혀있지 않습니다.
이계의 것이라서일까요?
한영휘:그냥 검정인데?
정희원:어라...
안 되나? (셀카 찍는다.)
희원의 셀카가 제대로 찍힙니다.
정희원:와, 누끼 따진 것처럼 찍혔다.
아무튼 이 물건은요, 이렇게 화상의 한 순간을 담을 수도 있고, 멀리 있는 사람과 목소리나 서신을 주고 받을 수도 있고, 이것저것 할 수 있는 물건이에요.
그런데 이곳의 사진은 안 찍히네요~... 아쉽다.
한영휘:(누끼?)
풍경이 담긴다니 신기하네.
여긴 이계라서 훔쳐갈 수 없는 모양이지.
하핫.
정희원:후후, 따지자면 영혼이나 본질 같은 것까지 담기는 건 아니지만...
그렇네요, 이계라서 안 되나 봐요.
인계의 사진이라면 보여드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이따가 집에 들어가서 느긋하게 구경해요.
한영휘:모습만 담기는 건가~
예전에도 그런 게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좋아! 일단 얼른 집에 가자. 밤이 늦었어.
(타닥 뛰어간다.)
정희원:같이 가요!
(총총)
한영휘의 집
오두막의 내부는 조촐합니다. 나무로 지어진 집은 아주 오래된 전통 가옥 같기도 합니다.
내부에는 침실로 쓰이는 작은 방 하나와 숙식 해결이 가능한 주방 겸 거실이 전부입니다.
정희원:(이곳저곳 돌아다닌다.)
(욕실은 없는 건가...? 탐색한다.)
거실 벽면은 책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으며, 침실에는 두툼한 비단 이불과 베개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욕실은 없습니다.
한영휘:아 배고프다. 먹을 것 좀 가져올게.
정희원:네...
한영휘:(주방-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향한다.)
정희원:(두리번거리다가 거실로 돌아와서 책 본다.)
정희원: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2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희원이 읽을 수 있는 문자들입니다.
교과서나 소설, 철학서나 역사서들이 대부분이며,
정희원:(이계인데 신기하네.)
소설 중에는 익히 아는 책도 있습니다. 개중에서 희원은 <이계 탐험록>이라는 두툼한 책을 발견합니다.
이계 탐험록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요괴 5 철칙>, <영월호의 간단한 역사>, <신목의 규칙>, <어떤 기록>
정희원:(처음부터 읽어본다.)
:: (GM):<요괴 5 철칙> 핸드아웃 공개
정희원:흐음~
(책장을 넘긴다.)
:: (GM):<영월호의 역사> 핸드아웃 공개
정희원:여긴 무영국이구나~ (책장을 넘긴다.)
:: (GM):<신목의 규칙> 핸드아웃 공개
정희원: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3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계의 신목은 한 그루로, 100년에 딱 두 번 문을 연다>라는 문장에 수정된 흔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정희원:(빤히)
(수정 전의 흔적을 읽어볼 수 있을까?)
:: (GM):오래 전에 수정된 듯, 전의 흔적은 읽기 어렵습니다.
어떤 기록은 모국어 판정 성공 시 읽을 수 있습니다.
정희원:
언어(모국어)
기준치: 70/35/14
굴림: 80
판정결과: 실패
언어(모국어)
기준치: 70/35/14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이게 무슨 일이지..한국어인데 잘 안 읽히네요.
너무 이계의 문자에 익숙해져버린 걸까요?
모든 부분을 읽는다면, 책의 내용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낍니다.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알고 있는 듯한 내용이니까요.
정희원:(ㅇㅂㅇ...)
책을 다 읽을 무렵 영휘가 쟁반을 희원 앞에 내려놓습니다. 새하얀 사기그릇 위에는 잘 구워진 도마뱀이 예쁘게 담겨 있습니다.
한영휘:뭐해?
(잠자리 뜯어먹으며)
정희원:책을 읽고 있었어요.
...
다른 그릇 역시 풍뎅이, 개구리, 잠자리 등의, 먹기엔 조금 생소한 생물로 가득합니다.
정희원:(입맛 없어...)
한영휘:오늘 아무것도 못 먹었지?
얼른 먹어.
정희원:아뇨, 아까 점심 먹었어요.
인계에서요.
한영휘:아. 그럼 저녁으로 먹어.
정희원:아, 괜찮아요.
한영휘:인간도 삼시세끼는 먹잖아.
정희원:저는 두끼밖에 안 먹어서요.
한영휘:체력은 보충해야지.
정희원:정말 괜찮아요.
한영휘:아니 왜 밥을 안 먹어?
아까는 먹는다며!
정희원:...
아까 밭이 있던데요.
거기서는 뭘 재배하세요?
한영휘:음~향신료 같은 거?
..너 설마 도마뱀이 싫은 거야?
정희원:쌀은 재배하지 않아요?
한영휘:응.
그런 건 없어.
정희원:저는 쌀이 주식이에요.
...도마뱀은, 아무래도...
잘 먹지 않죠.
개구리도요.
풍뎅이랑 잠자리도요.
한영휘:음...
선생님은 이게 제일 먹을만 하다고 했는데.
인간이라고 다 같지는 않구나.
정희원:선생님도 인간이에요?
한영휘:응.
정희원:그렇구나!
몰랐어요.
이 책을 쓰신 분이에요? (이계탐험록 보여준다.)
한영휘:맞아. 지금은 안 계시지만, 이것저것 많이 알려주고 가셨지.
덕분에 많이 배웠어.
정희원:아... 그렇다면 만나 뵐 수는 없겠군요.
하긴, 다른 나라거나 옛날이라면 도마뱀이나 개구리를 구워 먹긴 했겠지만...
요즘은 안 그래요.
한영휘:아무래도 이제 죽었겠지. 인간의 수명은 짧으니까.
흠..인간들은 빨리 바뀌는구나.
아무튼, 네가 지금 살아있을 수 있는 것도 선생님이 세운 요괴 5철칙 덕이야.
굉장한 분이었지.
정희원:수명이 짧아서 발전이 빠른 것일지도요?
음...그렇구나. 덕분에 살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니 감사하네요.
한영휘:그럴 수도. 우리는 딱히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은 없어서.
This message has been hidden.
한영휘:아무튼 밥은 내일 다른 걸 찾아다줄게.
(아 이거 진짜 맛있는데..라는 눈으로 도마뱀 먹방한다.)
정희원:(멋쩍게 웃는다.)
(앉아서 먹방이나 구경하다가...)
할아버지는 강아지예요?
한영휘:이게 무슨 소리야?
난 요괴야.
정희원:강아지 요괴 아닌가요? (손 뻗어 귀 만진다.)
한영휘:그런 건 중요하지 않지만. 늑대를 닮았다는 소리를 좀 들었지.
정희원:저를 잡아먹으려던 늑대 요괴와는 다르게 생기셨는데요.
귀는 따뜻합니다
정희원:부드럽다. (만지작만지작)
한영휘:왜 남의 귀를 만지는 거야?
(황당한 눈으로 바라본다.)
정희원:만져보고 싶게 생겨서요.
저도 강아지 키우거든요.
(쓰담쓰담)
한영휘:그러니까 강아지가 아니래도?
음. 거긴 좀 시원하네.
아무튼 밤이 늦었어.
침대를 빌려줄게. 넌 허약해서 바닥에 누이면 죽을 것 같거든.
정희원:감사해요.
...그런데...
한영휘:응?
정희원:저, 씻고 싶은데요.
한영휘:아. 호수에서 씻어
정희원:정말요...?
한영휘:응.
문제라도 있어?
정희원:아뇨, 살면서 그런 곳에서는 전혀 씻어본 적이 없어서요...
비누는 있어요?
한영휘: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정희원:없구나...
한영휘:뽀득뽀득 잘 씻으면 돼.
정희원:호수 물은 차갑겠죠...
한영휘:호수 물은 다 차갑지.
너 대체 어떤 세상에서 자라온 거야?
정희원:슬프네요.
인계에서는요,
한영휘:응.
정희원:잘 정수 처리된 물이 수도관을 따라 집마다 연결되어 있어요.
그리고 집마다 보일러라는 것도 있는데요,
음... 온돌 같은 거?
전기를 써서 집안을 뎁히는 장치에요.
수도관을 타고 온 깨끗한 물이랑, 보일러를 이용해서 따뜻한 물이 나와요.
그 물을 '샤워기'라고 하는, 물줄기를 고르게 뿜는 도구를 이용해서 따뜻하고 꼼꼼하게 씻을 수 있어요.
정희원:그리고 씻는 얘기는 아니지만 집마다 '가스'라는 것도 있는데요,
아...이건 설명하자면 좀 길어질지도. 어쨌든 집에서 간편하게 불을 피울 수 있는 장치에요.
한영휘:(어질어질)
어렵다..
굉장히 빠르게 발전했구나. 인계는..
정희원:할아버지네 선생님의 인계는 어떤 느낌이었는데요?
한영휘:샤워기니 수도관이니 이런 말은 안하셨다고!
우물에서 물 퍼다 쓴다는 소리는 하셨어.
정희원:으음, 그렇구나.
어림잡아 최소 백 년 정도는 차이 나겠네요.
아, 신목이 백 년마다 문을 연다고 했었죠?
이계와 인계의 시간은 함께 흐르는 걸까요?
한영휘:음...내가 가 본 적은 없어서 잘 몰라.
선생님이 없어지고 나서는, 그런 곳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었고.
정희원:선생님께서는 언제 오셨다가 언제 사라지셨는데요?
한영휘:...
너무 오래 전이라..정확하게는 기억 안 나.
(머쓱하게 뒷목 긁적인다.)
정희원:으음.
할아버지, 인간을 찾으려면 햇수 정도는 제대로 세어두는 편이 낫지 않겠어요?
인계는 금세 변하니까, 그런 지표가 없으면 알아가기 점점 더 어려워질 걸요.
아무튼, 이제...
...
씻고 올게요. (막막한 표정)
한영휘:......이미 오래된 일 인걸.
그냥..네가 선생님이랑 좀 닮아서, 물어봤을 뿐이야.
잘 씻고 와.
안 맞겠지만 갈아입을 옷이라도 줄까?
정희원:아, 네. 부탁해요. 옷도 빨아야겠다.
한영휘:(제일 작은 옷 가져온다.)
정희원:(받는다.) 다녀올게요!
(호수로 총총총)
한영휘:응. 너 다음에 씻게 오면 불러!
(바닥에 드러눕는다.)
정희원:(탁 트여있으니 뭔가 좀 민망하네...)
(세탁할 옷들과 함께 주섬주섬 호수로 들어가 씻는다.)
추웟.
달맞이꽃이 고개를 숙입니다.
정희원:온천...
아, 차라리 집에 오기 전에 온천에 데려다 달라고 할 걸.
(찰박찰박 씻고 나온다.) 이거면 된 건가...? 현대의 생활습관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물로만 씻는 건 영 신용이 안 가네.
(빨래한 옷의 물기 쭈욱 짜내고 킁킁 냄새 맡아본다.)
확실히 악취는 안 나는 것 같지만...
돌아가면 샴푸와 린스와 바디워시와 섬유유연제에 대해서 알려줘야지.
정희원:(챙겨준 옷 입고 돌아간다.)
할아버지! 다 씻었어요.
추워요.
한영휘:다 씻었어?(일어나서 걸어온다.)
그럼 나도 씻을게. 저~기 바닥에 누워 있어.
온돌이라 따뜻해.
정희원:네!
옷은 어디서 말려요?
한영휘:저기 앞마당에..
그냥 줘! 내가 걸고 올게.
정희원:네. (옷 죄다 건넨다.)
스타킹은 잘 찢어지는 소재니까 손톱이나 나뭇가지 걸리지 않게 조심해야 해요.
한영휘:이걸 또 신을 수 있다고..?
(얇은 양말 의심스럽게 한 번 보고는 총총 걸어나간다.)
근데 원래 나무에 걸어서 말려.
좀 깨끗한 나무 찾아볼게.
정희원:조심히 걸어줘요! (웃으며 보다가 온돌바닥 위로 냉큼 가서 엎드린다.)
뜨뜻~합니다.
정희원:(덜 마른 머리도 바닥 위에 잘 펼쳐서 말린다.)
시험까지 일주일 남았는데...
그 전까지는 돌아갈 수 있으려나?
이계와 인계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 걸까요.
제법 쌀쌀한 가을바람이 작은 오두막 안에 감돕니다. 따뜻한 바닥에 누워있자니 피로한 몸이 잠을 청합니다.
이크, 얼른 침대에 눕지 않으면 여기서 잠들어버리겠어요.
정희원:아직 공부할 것도 남았는데...
(오늘은 피곤하다. 하품 한 번 하고는 침대에 눕는다.)
(이불 두껍게 덮고 잠 든다.)
이계에서 보내는 첫날 밤이 깊어져 갑니다.
그리고 어떤 꿈을 꿉니다.
반딧불이가 가득한 곳에서 당신은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거닐고 있습니다.
그는 당신의 목에 방울이 달린 목걸이를 걸어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인연을 소중히 하라고,
당신이 낯선 곳에서 길을 잃는다면, 무조건 반딧불이 빛을 따라가라.
그 빛을 따라간다면..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방울 소리와 함께 당신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정희원:(눈 뜸)
영휘는 좁은 오두막 안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습니다.
정희원: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52
판정결과: 보통 성공
9개 정도일까요? 어제는 정신없어서 눈치채지 못했는데, 영휘의 오른쪽 발목에는 방울이 잔뜩 달린 발찌가 있습니다.
정희원:(이불 감싸고 침대에서 내려온다.)
한영휘:얼른 일어나! 축제가 시작될 시간이야.
정희원:추워요...
(온돌 위로 간다.)
한영휘:얼른 일어나.
(이불 잡아당겨)
정희원:앗, 내 이불.
(맨몸으로 온돌 위에 눕는다.)
한영휘:감기라도 걸린 거야?
정희원:제가 추위에 약해서요...
따뜻하다~
저희 집에서는 바닥에 누울 일은 잘 없는데 말이에요.
한영휘:그럼 좀 겉옷을 더 줄게.
(바리바리 가져온다.)
바닥이 제일 따뜻한 데 왜 안 누워?
정희원:음...
우선 집에는 인원수대로 침대가 있기도 하고...
휴식이 필요하면 소파라고 하는 푹신푹신한 의자를 사용해요.
(바닥에 누워있다가 발목 본다.)
한영휘:으음.소파라..
(네 시선 흘끗 바라본다.)
아, 이거?
(발목 짤랑인다.)
정희원:안 불편해요?
한영휘:계속 지니고 있던 거라. 불편하진 않아.
정희원:하나가 빠졌네요.
한영휘:그걸 어떻게 알아?
정희원:음... 그런 것 같아 보여서요. (미소짓는다.)
(주섬주섬 일어나 옷 받는다.)
한영휘:(볼 긁적인다.)
너 너무 날 자세히 보지마.
이상하게 날카롭다니까.
(조금 서늘할 정도.)
정희원:네~
(옷 껴입고) 그러고 보니 하고 싶은 게 있는데, 한 번 해봐도 돼요?
한영휘:뭔데?
알려줘.
정희원:앉아!
한영휘:?
뭐해?(;;)
정희원:안 되네요.
한영휘:지금 나 개 취급한 거야?
아니라고 했지???
정희원:헉, 어떻게 알았지.
한영휘:(부들부들)
정희원:(쓰담쓰담)
한영휘:6
(손가락 두어번 돌려, 네게 고양이 귀꼬리 달아버린다.)
정희원:응?
핫.. (제 귀 만져본다.)
한영휘:하핫.
고양이가 됐네.
정희원:이러면 저도 요괴인가요?
한영휘:그래. 어차피 축제에 가려면 변장해야해.
고양이 요괴씨.
정희원:음... 그런 걸로 해요. (타격은 없다.)
한영휘:..
정희원:반응이 왜 그래요?
한영휘:아냐..그냥..
정희원:개 요괴 씨.
한영휘:..
'난..개 요괴였던걸까?'
(때 아닌 자아성찰을 하며 나갈 채비를 했다.)
정희원:(꼬리 꼿꼿이 세우고 기분 좋게 먼저 밖으로 나선다.)
화창하게 밝은 하늘에는 구름은커녕 태양도 보이지 않고, 달맞이꽃은 활짝 핀 꽃잎을 움츠릴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밤이 아니므로 반딧불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둘은 어제와 다른 길로 마을에 내려갑니다.
정희원:태양이 없는데 이렇게나 밝네요.
신기하다.
한영휘:여긴 태양 따위 필요 없거든!
스스로 빛나니까!
정희원:에~
...어떻게요?
한영휘:..몰라?
빛나면 빛나는 거지.
정희원:'스스로'가 뭔지 잘 모르겠네요.
한영휘:(갸웃)
그냥 태양 없이도 혼자 잘 빛난다는 소리지.
낮이면 밝고!
밤이면 어둡고!
정희원:공기는 광원이 아닌데 어떻게 빛나요?
한영휘:광원이 뭔데?
정희원:음...
과학 조금이나마 배운다는 거, 거짓말이죠!
한영휘:(긁적 긁적)
진짜야.
지구가 달의 위성이라는 것도 알잖아!
아니, 달이 지구의 위성?
뭐였더라.
정희원:선생님이 실망하시겠어요!
한영휘:흥.
없는데 무슨 상관이야~
반대편 방향의 길을 따라 정신없이 내려가다 보면, 어제 이계에서 처음 정신을 차렸을 때 희미하게 들었던 북소리, 웅성거리는 소리,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정희원:나쁜 학생이네요~
아, 이 소리, 축제 소리였구나.
어제도 들었는데.
한영휘:응. 축제 준비하던 소리였을걸.
꽤 공들였거든.
자. 손 줘 봐.
정희원:네. (손 내민다.)
한영휘:(붉은 실을 한 가닥 꺼내 손목에 묶어준다.)
정희원:이게 뭐예요?
한영휘:미아 방지책.
(반대편 실의 끝은 제 손목에 묶고 매듭짓는다.)
정희원:이런 것 안 해도 괜찮은데요.
한영휘:결속의 끈이라는 거야.
단순해 보이지만 거의 끊어지지 않고, 거리가 멀어질 때 끈의 길이도 늘어나.
어린이 데리고 나갈 땐 필수야!
정희원:와~ 편리해라.
여전히 어린이 취급 받는 건 좀 자존심 상하지만, 할아버지라고 생각하면 헤아리지 못하는 것도 아니니까...
좋아요.
한영휘:아무래도 너는 몇 백살 연하니까.
정희원:사실 지금까지 인계에 대해 말했던 모든 게 거짓말이라면 어쩌실래요?
한영휘:선생님은 거짓말 하실 리 없으니까 안 믿어.
정희원:사실 이젠 과학기술이 발전해서 인간도 천 년 까지는 살아요!
한영휘:으음?
정희원:저는 18살의 신체 조건을 유지한 채 600년쯤 살아왔고요.
그러니까 실은 몇 살 차이 안 나요.
한영휘:그랬으면 진작에 말했겠지.
이제 와서? 늦었거든~
정희원:저에 대해서 모르는 것 투성이시면서, 장담할 수 있어요?
한영휘:...흠..
흠...그랬으면 처음부터 할아버지라고 안 했겠지!
모순되니까!
정희원:놀리는 게 재밌으니까 그렇게 부른 거라면요?
한영휘:음..
성격 나쁘네! 계속 어린이 취급해줄테다!
정희원:너무해~
손님과 점원의 모습은 각양각색입니다. 인간과 무척 흡사한 점원도, 동물의 모습을 가진 손님도 개의치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축제의 본격적인 시작이 저녁이기 때문인지, 아직은 한산한 편입니다.
:: (GM):노점상, 사격장, 식당가, 점집, 간이 낚시터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정희원:(식당가로 종종종)
한영휘:너 배고팠구나..
정희원:...
후훗.
식당가
식당가에서는 많이 먹기 대회가 한창입니다. 그 메뉴는 메뚜기 튀김입니다.
한영휘:메뚜기는 먹을 수 있어?
정희원:아뇨...
한영휘:흐음..
그럼 이 쪽으로 와.
정희원:네. (따라간다.)
식당가 한 편에는 먹음직스러운 국수를 팔고 있습니다. 색색의 고명이 올라와 있고, 육수로 국물을 냈는지 고소한 향이 후각을 자극합니다.
한영휘:국수는 완전 인계 음식이지.
이건 어때?
정희원:와...!
맞아요. 정말 반갑네요.
한영휘:하핫.
자리 잡고 있어. 주문해올게.
정희원:네. (자리 찾아 앉으러 간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은 축제가 끝날 때 이곳에 왔다면, 쭉 이계에서 살아가야 했을 테니 저런 괴식에 어쩔 수 없이 입을 댔어야 했던 거겠구나.')
공간은 협소한 편이지만, 많은 사람이 많이 먹기 대회에 시선이 쏠려 있어 드문드문 빈 자리가 보입니다. 마침 둘이 앉기에 적당한 좌석이 있네요.
정희원:(앉아서 기다린다.)
빈자리에 앉는다면, 문득 누군가가 당신의 어깨를 톡톡 두드립니다.
??: 선생님?
정희원:응?
고양이 수염을 가진 요괴 하나가 수염을 움찔거리며 희원을 보고 있습니다. 반가움, 희한함, 놀라움, 충격……. 다양한 감정이 교차하는 듯, 동그란 눈이 점점 더 커집니다
??: 선생님이 아니신가요?
정희원:음... (멋쩍게 웃는다.) 그렇게나 닮았어요?
??: 앗.. 죄송합니다. 은사님과 닮아서 착각했어요.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닮으셨거든요!
타타: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타타. 영월호 졸업생이에요.
실례를 했네요.
정희원:후후, 괜찮아요. 반가워요. 저는 정희원이에요.
타타: 반가워요 희원 씨. 인간이시죠?
정희원:엇, 맞아요. 이런 걸로는 가려지지 않는 건가요? (고양이 귀 팔랑인다.)
타타: 분장은 티가 나니까요. 보호해주는 분이 계시나 봐요. 뭐..자세히 안 보면 모를 거예요.
정희원:그렇구나~
네, 저 여기 오자마자 잡아먹힐 뻔한 거 있죠.
그때 절 구해준 후로 쭉 도와주고 계신 강아지 요괴 분이 계시거든요.
타타: 음. 인간에게 호의적이고, 이 정도의 요술을 부릴 줄 아는 녀석이라.. 혹시 이름이 뭔가요?
정희원:한영휘 씨요. 아는 분인가 봐요?
타타: 아! 역시 그 녀석이었군요. 알죠! 영월호 동문이니까요! 그 녀석, 몇백 년째 졸업 시험도 거르고……. 걱정되던 참이었어요.
정희원:동문이셨구나...
왜 계속 거르고 계신 걸까요?
보통은 어서 졸업하고 싶어 할 텐데.
타타: 모르셨나요? 영휘는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요. 기왕이면 학교에서 기다리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정희원:네? 설마했지만 정말 그 이유 때문이에요? 선생님을 기다린다고 학교를 졸업하지 않는 건 비효율적인데...
타타: 뭐, 한영휘만큼 선생님을 잘 따르던 학생도 없었으니까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리셨고.
여기는 졸업을 미룬다고 해서 억지로 시킨다던가, 하는 일도 없으니까요.
정희원:그렇지만요. 더 배울 것도 없을 텐데...
선생님께서 사라진 지 얼마나 됐는지는 아세요?
타타: 몇백 년은 된 일이에요. 한참 전 일이죠.
정희원:으음~ 그렇구나.
타타: 무척 좋은 분이셨어요. 인간이셨는데 놀랄 만큼 저희를 잘 이해해주셨는걸요.
정희원:으음...
어쩌다 사라지셨을까, 제게 지금 가장 궁금한 건 그거네요.
그나저나 영휘 씨 말고도 우호적인 요괴 분이 계셔서 다행이에요.
타타: 그건 저희도 궁금하네요. 아마 선생님을 직접 본 요괴들은 다 인간에게 우호적일 거예요.
영휘가 국수 그릇이 담긴 쟁반을 들고 희원 방향으로 오자, 타타는 재빠르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도망갑니다.
정희원:그럼... 앗.
가버렸다.
한영휘:...(타타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본다.)
정희원:인사도 안 하고 가버리셨네요.
한영휘:(네 앞에 따뜻한 국수를 내려놓았다.)
쟤가 왜 너한테 말을 걸지..
정희원:왜요?
사이 안 좋아요?
동문이라고 들었는데.
한영휘:동문들이랑 대화 안 한 지 꽤 됐어. 다들 짜증나게 굴어서.
정희원:에~
왜요? 어서 졸업하라고 재촉해요?
(국수 그릇에 손 얹는다.)
따끈따끈..
한영휘:처음에는 졸업이 늦어지니까 놀리는 정도였는데, 심해졌거든
아예 무시하는 녀석들도 있었고……. 나는 신경 안 쓰지만.
정희원:걱정하는 것일 거예요.
어쨌든... 잘 먹겠습니다.
(국수 먹는다.)
한영휘:요괴들은 그렇게 인정이 많지 않아.
그런 녀석들이..조금은 있겠지만.
나는 계속 여기 있을 거란 말이지.
(국수 냠)
정희원:학생으로 남아있지 말고, 할아버지도 선생님이 되면 되는 것 아니에요?
사실 학교를 졸업한 요괴들이 뭘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졸업한 이후에,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하긴 할 것 아니에요.
한영휘:그렇게 하면, 선생님의 학생으로 있을 수가 없잖아.
(후루룩 맛있게 먹는다.)
정희원:...
무거워...
(알 만 하다는 시선으로 보다가 국수 마저 먹는다.)
한영휘:?뭐가 무거워?
(멍청한 얼굴로 쳐다본다.)
정희원:아니에요.
한영휘:응.
(멍텅한 시선으로 국수 마저 먹는다.)
정희원:맛있다...
(조금 남긴다.)
한영휘:그래?
다행..인데
너 진짜로 두 끼만 먹어?
정희원:? 네.
물론 점심 저녁 이렇게 두 끼라서,
이건 어제 못 먹은 분량을 먹은 거예요.
한영휘:(깜짝 놀란 표정으로 본다.) 몰랐어.
그런 사람도 있다는 걸..
정희원:진짜 몰랐다는 듯한 표정이라,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네, 그런 사람도 있어요.
한영휘:그렇구나~
(싹싹 비우고, 네가 남긴 것까지 먹는다.)
정희원:다 잘 드시네요.
메뚜기 튀김 많이 먹기 대회에 나가 보시는 건 어때요?
한영휘:우승하겠지. 분명.
정희원:우승해서 상품 타 와 주세요.
한영휘:상품 별 거 없을 걸?
정희원:뭔지 아세요?
한영휘:여기 식당 공짜로 1년간 오기. 이런 거
정희원:여기에도 화폐의 개념이 있어요?
한영휘:없지. 그러니까 별 거 아니라는 거야.
끽해야 너무 많이 먹으면 재료 가져다주는 정도인 걸.
그렇게 말하고 있으면 부상으로 '요술 가면'을 지급한다는 말을 합니다.
정희원:아하~
원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요술 가면!
정희원:요술 가면을 준대요.
한영휘:변해보고 싶은 사람 있어?
난 보고 싶은 사람만 있는데.
정희원:음...
(작게 웃는다.) 딱히 없을 것 같네요.
그럼 그만 노점 구경하러 가요!
한영휘:음..
아니다. 타올게!
조금만 기다려봐. 하고 싶은 게 생겼어.
정희원:네? 그래요.
갑작스러운 마음의 변화로 달려간 메뚜기 튀김 많이 먹기 대회...
가공할 만큼의 속도로 메뚜기들이 사라져갑니다.
정희원:(우와...)
만약 소돔과 고모라에 그가 있었다면 메뚜기로 인한 재앙은 피할 수 있었겠죠.
마지막 빈 그릇을 치켜 올리고 요술 가면을 씁니다.
한영휘:자. 갈까.
정희원:으왓!
한영휘:푸하하핫!
정희원:기분 나빠요!
한영휘:메롱.
정희원:700살인데 철 없어...!
한영휘:뭐어~?!
할아버지한테 그게 할 소리야?
정희원:흥~ 지금은 영락없는 18세 소녀이신데요?
이러면 다른 요괴들 눈에는 어떤 그림으로 보이려나? 웃기긴 하네요.
한영휘:쌍둥이인 줄 알겠지 뭐.
내가 아는 것만 몇 명 있어!
자, 노점상으로 가자~
정희원:가요! (종종종)
노점상
늘어선 가판대 위에는 군것질거리부터 장난감까지 다양한 물건들을 팔고 있습니다.
영휘는 어떤 가게 앞에서 멈춰섭니다
요괴나 인간 얼굴 모양을 본뜬 가면, 요요, 부채, 비녀, 가락지 등이 눈에 들어옵니다. 온통 아름답고 진귀해 보이는 것들이지만, 인계의 돈은 당연히 쓸 수 없겠죠.
정희원:(따라 멈춰서 구경한다.)
까마귀 머리를 가진 점원이 희원에게 말합니다.
"이봐, 도토리가 없다면 목에 걸린 그걸로 교환해줄 수도 있어.“
뾰족한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당신의 목에 걸린 방울 목걸이입니다.
정희원:네? 괜찮아요. (앞 여민다.)
목걸이 끝에 달린 방울에 신경이 쏠립니다
희원은 어렸을 때부터 목걸이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저 물려받은 것일 뿐입니다.
이어져왔다는 것을 제외하면, 흔하디흔한 방울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한영휘:...
일단 간식이라도 먹을래?
정희원:(이걸론 안 바꿔먹을 거야)
간식? 저는 별로 생각 없는데...
아직 들어갈 배가 남았어요?
한영휘:아까는 밥이었고.
정희원:에?
한영휘:에?
안 먹을 거면 내 것만 사올게.
정희원:(희한하다는 얼굴로 본다.)
그래요.
한영휘:(희원의 머리만한 회오리 도롱뇽을 사온다.)
(냠냠)
정희원:으에엑
한영휘:왜 그래?
정희원:도롱뇽이 불쌍해요.
한영휘:하지만 요괴는 육식을 할 수 밖에 없어.
(아그작아그작)
정희원:저도 육식을 하긴 하지만요.
그나저나 요괴는 위장이 넓은가 보네요.
한영휘:응? 아냐.
선생님은 비슷한 것 같다고 하셨어. 인간이나 요괴나.
정희원:음...
인계에서 생물학을 배우면요,
'해부' 라는 걸 하는데요.
생물의 배를 갈라서 내부의 구조를 직접 확인하는 과정이에요,.
한영휘:으아악.
그..그게 왜?
정희원:아뇨, 그냥, 문득...
궁금해져서요.
한영휘:...
정희원:하겠다는 건 아니고요.
한영휘:날 해부할 순 없을 거야!
(방어하는 자세함)
정희원:(푸핫 웃는다.)
제 모습으로 그런 자세 하지 마요!
한영휘:아~ 잘 즐겼다.
( 요술 가면 허리춤에 찬다.)
정희원:웃겼어요.
한영휘:재밌었어.
자. 이건 선물!
포장된 간식이면 괜찮지?
(천으로 밀봉된 무언가를 내민다..)
정희원:아, 감사해요. (받는다.)
무슨 간식이에요?
한영휘:약과야.
정희원:아! 약과, 인계에서도 최근까지 꽤나 팔리는 과자죠.
입 심심해지면 먹을게요..
한영휘:어.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셨으니까, 인간들이라면 좋아할 거라구.
정희원:그치만 선생님은 도마뱀도 드셨다면서요?
한영휘:음..
그런가?
그래도, 제일 좋아하진 않았어.
정희원: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음식들 중 가장 낫다는 정도였군요.
한영휘:어쩔 수 없이..?!
그럴 리가.. 항상 웃으면서 드셔주셨는데..
정희원:음, 옛날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건 아니었으려나...
아무튼 알겠어요. 맞는 말씀이에요. 단 걸 싫어하지 않는 이상 인간이라면 잘 먹는 간식이에요.
한영휘:응. 다행이다.
이것도 가질래? 기념으로다.
(요술 가면 내밈)
정희원:네, 좋아요.
(받는다.)
이거 인계에 가져가고 싶네요.
한영휘:하하. 인계에서도 효과가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가져가준다면 좋겠어!
나름 선물이니까.
정희원:효과가 있으면 좋겠다.
감사해요.
한영휘:(씩 웃는다.)
정희원:선물... 이렇게 미리 받아버리긴 했지만, 아직 즐길 건 한참 남았죠?
한영휘:그럼. 사격이랑 낚시 할 줄 알아?
정희원:음...
어떻게 하는지 정도는 아는데, 여러 번 해 본 건 아니라서요...
한영휘:그럼 한 군데만 들러볼까? 내가 도와줄게.
정희원:네! 사격이라면 그나마 오락실에 가본 적이 있으니까 할만 할 것 같아요.
한영휘:좋았어.
정희원:(가면 허리춤에 묶는다.)
한영휘:가보자~!!
(달음박질)
정희원:천천히 가세요! (종종 따라간다.)
사격장
시선을 끄는 곳은, 다양한 경품들이 진열된 사격장입니다.
낯선 것들뿐인 이계에서 익숙한 것을 발견하자 꽤 반가울지도 모릅니다.
이런 사격장은 인간계의 놀이공원에서도 자주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사격장에 놓인 것은 총이 아닌, 활입니다.
사격장 주인이 싱글벙글 웃으며 두 사람을 맞이합니다.
"어서 옵쇼! 두 분 맞으십니까!! 화살은 인당 5개고, 활은 신장에 맞는 거로 잡으십시오!!"
한영휘:(활 어렵잖게 잡아든다.)
정희원:앗, 활쏘기는 해본 적 없는데...
한영휘:앗.
오락실에서 해봤다며?
정희원:(우선 활 잡는다.) 오락실에서는 총을 써요.
아, 여기 총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한영휘:(눈 꿈뻑)
총?
활이랑은 많이 달라?
정희원:네. (손으로 총 모양 만든다.) 이런 도구인데... 이 안의 화약 같은 게 순간 폭발하면서 금속으로 된 탄을 고속으로 발사하는 원리예요.
방아쇠라는 걸 당기기만 하면 탄이 나가서, 조준만 잘 하면 크게 문제 없는데...
활은 여러모로 신경써야 할 게 많지 않아요?
한영휘:우와. 듣기만 해서는 살상력이 무지막지 할 것 같은데.. 그거 오락으로 써도 되는 거야?
정희원:네, 오락실에서는 몸에 박히지 않는 소재로 탄을 만들거든요.
'플라스틱' 같은 거요.
한영휘:아! 쓰레기통!
(아는 것 나오자 방긋 웃는다.)
그렇구나~.뭐, 누르기만 하면 나오는 건 아니지만.. 활도 생각보다 간단해.
네가 들 수 쉬울 것 같은 활 골라봐.
정희원:으음...
(팔 하나 길이 정도 되는 걸로 고른다.)
한영휘:자, 이렇게 활을 들고..
(화살 가져다가 위치 골라준다.) 여기에 맞춰서 팽팽하게 당겨. 각도를 유지해야 해.
정희원:벌써 어렵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집중해서 고분고분 따라한다.)
한영휘:양발은 어깨 폭 정도로 벌리고,
화살이 조준 위치에 향하도록.
너무 오래 당기고 있으면 안 되니까. 한 번 배웠던 대로 다시 자세 잡고 쏴 봐.
정희원:으음... 네. 해볼게요. (내려놓은 다음 다시 자세 잡고 들어올린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동아민족이라는 말도 있었으니까,
막상 쏴보면 크게 어려울 것 없을지도요?
(쭈욱 당겨 조준한다.)
(쏜다!)
한영휘:동..동아?그게 뭐야?
정희원:
기준치: 70/35/14
굴림: 4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 동이민족이요. 동쪽의 활 잘 쏘는 민족이라는 뜻이에요.
멋지게 과녁 정중앙에 화살을 명중시켰습니다.
개 인형을 보상으로 받았습니다.
한영휘:와. 한 번에 성공하다니 제법인데?
정희원:헉, 정말 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나 봐요.
한영휘:그럼 나도 한 번.
정희원:(인형 가만 보다가 쏘는 것 구경한다.) 어디 볼까요?
화살을 각 5번 쏠 수 있고, 정신력/근력 판정이 필요합니다.
한영휘:(큰 활을 잡고 화살을 당긴다.)
근력
기준치: 70/35/14
굴림: 6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고양이 인형 받아온다.)
흠.
정희원:와.
한영휘:이 정도야 뭐.
정희원:저 한 번 더 해볼래요.
한영휘:좋아!
정희원:(다시 자세를 잡고 조준한다.)
근력
기준치: 55/27/11
굴림: 2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정신
기준치: 60/30/12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지네 인형 줘요)
한영휘:(나한테)
(?)
정희원:(응)
한영휘:으아아아아악
정희원:?
한영휘:아니 왜 이런 인형이 있어?
나 지네 싫어한단 말야!!
정희원:귀여운데요?
한영휘:무섭잖아!
정희원:헉, 할아버지도 무서워하는 게 있구나.
한영휘:...
너, 너도 무서워하는 게 하나는 있을 거 아냐!
정희원:쪼~끔 실망이네요.
한영휘:지네는 너무 다리도 많고 징그럽다구.
무섭다구.
정희원:그치만 이건 인형인데요.
(지네 인형 주워 어깨에 걸친다.)
이 개 인형은 할아버지 닮았어요.
한영휘:(덜덜)
그거 안 들고 가면 안 돼?
나..개 요괴였던가..(중얼)
정희원:후후후.
왜요~ 기껏 받은 경품인데도요?
한영휘:너무 크고 무섭잖아!
넌 무서워하는 게 뭐야?
정희원:글쎄요?
지금 당장 걱정되는 걸 말하자면 앞두고 있는 시험을 못 보게 되는 정도일까요~ (목에 둘둘 두르고 나간다.)
한영휘:시험이 있어?음..
최대한 빨리 갈 수 있게 해줄게. 걱정마.
(떨어져서 걷는다.)
정희원:그러고 보니, 축제는 보통 며칠 해요?
한영휘:축제가 전야, 축제날, 축제 후야로 이루어지는데.
축제날은 하루일 때도 있고 3일일 때도 있어.
준비해놓은 것들이 떨어지면 끝나거든.
정희원:최대 5일이면...문제 없겠네요!
공부할 시간은 깎여나가긴 했지만요.
전 천재니까 괜찮아요.
한영휘:그래도 인계 대비 시간을 가늠할 수 없으니까..
..최대한 빨리 돌려 보내 줄게.
정희원:그러고보니 그것도 그렇네요.
일찍 보내주시면 감사하죠~
한영휘:..응!
그가 말을 이으려던 참이었습니다.
맞은 편에서 붉은 털을 가진 자그마한 영월호 학생이 둘과 조우합니다.
미호: 와, 와악! 깜짝아! 네 녀석…… 인간이 어떻게 여기에……!!!!!
일전에 만났던 여우요괴네요.
한영휘:조용히 안 해?
정희원:안녕하세요?
미호: 안녕은 무슨 안녕이야? 두고 봐라! 언젠가는 콱 잡, 잡아먹어 버리겠다!
정희원:음...
(영휘에게 소근소근) 왜 저를 적대하는 걸까요?
한영휘:...글쎄?
근데 쟤는 원래 성격이 좀 그랬어.
뭐..인간을 오랫동안 볼 일이 없기도 했고. 낯선 거 아닐까?
정희원:으음~
표현이 서툰 어린아이라고 받아들이면 되는 걸까요?
미호: ……그나저나 제법 잘 놀고 있는 것 같네. 인계에도 이런 축제가 있나?
한영휘:(끄덕.끄덕.)
정희원:(그럼 싱긋 웃는다.)
비슷한 축제는 많죠~
인계에 관심 있으세요?
미호: 흥, 인간들이 득실득실한 곳 따위! 궁금하지도 않아!
정희원:궁금해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미호: 궁금하지 않다니까! 흥. 난 이제부터 인간이 못 갈 장소에 갈 건데, 그까짓 게 궁금하겠어?
정희원:흐음, 아쉽네요. 궁금한 게 있으시다면 무엇이든 가르쳐 드리려 했는데...
전 인계에서 넘어온 특별한 인간인데, 그럼에도 더 못 가는 장소가 있다는 것도 내키지 않구요.
미호: 어차피 못 가는 곳인데 뭐!
난 지금부터 신당에 갈 거다! 인간이 우리 신을 볼 수는 없겠지. 우하하.
정희원:궁금하다~
할아버지, 저도 데려다 주시면 안 돼요?
한영휘:...
미호: 푸하핫! 인간에게 할배 소리나 듣고 다니는 거냐?
한영휘:조용히 해. 흠..일단 이 녀석 좀 보내고 올게!
(미호 뒷덜미 잡아서 버리러 가는 중)
미호: (왁왁거리는 중) 인간, 넌 이런 것도 모르지? 이 세계의 끝은 평평하고, 하늘의 끝에는 유리 돔이 있고..
정희원:실컷 자랑만 하다 퇴장한다.
미호는 털을 바짝 세우고 난리를 피다가 영휘에 의해 퇴장 당합니다.
한영휘:(지친 낯으로 손 털면서 돌아온다.)
정희원:여기에도 지구평평설 같은 게 도는군요.
한영휘:후~~귀찮은 녀석.
응?세상은 원래 평평해.
정희원:흠...
한영휘:진짜라니까.
정희원:해와 달이 없으니 납득을 못 하겠는 것도 아니지만요.
과학적으로는 황당한 일이네요.
한영휘:'그게 무슨 상관이지?'
흠..그런가.
(일단 아는 척 진지한 얼굴을 해본다.)
과학적으로는 아닐지 몰라도. 여긴 요술의 세계니까.
정희원:그럼 이곳은 세상의 끝이 있겠네요.
한영휘:물론.
정희원:가본 적 있으세요?
한영휘:음~아니?
여기서 잘 사니까. 굳이 안 가봤지.
넌 참 탐구심이 많구나.
정희원:그런가~
보통 그 정도는 궁금해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한영휘:인간이랑 요괴의 차이일지도 모르고.
선생님은 궁금해하셨던 것 같아.
자주 밖을 돌아다녔으니까.
(힐끔 네 얼굴 본다.)
정희원:전 그런 점까지 선생님과 닮았나 보네요.
한영휘:...
응. 솔직히 많이 닮았어.
어쩌면 선생님은....,
네 어머니가 아닐까..?
정희원:음, 저는 아빠를 닮은 편인데 말이에요.
머나먼 조상일 수는 있겠네요.
한영휘:...
정희원:전생이라거나?
한영휘:그 정도로 시간이 많이 지난 건가.
정희원:우물에서 물을 길어 쓸 시대에 사셨다면, 많이 지났죠~
한영휘:왜 그렇게 가버리셨는지는, 영영 모르게 됐네.
진짜 전생이면 재밌겠다.
점집이라도 가볼래? 하핫.
정희원:제게 와닿지는 않는 개념이지만...
정말 전생이라면 기억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죠?
이거 보셨죠? (앞섶 살짝 벌려 방울 목걸이 보여준다.)
한영휘:...응.
정희원:이걸 지니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점집으로 가요~
한영휘:하..나도 진짜 전생을 안 믿거든?
그런데 진짜 똑 닮아서는 그런 거 가지고 있으니까 참~
인간은 너무 짧게 살아서 불쌍하니까 전생이 있을 지도 몰라!
(걸음 옮기면서 나발나발)
정희원:요괴가 전생을 안 믿는다는 건 또 신기한 일이네요. (졸졸 따라간다.)
요술을 과학보다 많이 쓸 뿐이지, 인간과 다를 것 없는 것 같은데...
한영휘:요괴랑 전생이랑 무슨 상관이래.
맞아. 과학을 안 배우는 건 요술이 있어서야.
점집
두꺼운 비단 커튼이 드리운 곳 앞에서 영휘가 멈춰섭니다.
그리고 점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삿갓을 쓴 사람은 들고 있던 곰방대를 내리칩니다.
구미호 할멈:쓰였네! 아주 단단히 쓰였어!!
언뜻 뒤로 비치는 그림자에는, 꼬리가 9개 달려 있습니다.
정희원:(마징가 귀) ...뭐가 쓰였는데요?
구미호 할멈:그냥 해보고 싶었단다. 인간이 여긴 어쩐 일이라니?
점집 주인은 그렇게 말하곤 가볍게 웃으며 삿갓을 벗습니다. 드러난 얼굴은 새하얀 머리카락의 미인입니다.
정희원:(귀 돌아온다.)
한영휘:쿠라마 할멈은 늘 이래,
정희원:장난을 좋아하는 분이셨군요.
한영휘:그렇다니까~
점집 안에는 대충 봐도 범상치 않은 물건들이 가득합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망원경이나,
샛노랗게 색이 바랜 고서들, 용도를 알 수 없는 측량 기구들……
구미호 할멈:아가야, 걱정하지 마라, 이 쿠라마 할멈은 인간을 잡아먹으려 하진 않으니. 자자, 점이라도 봐주마.
정희원:다행이에요. (망원경이나 기구들에 시선이 간다.)
구미호 할멈:운세, 미래 예지, 궁합.
뭐든 봐주마.
이름과 생년월일, 태어난 곳을 적어보련.
정희원:('와, 신점 처음 봐...') 네, 이것저것 부탁드려요!
(적어서 보여준다.)
구미호 할멈:홀홀홀..
(천칭을 기울인다.)
그래서, 뭐부터 봐줄까?
정희원:음... 운세요!
구미호 할멈:(까딱 천칭을 기울인다.)
호오? 제법 운명적인 만남을 겪는 중이구나. 한둘이 아니야! 제법 많은 인연의 실들이 이리저리 엉켜 있네…….
이곳에서의 인연을 소중히 하도록 해라. 아예 여기서 사는 건 어떠니? 제법 잘 맞아!
(높은 소리로 깔깔거리며 웃는다.)
정희원:으응~?
그건 좀 고민해봐야겠는걸요.
제 전생도 보이나요?
구미호 할멈:전생~?
우리는 어지간해선 죽지 않으니.
그런 게 보인다 해도 구별할 수 있을 지 모르겠구나.
관련 있는 사람이라도 있니?
정희원:(영휘를 본다.)
한영휘:(ㅇ.ㅇ)
구미호 할멈:저 녀석과 관련 있는 사람인 게야?
그럼 궁합을 보면 유추가 될 지도 모르지.
정희원:네!
봐주세요.
구미호 할멈:(천칭을 다른 쪽으로 기울이면 구슬이 촤르르 바닥으로 떨어진다.)
정희원:앗...
구미호 할멈:후후……. 인연이란 어찌 이토록 기구한지. 바로 곁에 찾는 상대가 있음에도, 찾아야 하는 상대는 아니로구나.
정희원:(무겁나 봐...)
한영휘:이런 점괘로는 전생인지 아닌지 모르잖아.
구미호 할멈:그게 그렇게 중요한 거니?
찾던 사람이 아니라고 인연에 의미를 두지 않을 것은 아니잖아?
난 앞으로의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정희원:음~ 스포일러 당하면 재미 없을 것 같긴 한데.
궁금하기도 해요. 미래 예지도 봐주시면 안 되나요?
구미호 할멈:좋~다.
(천칭을 도로 기울인다. 삐걱, 삐걱 쇳소리가 울린다.)
어디 보자꾸나. 흠? 이런 점괘가 나오다니.
조만간 네 주변에 거대한 이변이 생길 거다.
조심하는 편이 좋겠어.
정희원:이 정도 스포일러라면 괜찮을지도.
구미호 할멈:자아~점을 봤으면 복채를 내야지!
(희원의 안경을 가리킨다.)
정희원:앗.
흠... 네, 좋아요!
이거 인계에서는 꽤나 과학적인 물건이거든요.
한영휘:코걸이 아니었어?
정희원:(벗어서 내민다.) 한 번 써 보실래요?
전혀요!
구미호 할멈:(홀홀)좋다!
(받아서 한 번 써본다.)
어질어질하구나..~~
정희원:저는 시력이 조금 안 좋은 편이라, 그걸 써야 교정이 돼요.
구미호 할멈:이거면 충분해. 인간의 물건은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지..
소장가치가 있거든.
한영휘:그거 줘도 되는 거야?(;)
정희원:뒤에 있는 것들도 인간들이 준 건가요?
구미호 할멈:홀홀. 난 오래 살았으니..
받은 것도 있고, 내가 만든 것도 있지.
정희원: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구미호 할멈:몇 천 살은 될 게다!
(깔깔 웃는다.)
한영휘:괜히 할머니라고 불리는 게 아냐.
정희원:와~
예수보다 연세가 많으시겠어요.
예수는 인계의 신이에요.
구미호 할멈:인계의 신이라, 공간의 지배자인 우리 신과는 다른 종류인가?
정희원:이곳의 신은 공간의 지배자군요? 네, 잘은 모르지만 다른 것 같아요.
구미호 할멈:흥미가 있다면 신당에 가보는 것도 좋겠지~
정희원:갈래요~ (영휘 본다.)
한영휘:뭐. 조심히 가면 괜찮을 거야.
구미호 할멈:자! 자!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들 나가봐!
둘 다, 즐거운 축제 기간 보내렴.
정희원: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하고 밖으로 나선다.)
한영휘:어차피 너한테 준 옷도 교복이니까.
바로 영월호로 가자.
신당은 그 안 쪽에 있어.
정희원:학교 안에 신당이 있구나!
좋아요~
오랜만에 안경 벗으니 조금 불편하네요.
심한 건 아니에요!
한영휘:교정 기구면 줘도 괜찮은 거 맞아?도로 찾아올까?
나 잘 보여?
정희원:괜찮아요~ 할아버지 얼굴은 선명하게 보여요.
맨 뒷자리에 앉으면 칠판의 글씨가 잘 안 보이거든요. 그 뿐이에요!
한영휘:흠. 그럼 가서 앞자리에 앉아야겠네.
(어쩐지 신난 투로, 걸음 옮긴다.)
정희원:그래요~ (따라간다.)
영월호
도중 [[1d5]마리의 요괴와 마주치지만, 생소한 희원의 얼굴에 갸웃거릴 뿐 문제는 없습니다.
쫑긋한 귀와 꼬리를 달고 있는 존재가 인간일 리 없으니까요.
영월호 내부는 조금 낡은 옛 시대의 학교를 연상시킵니다. 바닥을 밟을 때마다 오래된 나무가 삐걱거리고, 어두운 복도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아,
정희원:(살랑살랑)
꼭 폐교 담력체험을 하는 기분이네요.
교실마다 나무로 된 의자와 책상이 갖춰져 있습니다.
영휘는 처음으로 학부모를 데려온 것처럼, 들뜬 듯 영월호를 소개합니다.
한영휘:여기가 우리 학교야!
어때?멋지지?
인계랑 비슷하지?
정희원:전통이 느껴지네요~
바닥에 맨살 닿으면 나무가시 박힐 것 같아요.
학교 바닥을 나무로 만드는 건 제 어머니 세대에서 끝났거든요!
한영휘:헉.
정희원:요소는 비슷하지만, 이런 부분에서 많이 다르네요.
한영휘:그래도 뭐 다른 건 다 비슷하잖아!
우리는 나무 좀 박혀도 몰라!
넓고 자재들도 다 있다구.
(사물함도 자랑한다.)
정희원:사물함이다.
저 제가 인계에서 사물함 타고 여기 왔다고 말씀 드렸던가요?
한영휘:아니.
..
신목으로 사물함을 만든 거야?
(멍텅한 얼굴이 된다.)
정희원:어라, 그런 건가?
한영휘:완전히 불경스럽구만.
정희원:별로 깊게 생각 못 해봤는데, 그렇네요... 저희 학교에 신목이 두 그루 있는데, 한 그루는 벴다고 했거든요.
한영휘:음...그래?
베어버린 한 그루가 사물함이 됐는지도 모르겠어.
굳이 왜 신목을 쓴 건지. 뭐, 인간들이야 몰랐겠지만.
정희원:그래서, 지금 살짝 걱정인 건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싶은 거지만...
일단 구경부터 할래요.
한영휘:한 그루가 남아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정신없이 영월호 내부를 구경하던 영휘와 희원은 별관에 도착합니다.
신당이라고 굵게 쓰인 현판 주변에 붉은 축제 등이 둥실둥실 떠 있습니다.
담홍색 벽과 기둥 위엔 흐릿한 벽화가 새겨져 있고, 오색 끈과 굵은 밧줄로 화려하게 장식된 신당 한가운데 석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신관으로 보이는 요괴가 당신을 보며 온화하게 미소짓습니다.
정희원:와~
한영휘:나름 볼 만하지?
정희원:네, 체험학습 하는 기분이에요~
한영휘:천천히 구경해봐. 네가 궁금해하는 것들에 대해서 좀 단서가 될 걸.
이 세계에 대한 것들 말야.
정희원:네~ (이미 발걸음 부지런히 옮기고 있다.)
한영휘:(한 발짝 뒤에서 따라간다.)
정희원:(벽화 구경한다.)
벽화
수많은 돔을 그린 벽화입니다. 돔 내부엔 각양각색의 세계가 자리 잡아
기묘한 상상화처럼 보입니다. 거대한 우림, 구름 위 도시, 기계적인 우주, 진주를 녹인 바다...
벽화는 군데군데 지워졌으나, 보는 것만으로도 환상적이네요. 돔 주변에는 검고 넘실거리는 어둠과 새까만 개들이 배회합니다.
문득, 당신은 이질적인 부분을 발견합니다.
정희원:(빤히...)
한국어로 작은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글을 보는 당신, 사냥개를 조심하세요>
정희원:(영휘를 본다.)
(사냥개는 아닌 것 같은데...)
한영휘:(ㅇ.ㅇ)
왜?(갸웃
정희원:(쓰담쓰담)
한영휘:...(묘한 기분..)
할아버지 머리를 쓰다듬어도 되는 거야?
정희원:그러면 안 되나요?
(귀 바로 옆 부분 긁어준다.)
한영휘:(꼬리를 흔든다.)
거긴 좀 시원하네.
정희원:(열심히 긁어준다.)
한영휘:음음.좋아.
정희원:귀엽네요.
역시 강아지에게 할아버지라는 호칭은 좀 그럴지도.
한영휘: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강아지가 아니라 개거든.
정희원:학생이면 아직 어리잖아요!
한영휘:...
정희원:그럼 강아지죠.
한영휘:화석이라서 안 어리거든!
정희원:그래도요.
제 눈엔 어려 보여요.
한영휘:그런 법이 어딨어?(황당하다.)
정희원:(복복복복)
한영휘:(흔들흔들)
아무리 그래도 강아지라고 부르는 건 안돼!
정희원:영휘야~
한영휘:..그것도 안 돼!!
정희원:까다롭네요.
한영휘:선생님 같아서 기분이 묘하단 말야.
(볼 긁적인다.)
정희원:많이 닮은 사람이라면, 이런 점까지 닮을 수도 있는 거죠.
(석상 보러 간다.)
한영휘:뭐. ..그런가.
석상
방울방울 정체 모를 거품이 모인 것을 굳힌 듯, 기괴하고 영문 모를 형상을 본뜬 석상입니다. 분명 완전하게 굳은 석상인데, 번들거리는 표면 위로 계속해서 거품이 피어오르는 것 같습니다.
정희원:
SAN Roll
기준치: 57/28/11
굴림: 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 (GM):탐사자는 신관과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겉보기엔 다정한 인간처럼 보이나, 뱀의 동공과 비늘, 갈라진 혓바닥이 그가 요괴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정희원:(신기하당)
이 분이 신이신가요~? (석상 가리키며 말 건다.)
신관:네. 그렇습니다.
그분은 감히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신화 같은 존재입니다.
그분은 이 세계를 창조하고 굽어살피십니다. 저건 말이죠, 그분의 모습은 형용할 수 없으니, 이 세계 최고의 조각가가 경건한 마음을 담아 추상적으로 표현한 석상이랍니다.
정희원:그렇군요~
(우리로 따지면 하느님 같은 개념인가... 이렇게 친밀하지 않게 생긴 신의 석상은 처음 보지만.)
신관:여기는 기도하러 오신 건가요?(미소짓는다.)
정희원:네, 맞아요.
신당에 오는 건 처음이라~ 어떻게 하면 될까요?
신관:정해진 양식은 없습니다. 이곳에 찾아오는 이들은 석상 앞에서 자유롭게 소원을 빌곤 하죠. (그렇게 말하곤, 붉은 색의 작은 종이를 내민다.)
소원을 적어 오색 끈에 매달 수 있답니다.
다만 소원은 입 밖으로 내거나 남에게 보이면 효력을 잃는다는 점, 명심해주세요.
정희원:네~ (받는다.)
'하지만 빌고 싶은 소원 같은 거 없는데...'
한영휘:뭐해?
정희원:어떤 소원을 빌지 고민중이었어요.
한영휘:음.
그래?나도 소원 빌어야지.
정희원:그래요. 같이 적어서 매달아요.
한영휘:(신관한테 종이를 받아온다.)
정희원:(손으로 가리고 몇 자 끄적인다.)
(잘 접어 먼저 끈에 매단다.)
한영휘:(망설임 없이 쓰고는, 오색 끈에 매달았다.)
뭐 썼어?
정희원:말 하면 효력을 잃는다구요.
한영휘:히히. 안 걸리네.
정희원:삼촌은 뭘 적었는지 바로 알 것 같지만요~
한영휘:뭐어? 난 그렇게 단순한 녀석이 아니라구.
정희원:글쎄요~
한영휘:진짜라니까?
정희원:그럼 무슨 소원 빌었는지 말씀해 주세요!
한영휘:그럼 효력 잃잖아~바보.
(신당 밖으로 후딱 튀어나간다.)
정희원:안 걸리네요.
(쫓아간다.)
둘은 상점가로 돌아갑니다..
10월의 불꽃놀이
저녁에 가까운 시간이기 때문에 주변은 무척 어둡습니다. 길을 걷는 요괴들은 점점 늘어나고,
거리에는 조명이 없어 희원이 걷기 불편할 지도 모르겠어요.
인파에 밀려 점점 영휘가 멀어집니다.
정희원:삼촌~
말을 할 틈도 없이, 두 사람을 연결한 끈은 점점 늘어납니다.
정희원:삼촌!
(헥헥;;)
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졌을 무렵, 당신의 손목에 있던 결속의 끈이 풀려버립니다.
정희원:
민첩
기준치: 55/27/11
굴림: 63
판정결과: 실패
설상가상으로 그 자리에서 넘어져 버립니다.
정희원:앗!
아야...
풀려 버렸네, 어쩐다...
인파가 많아서 방울 소리도 잘 안 들릴 텐데.
한영휘:(주변을 연신 둘러보다가, 급하게 소리친다.)
희원아!
정희원:(쫑긋)
(무릎 털고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힘겹게 비집고 들어간다.)
한영휘:(길에 있는 것과 같은 붉은 등불을 들고 연신 네 이름을 부르고 있다.)
희원아~~어딨어!
정희원!
정희원:여기 있어요!
(달려간다.)
한영휘:(홱 몸을 돌려 마주하면 안도의 숨 내뱉는다.)
없어져서 깜짝 놀랐네!
(얼른 달려온다.)
정희원:저야말로 놀랐다구요. 먼저 그렇게 가시면 미아 돼요!
꼭 붙어 다녀야죠.
한영휘:먼저 가려고 한 게 아니야. 인파에 밀려서..
(네 손 붙들어 잡는다.)
너무 사람 많아서 이러고 가는 게 낫겠다.
정희원:(고개 젓는다.)
그거 말구요.
한영휘:응?
정희원:업어주세요.
한영휘:.......
푸핫.
그래.그래.
(인파에 치이며)
정희원:헤헤.
한영휘:(네 손 잡고 갓길로 간다.)
자. 얼른 업혀.
(다시 쪼그려 앉았다.)
정희원:요괴가 너무 많네요~ (냉큼 업힌다.)
한영휘:요괴의 세계니까~
(풀썩 업고 일어선다.)
정희원:요괴들은 보통 야행성인 편인가요?
(업힌 채 기댄다.)
한영휘:밤에도 안 지치지.
조금만 자도 되니까. 요괴는.
곧 불꽃놀이가 시작한대. 명당자리를 알고 있으니까 올라가서 보자.
정희원:부럽다.
좋아요!
관람 명당으로 향하던 도중 불꽃놀이가 시작됩니다.
악기 소리와 함께 터져 올라가는 불꽃이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습니다.
길을 걷던 요괴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아쉽지만, 길거리에서 불꽃놀이를 관람합니다
새빨간 불꽃은 지네 모양이 되기도, 개구리 모양으로 피어나기도 합니다.
한영휘:(지네 나올 때 눈감음)
정희원:(속눈썹 질끈 움직이는 것 보고 푸핫 웃음)
(마저 구경한다.)
불꽃 하나가 사라질 무렵 또 다른 불꽃이 올라가고, 환호성이 터져 나옵니다.
노점상을 장식하는, 눈이 멀어버릴 것처럼 붉은 등과 색색의 아름다운 불꽃놀이.
분명 이계는 당신에게 낯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이 우연히라도 이곳에 왔기 때문에,
이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영휘는 넋을 잃고 불꽃놀이를 보고 있습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광경에 시선을 완전히 빼앗겼습니다.
한영휘:아름답네.
정희원:뭐라고요?
한영휘:아름답다구!
불꽃놀이 말야.
정희원:아하!
잘 안 들려서요.
한영휘:(실 없다는 듯 웃고는 마저 하늘을 바라본다.)
정희원:저 사실 이런 건 별로 안 좋아해요.
신경이 예민해서, 소란스러운 건 영 정을 못 붙이겠더라고요.
그렇지만... 이 곳에서 보니까 운치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드네요.
한영휘:네 말하는 방식에도 익숙해진 참이고.
참 예민하고, 예리하고.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니까?
자애로운 선생님이랑은 천지차이지.
덕분에 희원이랑은 별개로 친해진 것 같아!
너랑 봐서 재밌네. 불꽃놀이가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어.
정희원:말 놔도 돼요?
한영휘:그으래.
정희원:고마워, 영휘야.
한영휘:흠..
뭐, 별 말씀을.
내가 뭐했다구.
정희원:잡아먹힐 뻔했을 때부터 쭉 도와줬잖아.
착한 강아지야.
한영휘:그건 그냥..가르침 받은 대로 했을 뿐인걸.
..'결국 강아지라고 부르는군..'
정희원:가르침을 잘 듣는 학생은 착한 학생이지!
모범적인 학생이고.
한영휘:...그런가?
그렇게 들으니까 기분 좋네!
정희원:응. (쓰다듬는다.)
한영휘:(얌전히 쓰다듬 받는다.)
한참 두 사람이 불꽃놀이를 지켜보던 그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립니다.
거대한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기도, 세계가 신음하는 것 같기도 한 소리.
크지 않은 소리지만, 대지의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퍼집니다.
몇 분간 이어지는 소리는 모두에게 들리는지 모든 요괴가 웅성거립니다.
한영휘까지도 인상을 쓸 무렵,
땅에 진동이 울리며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정희원:앗, 조심해.
금은 벌어지며 틈을 만들고, 흙이나 모래가 떨어지던 틈은 큼직하게 아가리를 벌려 요괴들을 집어삼킵니다.
축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한영휘:..,
(너를 업은 채로 빠르게 틈 멀리로 달린다.)
불꽃놀이는 중지되고, 가판대는 큰 소리를 내며 쓰러집니다.
부모로 보이는 요괴들은 어린 요괴를 안아 들고 달립니다.
정희원:갑자기 무슨 일이야?
부서진 평화가 거짓말처럼 흩어지고, 절망이 잠식합니다.
영휘가 밟은 땅 역시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굵은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어딘가에서부터 알 수 없는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모든 것을 찢을 듯 날카로운 무언가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한영휘:모, 모르겠어..
이런 일이 일어났던 적은,
이제껏 한 번도..
....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목격하고는 네게 속삭인다.)
일단 눈을 감아, 봐서는 안 돼.
정희원:...?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한영휘:인식 당해서는 안 돼.
그런 것이 왔어.
정희원:(작은 소리로) ...알겠어. (눈 꾹 감는다.)
"아가, 누가 우리 아가 못 보셨나요!!“
"이봐! 비켜! 저리 가!“
"아아, 신이시여! 저희를 버리시나이까!“
"아아…… 살려줘……!"
<틴달로스의 사냥개>가 이계에 나타납니다
:: (GM):틴달로스의 사냥개
시간의 사냥꾼
- 대상을 인식하면 만날 때까지 쫓아가는 추적꾼입니다. 이들은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기에, 시간 여행자(혹은 공간 여행자)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인식'당한 대상 중에 생존자는 없다고 합니다.
지진과 함께 알 수 없는 괴물이 날뛰기 시작하고,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절규가 메아리칩니다.
한영휘는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생살을 찢고, 뼈를 부수는 끔찍한 소리가 귀에 들어옵니다. 구할 수 없는,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뒤로한 채,
영휘와 희원은 자리를 벗어납니다.
이 상황을 표현할 단어는 단 하나뿐입니다.
바로 '멸망'입니다.
세계를 집어삼키는 완전한 아비규환에 정희원,
정희원:
SAN Roll
기준치: 57/28/11
굴림: 58
판정결과: 실패
4
이성 4 감소
정희원:
광기의 발작 - 실시간
편집증:
1D10 라운드 동안 심각한 편집증에 시달립니다.
For 1 rounds.
편집증 : 심각한 걱정이나 두려움으로 자신이 주변으로부터 피해를 받을 것이라는 병리적인 의심을 고집하는 이상심리학적 상태
정희원:('저 절규들은 분명 날 잡아먹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거야.')
('절대 반응해서는 안 돼...')
흥겨운 악기 소리는 사라지고, 비명과 고함만이 가득합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두 사람 역시 거대한 틈에 먹혀버릴 텐데, 혼란스러운 인파 때문에 도망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희원:
기준치: 70/35/14
굴림: 40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럼에도 다행히, 빠르게 헤쳐나갑니다.
다른 요괴들에게 휩쓸리지 않기 위해 산 위로 정신없이 달립니다. 뒤에서 그 어떤 소리가 들려도,
정희원:(목덜미에 고개 묻고 눈 꾹 감는다.)
영휘는 묵묵히 달려나갑니다.
멈추지 않고 올라가다 보면, 어느덧 반딧불이 호수입니다.
영휘는 그 곳에 다다라서야 당신을 돌아봅니다.
한영휘:이제, 눈 떠도 돼.
내려와. 희원아.
정희원:(고개 든다.)
이제 괜찮아?
한영휘:..여기는, 괜찮을 거야.
세상을 뒤흔들던 지진은 멈췄습니다.
정희원:(내려오지 않고 목 감싼다.)
산 아래 풍경은 처참합니다.
지대가 낮은 곳은 대부분 무너지고 함몰되어 새까만 구멍이 보입니다.
영월호 역시 마찬가지로……. 요괴들을 가르치던 건물은 완전히 내려앉았습니다.
폐허 더미가 거대해, 왔던 신목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은 신목을 통해서만 인계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이래서는 돌아갈 수 있는지조차 불투명합니다.
어두운 밤하늘, 반딧불이가 소리 없이 주변을 맴돕니다.
불꽃놀이로 그토록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하늘에는 여전히 달도 별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한영휘:...왜,
신의 번견이 나타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희원:(흐릿한 시야에도 들어오는 처참한 모습 눈에 담더니, 다시 네 뒷목에 고개 묻는다.)
한영휘:...아무튼, 위험한 상황인 건 틀림 없어.
지금 당장 돌려보내줄게.
정희원:지금 당장 돌아갈 수 있어?
한영휘:내 능력을 쓴다면 당장 돌려 보내줄 수 있어.
빨리 보내준다고 했잖아.
정희원:그럼 영휘 너는 어떡해?
한영휘:나는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있어. 학생들을 두고 갈 수도 없고.
정희원:사냥개 눈에 띄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한영휘:....그건 빠르건 늦건 일어날 일이야.
우리는 항상 이 세계에 끝이 있다고 배웠어.
두렵기는 하지만 괜찮아. 인간이랑은 다르니까.
인간인 네가 여기에서 멸망의 고초를 함께 겪을 이유는 없어.
정희원:...아직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이건 너무 갑작스러워.
한영휘:....
또, 일단 저 괴물이 없어질 수도 있으니까.
안전한 곳에 가 있는 게 나을 거야!
정희원:응.
(여전히 내려올 생각은 없다.)
한영휘:자. 내려와.
네 세계로 보내주려면,
..
이대로도 걸어가야할 곳이 많아.
정희원:...
한영휘:(한숨을 쉬며 무릎을 매만진다.)
(몸을 숙였다.)
정희원:(어쩔 수 없다는 듯이 조심스레 내려온다.)
영휘는 당신을 이끌고 조금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갑니다.
파고 들어가는 숲은 나무가 높고 빽빽하게 자라 있어, 산 아래서 타오르는 불의 빛마저도 점점 사라집니다.
산속, 조금 더 깊숙한 곳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그렇게 마침내 도착한 곳에는,
금색 새끼줄로 격리된, '거대한 나무'가 있습니다.
경건한 마음이 들 정도로 거대한 가지를 하늘로 뻗은 채, 굵은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는 이것은…….
정희원:...신목이야?
아, 시일 고등학교 뒷산에 있던 거대한 나무, 영월호 앞에 있던 신목과 아주 닮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계의 신목은 한 그루라고 했는데.
한영휘:그래. 이계의 신목은 두 그루야.
(새끼줄을 걷고 안으로 들어가, 나무의 몸통을 짚는다.)
주변으로 기이하고 불길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한영휘:두 그루를 동시에 관리할 수 없어서, 통제에 두는 건 한 그루로 두고…
정희원:(불안한 얼굴로 바라본다.)
한영휘:나머지 한 그루의 존재는 비밀에 부치고 있었어.
내가 관리인이라 다행이야. 어쩌면 이것도 인연인 거겠지.
정희원:대단한 사람이었구나.
한영휘:하하. 선생님이 맡겨주신 일이야.
(바람이 불어오는 구멍 안을 바라본다.)
손만 넣으면 갈 수 있어. 간단하지?
정희원:응...
하지만 정말 괜찮겠어?
이 문을 열어서 네 요력이 잡아먹힌 것 아니야?
한영휘:잡아먹히다니?
정희원:신목은 요괴들의 요력을 잡아먹고 문을 연다는 가설을 봤어.
그것 때문에 네 상황이 위험해 지는 건 아닌가 싶어서...
한영휘:..선생님이 그렇게 생각하신 건 사실이고, 전쟁 이후에 문이 열리는 것도 맞지만..
그 이후로는,
후야제에 신목의 문이 열렸어.
내 요력에 지장이 가는 일은 없을 거야.
정희원:... 알겠어.
한영휘:그럼. 만나서 반가웠어.
정희원:(쓴 미소 짓는다.)
돌아가면 교복은 어쩐다.
말리고 있는 건 영휘 너 가져.
한영휘:뭐. 가져다 줄 수도 있고.
못 찾으면 쿠라마 할멈한테 비싸게 팔아야곘다.
정희원:낭만 없어!
한영휘:하핫.
정희원:흥.
정말 간다?
그 순간부터,
다시, 대지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한영휘:그래. 어서 가!
정희원:응.
고마웠어. 안녕!
(구멍에 손 뻗는다.)
짐승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당신이 손을 뻗자 신목은 당신을 집어삼키듯 빨아들입니다.
이계를 뒤로하고, 안락한 세계로 되돌아갑니다.
어두워지는 틈으로, 한영휘는 무어라 당신에게 말했습니다.
정희원: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1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다시 만난 것처럼 기뻤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건 당신의 이름은 아니었습니다.
신목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처음 이곳에 왔던 것과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감각입니다
이전에는 희원이 무언가의 내부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억지로 틈을 내어 벌린 생살 안으로 집어 넣어진 기분입니다.
이물질을 주입 당한 신목이 희원의 귓가에 비명을 지릅니다.
눈앞에 수많은 점들이 점멸하며, 당신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정신적인 충격에 휩싸입니다.
정희원:
SAN Roll
기준치: 53/26/10
굴림: 4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감소 1
검은색, 보라색, 초록색…….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색상의 보이지 않는 촉수, 혹은 다리 같은 것이 희원을 감싼다고 느꼈을 때,
타의에 의해 강제로 비틀린 공간과 시간은 제 아가리를 벌려 희원에게 무언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이야기이자, 지금의 이야기이며, 언젠가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본다'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야기의 일부가 됩니다.
첫 번째 이야기
어른들 몰래 창고 문을 여는 어린아이가 보입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아이는 문득 두툼하고 먼지가 잔뜩 쌓인 책을 집어 듭니다.
'이계탐험록'이라고 또렷하게 적힌 표지를 잡고 여는 순간…….
딸랑, 소리와 함께 방울 목걸이가 굴러떨어집니다. 아이는 오밀조밀 작은 손으로 방울 목걸이를 들어, 제 목에 겁니다.
대대로 물려내려 왔다거나, 중요한 물건이라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지만.
이계 탐험록은 할머니의 할머니, 그리고 또 할머니의 할머니가 여행을 끝내고 와서 쓴 책이라고 했습니다.
지병이 있던 먼 선조는 여행에서 얻은 방울 목걸이 덕분에 말끔하게 건강해졌다고 합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나, 언젠가 자신의 후대가 소원을 이루어줄 것이라 믿고 이 책을 썼다는 글과 함께 책은 마무리됩니다.
한참 책에 집중하던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납니다.
딸랑, 아이가 움직이자 방울 소리가 낭랑하게 울립니다.
언뜻 보인 아이의 얼굴은, 희원 본인이었습니다.
어쩐지 익숙했던 이유는, 어릴 적 책에서 본 세계였기 때문이었군요.
또한, 영휘가 그리 제게 그 '선생님'을 겹쳐본 이유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신목 앞을 지키고 선 작은 요괴가 있습니다.
"영휘야, 돌아가야지"
조금 더 큰 요괴가 말하면, 작은 요괴는 주먹을 꾹 쥐고 고개를 저을 뿐입니다.
"선생님을 기다려야 해요. 많이 아파 보이셨는데, 제가 부축해드려야 한단 말이에요."
그는 눈이 내리는 날에도 굴하지 않고 신목 앞을 지킵니다. 때로는 낮잠을 자고, 때로는 신목과 대화를 하며 외로움을 달랩니다.
문에서 들리는 아주 작은 소리에도 귀를 쫑긋거립니다.
혹시나 선생님이 돌아왔는데 듣지 못했을까 봐 걱정이 되어서요.
걱정에도 불구하고 100년, 100년, 그리고 또 100년이 흐릅니다. 축제가 시작해,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인간이 있다면 돌려보내는 건 늘 그의 몫이었지만, 선생님만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분명 그 인간은 공간의 주인님께 저주받은 거야. 기다려봤자 다시는 올 수 없는 몸이 된 게 분명하다고!"
"맞아, 인간은 나약하니까 벌써 죽어버렸을걸."
다른 요괴들이 어떻게 이야기하든, 그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
이계도 인계도 아닌 무한한 어둠의 공간, 작은 유리 돔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습니다.
기이한 형상의 그림자들은 유리 돔을 관리하듯 둘러싸고 있습니다
희원은 그중 절반 가까운 유리 돔들이 엉망으로 박살 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가늠할 수 없게 거대한, 무수한 다리를 가진 그림자들이 그것을 두고 말다툼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림자를 보고, 멀리서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정체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한 번에 제거하면 쉬운데, 왜 일을 귀찮게 처리하는 거지?"
"그러면 잔여물이 남잖아. 되도록 틀을 유지한 채 청소하는 편이 좋으니까."
"그분께서는?"
"천천히 처분하라고 하셨다."
"깨끗하게, 빨리하면 되는 일이잖아."
어렵지 않게 깨닫습니다.
이계에서 목격하고 들은 대로,
이계는 거대한 유리 돔 안에 있으며, 그들이 이야기하는 '처분'은 이계에 관한 것이라는 걸요.
정희원:
SAN Roll
기준치: 52/26/10
굴림: 9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이성 감소 1
수많은 필름이 재빠르게 흐르며 희원의 사고에 주입됩니다.
강제로 머릿속에 흘러들어온 이야기들에 대해 곱씹어볼 틈도 없이, 의식이 차츰차츰 아득해집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희원은 나동그라져 있습니다.
익숙한 공기와 지독한 침묵. 당신이 아는 곳입니다.
모든 것이 익숙한 희원의 세상.
숲과 나무로 가득 차 있지만, 이계의 산과는 확연하게 틀린 이곳은…….
귀신이 나온다는 학교 뒷산, 신목이라고 불리는 나무 앞입니다.
가까운 곳에 정희원의 학교 건물이 보입니다.
고요하며, 모든 것이 완벽하게 평화롭습니다.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정희원:(벌떡 일어나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지금은 매우 늦은 시각입니다.
정희원:이런...가방은 아직 교실에 있으려나.
(휴대폰 불빛을 비추며 조심조심 산에서 내려간다.)
넘어온 날로부터 하루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계의 흐름이 인계의 흐름보다 빠른 모양이에요.
정희원:으음. (학교는 열려있나?)
경비 아저씨가 지키고 있는 학교입니다.
경비실에서 경비 아저씨는 신문을 보고 있습니다.
정희원:(슬금슬금)
(몰래 들어간다.)
:: (GM):총 세 번의 민첩 판정을 거쳐 두 번 이상 성공 시 들키지 않고 펜스를 통과할 수 있습니다
정희원:
민첩
기준치: 55/27/11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민첩
기준치: 55/27/11
굴림: 64
판정결과: 실패
민첩
기준치: 55/27/11
굴림: 45
판정결과: 보통 성공
경비 아저씨: 게 누구냐!(도둑으로 착각하고 추격한다.)
정희원:(꽈당)
경비 아저씨: (희원에게로 다가간다.) 너 이! 겁도 없이 학교에..
정희원:앗, 아저씨! 저예요!
경비 아저씨: 엥?
이 늦은 시간에 웬일이냐?
꼴은 또 왜 이렇고.
정희원:두고 온 게 있어서 가지러 가려고요. (살짝 민망한 듯 옷깃 주섬주섬...)
경비 아저씨: 오늘 수업 시간에 갑자기 사라졌다면서. 선생님이 무척 걱정하시던데.
바로 집에 돌아가는 게 좋지 않겠어?
정희원:짐만 챙기고 바로 나갈게요!
어느 순간부터, 옆에서 반딧불이가 반짝거리며 맴돌고 있습니다.
경비 아저씨: 뭐, 그렇다면야.. 열어줄 테니 얼른 다녀오거라. ( 교실 키를 찾아서 건네준다.)
정희원:감사합니다! (허리 꾸벅 숙이고 교실에 빠른 걸음으로 올라간다.)
(반딧불이 힐끔) 너도 따라온 거니?
반딧불이: (위잉)
정희원:정말, 현실감이 없네.
2학년 3반 교실은 4층에 있습니다.
정희원:(헉헉...)
(헉헉......)
(헉.........)
(힘겹게 도착한다.)
반딧불이가 격려하듯 희원의 앞에서 날아가고 있습니다.
정희원:(교실 문 열고 사물함으로 간다.)
달빛과 야경이 내리쬐는 교실, 사물함 안에 익숙한 소용돌이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정희원:어라...
안 사라졌나?
희원을 안내한 반딧불이는 파르르 떨며 주위를 맴돌지만, 처음 문이 열렸을 때와는 달리, 어두운 안 쪽입니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입구네요. 지금은 짐을 가져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정희원:이럴 수가...
(약간 걱정스러운 얼굴로 사물함 안을 보다가, 제 자리에 놓인 가방부터 싸 두고,)
옷은 어쩐다...
교탁 안에 분실된 체육복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준치: 70/35/14
굴림: 80
판정결과: 실패
어라...없네! 누가 가져갔나?
정희원:...
(다른 학생들의 사물함을 열어보기 시작한다.)
미안해, 유진아! (체육복 훔쳐서 갈아입는다.)
(입고 있던 영월호 교복은 가방에 둘둘 말아 넣는다.)
(후다다다닥)
어떡해, 무단 조퇴 찍히는 거 싫은데 되게 애매한 시간에 와버렸네.
정희원:이틀 정도는 실종 상태여야 뭐라도 참작될 것 같은데!
(어쨌든, 모든 사물함 문을 잘 닫고 다시 바깥으로 나선다.)
반딧불아, 따라올 거니?
반딧불이는 신목 옆에서 희미한 빛을 내며 머물 뿐입니다.
정희원:너는 돌아가야 하지 않겠어?
(반딧불이에 손 뻗는다.)
당신의 손을 피해 반딧불이는 천장으로, 벽으로 향하다가 이내 안 쪽으로 쏙 사라집니다.
정희원:어라.
사물함 안은 완전한 어둠이 되었네요.
으스스하기까지 합니다.
정희원:으음...
(사물함 다시 활짝 열고 바라본다.)
(얼굴만 집어넣어본다.)
빨려들어가는 느낌입니다.
조금만 더 넣었다간 다시 이계행이겠어요.
정희원:(곰곰.)
(가방 열어서 노트 꺼낸다.)
(거기에 이것저것 적는다. 방울의 출처와 '선생님'에 대해 들은 이야기 등. 마지막으로 몸조심하라는 글귀와 함께 적어서 사물함 안에 넣는다.)
...내일이면 멀쩡해지겠지.
(정말로 떠난다.
정희원: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6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사물함 속으로 빨려 드는 종이를 보며 문득 스쳐가는 생각입니다.
그는 분명 당신의 선조에게 방울을 줬고, 선조는 지병이 있었으나 삶을 연장했습니다.
요력이 생명력과도 이어진다면, 방울을 돌려줬을 때 목숨들을 부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정희원:아, 이거 돌려줄까.
This message has been hidden.
아마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면, 목걸이를 받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겁니다.
이계에서의 생활을 잊는 날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모든 이야기는 한 가을날의 꿈으로,
..근데 이거 꼭 돌려줘야할까?
정희원:이미 준 거니까 갖고 있으라고 하겠지?
음~... 그쪽 학교도 무너졌는데, 더 이상 거기서 '화석'으로 있을 이유도 없을 테고.
(탓탓 나간다.)
모든 이야기는 한 가을날의 꿈. 희원은 평화로운 삶으로 돌아갑니다.
탐사자 생환, KPC 로스트